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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100

어느 사랑 이야기 어느 사랑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유명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과 성을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불행한 미신인 것 같다. 프로이트 같은 사람들의 과장과, 번식기가 아닌데도 사철 성을 즐기는 인간의 호색 근성이 야합하여 만들어낸 편의적 미신. 아마도 그 강력한 미신에 대한 지성의 마지막 저항이 지드의 일 것이다.' 사랑(또는 性)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한 사라 러딕의 말은 옳다.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여러 법규들의 정당함이나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운전석에 오르고 보면 우리는 어린애 같은 흥분과 쾌감에 그 모든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지기 전에 우리는 부도덕한 관계나 무모한 사랑의 위험을 잘 알고, 그로 인해 우리.. 2014. 1. 10.
야윈 얼굴의 그 소녀 야윈 얼굴의 그 소녀 남자가 어느 나이에 도달해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친했건 아니든 간에 예상보다도 많은 여자가 떠오를 수도 있다. 이제는 오래된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 대학 2년을 마치고 휴학한 뒤 7월에 입대(入隊)하여 모진 첫겨울을 보낸 후 병영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4월의 .. 2014. 1. 3.
파리대왕 파리대왕 신병교육대에서 6주를 마치자 우리를 태운 열차는 앞으로 근무해야 할 사단이 위치한 도시에 도착했다. 우리는 더플 백을 메고 사단본부 보충대에 머물렀고 이후 연대본부로 갔다가 최종 목적지인 대대로 가야 했다. 훈련소에서 함께 교육받은 동기 3명과 함께 대대로 향했다. .. 2013. 12. 27.
눈물 눈물 그해 7월, 경남 창원시 소답동에 위치한 39사단 신병 교육대에서의 6주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버님의 돌연한 별세로 인해 내가 받은 충격은 지대했다. 그녀에게 선사받은 실연도 성인이 된 이후의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으리라. 원래 그다지 건강 체질이 아닌데다.. 2013. 12. 20.
우기(雨期) 우기(雨期) 그 해 말, 학기말 시험을 끝내고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에, 군 입대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 휴학계를 내었다. '어용 교수'로 지탄받던 병역기피자인 지도 교수는 내게 입대를 강요했다. 그런데 그해 시국이 그랬는지 휴학계를 내면 즉시 나온다던 영장(입영통지서)이 집에 도착.. 2013. 12. 13.
아버지 아버지 아버님은 술과 담배를 즐기셨다. 내가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이 극단적으로 악화하여 가고 있었으나 가족 중 누구 하나 눈여겨보지 않았고, 취미생활조차 없으셨으므로 삶의 기쁨 역시 부재했을 것이다. 술과 담배는 그나마 생활의 활.. 2013. 12. 6.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나날이 늘어가기만 했다. 사랑과 운명이라는 단어들은 장난스런 언어유희로 보였다. 인고의 정신과 인문학도로서의 자만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뜨거운 가슴은 어두운 밤과 차가운 바람에도 식을 줄 몰랐다. 그리움의 감정은 여전히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배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달면 불길처럼 뜨거워지고, 식으면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가만히 있으면 연못처럼 고요해지고, 움직이면 하늘까지 뛰어오른다. 사나운 말처럼 가만히 매어져 있지 않은 것, 이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중국 춘추시대 철학자 장자가 쓴 에 나온다. 답은 “사람의 마음”이다. 장자는 연이어 말했다. “인간의 마음처럼 간사한 것도 없다. 오늘 좋다가도 내일은 싫고, 오늘 기쁘다가도 내일은 우울하고, 오늘 사랑하다가.. 2013. 11. 29.
봄이 왔던 캠퍼스 어떤 분들은 &lt;옛날의 금잔디 동산&gt;에서 쓰고 있는 이 글들을 수필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최인호 작가가 쓴 연재소설 &lt;가족&gt;을 모델로 해서 내 나름대로 쓰고 있는 ‘소설’이다. 주제넘은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주변 이웃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일기와 같.. 2013. 11. 22.
내 안에 빛나는 1%를 믿어 준 사람 내 안에 빛나는 1%를 믿어 준 사람 여러 이야기를 쓰다보니 10대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쓰게 되었다. 미처 쓰지 못한 이야기로는 뭐가 있을까 곰곰 생각을 하다가 추가적으로 몇 가지 기억들을 더 떠올리게 되었다. 고 1때 함께 우산을 쓰고 밤길을 걸었던 성당 여학생과의 풋사과 같은 만남의 기억, 고 2때 피아노를 잘 치던 꺽다리 친구랑 대학 가요제 준비를 하기 위해 텐트를 싸들고 경남 울주에 있는 진하해수욕장에 갔었던 추억, 시내 중심지 시립 도서관 뒷골목에서 태권도 유단자인 여고생 불량배를 만나 가진 용돈을 죄다 털렸던 사건 등이 생각났다. 다음에 이 이야기들을 소설책으로 내게되면 위의 내용들도 첨가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할머니를 만나러 아버지 본가에 가는 게 좋았다. 세월이 흐르니 어.. 2013. 11. 15.
딩동댕 그해 여름 ♬ 딩동댕 그해 여름 ♬ 내가 고1 때 MBC 방송에서 '대학 가요제'라는 게 시작됐다. 당시 군사 정권 시절이라 들을 만한 노래가 드물었기 때문에 모두들 공연 실황을 보고 충격에 가까운 새로운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대상을 차지했던 ‘나 어떡해’는 물론이고, ‘저녁 무렵’, ‘꿈나라’, .. 2013. 11. 8.
어른이 되기 위해 떠났던 여행 어른이 되기 위해 떠났던 여행 그해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치른 후였다. 우리는 고교졸업과 대학입시 시험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유달리 감성이 뛰어났던 같은 반 친구 두 명과 나는 무작정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바다로 떠나기로 했다. 당시 유행했던 송창식의 ‘고래 사냥.. 2013. 11. 1.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초등학교 때는 그림 잘 그리기로 부산시내에서 유명한 아이가 나였다. 소년동아일보, 소년조선일보 주최 전국사생대회에서 몇 차례 최우수 상을 받았으나 중학교 진학 때 그 적성을 살리지 못했다.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화구(畵具)와 그림 선생이 필요했는데 당시의 집안 형편으로는 어림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미술공부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자 돌아온 것은 웃음뿐이었다. “미술, 웃기고 있네.” “놀고 있네." “미술을 배워서 뭐할 거야? 극장에서 간판 그리려고?” “그냥 학교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 취직할 생각을 해야지?” “예술가는 항상 춥고 배고프단다.” 등의 시큰둥한 반응만이 내게 돌아왔다. 고2가 되자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무엇이 되어 어떻.. 2013.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