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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

내 안에 빛나는 1%를 믿어 준 사람

by 언덕에서 2013. 11. 15.

 

 

 

내 안에 빛나는 1%를 믿어 준 사람

 

 

 

 

 

 

여러 이야기를 쓰다보니 10대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쓰게 되었다. 미처 쓰지 못한 이야기로는 뭐가 있을까 곰곰 생각을 하다가 추가적으로 몇 가지 기억들을 더 떠올리게 되었다. 고 1때 함께 우산을 쓰고 밤길을 걸었던 성당 여학생과의 풋사과 같은 만남의 기억, 고 2때 피아노를 잘 치던 꺽다리 친구랑 대학 가요제 준비를 하기 위해 텐트를 싸들고 경남 울주에 있는 진하해수욕장에 갔었던 추억, 시내 중심지 시립 도서관 뒷골목에서 태권도 유단자인 여고생 불량배를 만나 가진 용돈을 죄다 털렸던 사건 등이 생각났다. 다음에 이 이야기들을 소설책으로 내게되면 위의 내용들도 첨가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할머니를 만나러 아버지 본가에 가는 게 좋았다. 세월이 흐르니 어째 다른 이들보다 할머니 생각이 날까? 인생의 경험이 녹은 충고를 많이 주셔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드니 오늘 아침 나절 일은 잊어버려도 아주 어린 시절 일은 또록또록 생각이 난다.  

 고대 그리스 이타이카 왕국의 왕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사랑하는 아들을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인 멘토(Mentor)라는 이에게 부탁했다. 그 후 멘토는 오디세이가 전장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 년 동안 왕자의 친구이자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로서 왕자를 잘 돌봐주었다.

 

그 이후로 멘토(Mentor)라는 용어는 사려 깊고 지혜롭게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스승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멘토가 대학에서 사용될 경우에는 논문 지도교수를 의미하고, 스포츠에서는 코치, 무술에서는 사부, 예술에서는 사사(mentoring)해주는 스승을 의미한다. 또 중세 유럽의 도제제도에서는 주인(master)으로 사용되었고, 교회에서는 양육자나 목자 등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상담자 혹은 후견인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얼마 전에 제인 블루스틴 박사가 쓴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무력하지만 또 한편으로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 선생님의 애정 어린 말 한마디와 행동을 통해 발전하고 자라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생생한 체험이 담긴 책이다. 내용은 특별하고 거창한 이야기가 없어서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승이 던져준 그저 따뜻한 눈길과 미소, 관심, 신뢰의 표정 등 누구나 한 번쯤 자신들의 스승에게서 느껴봤을 평범한 것들이 개인을 변화시켜 오늘날의 위치에 서게 했다는 반전이 인상적인 이야기들의 모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오십 까지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최초의 멘토는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났던 20대 후반의 젊은 담임선생님이다.

 

 

 

 

 체육 시간이었다. 그날 선생님은 체조 자습을 시킨 후 운동장에 우리만 놔두고 잠시 밖으로 나가셨다. 알다시피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토끼가 왕이 되는 법이다. 그날따라 토끼들은 설쳐댔다. 우리는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그렇듯이 난장판으로 놀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와 놀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너희들에게 다시 한번 말하겠다. 조용히 해라.”

 물론 우리는 약 30초 동안 조용히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생님이 매우 화가 나신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한 명의 주동자를 찾는 것보다 소동을 일으킨 서너 명을 골라내 그 자리에서 벌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신 듯 했다.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서너 명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한 다음, 자신을 따라 벽 쪽으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우리는 그때 어떤 벌을 받을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벌보다 심한 벌을 너희들에게 주겠다. 너희들이 자습을 잘하고 있으리라고 믿었는데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 너희 몇 명 때문에 학급 모두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지금부터 너희들의 기억에 영원히 새겨질 교훈을 가르쳐 주겠다.”

 우리는 어떤 체벌이 가해질까 궁금해 하면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러한 장면에서 무자비한 체벌을 가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그곳에 움직이지 말고 서 있어야 한다. 앞으로 30분 동안 아무 것도 해서는 안 된다! 한 발짝이라도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발을 앞뒤로 흔들어서도 안 된다. 오로지 똑바로 서서 30분 동안 벽시계를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너희의 벌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너희는 지금부터 자신의 인생에서 30분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은 그 어떤 벌보다 가혹한 것이다. 나는 너희 인생에서 30분을 빼앗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를 맞지 않았고 청소도 하지 않는 느슨한 벌을 받게 되어 기뻐했으나 7, 8분 정도가 지나자 체벌에서 벗어난 기쁨이 점차 사라지면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건물에 붙은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시간은 묘한 느낌을 주면서 더디게 흘러갔다. 20분이 지나자 마치 시계가 거꾸로 가는 듯했다. 우리가 꼼짝없이 그곳에 서있을 때 벨소리가 침묵을 깨고 들려왔다. 학교 벨소리가 터진 듯 울린 것이다. 수업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날 선생님의 손아귀를 벗어나면서 나는 전쟁 포로는 적군의 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훗날 내 삶에서 권위적 인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벌을 줄 때 견딜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킨 것이었다. 그날 나는 서서히 시간은 가치 있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으므로 반드시 내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5월 8일은 ‘어머니날’이었는데 그날 학교에서는 백일장이 열렸다.  주제는 ‘어머니 은혜’였는데 내가 쓴 산문이 시(市)에서 한 사람만 받게 되는 교육감 상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은 자랑스러워하시며 수업시간에 내가 쓴 산문을 직접 읽게 하셨다. 혀가 짧아 발음이 좋지 않았던 나는 땀을 흘리며 원고지를 읽어갔다. 늘 그랬듯 잠시 후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 것을 생각하니 등에 식은땀이 났다. 낭독이 끝나자 선생님은 박수를 치시며 ‘잘 읽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잘 읽다니……. 혀가 짧은 나는 ‘산’을 ‘딴’으로 ‘숙제’를 ‘뚝떼’로 읽기 일쑤였으나 선생님은 용기를 주셨던 것이다.

 이후 선생님이 중등교원 시험을 쳐서 공립 고등학교에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나는 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 혀가 짧아서 항상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서 학교 가는 일이 지옥 같았던 시기를 극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답장이 왔는데 정확하게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다. 특혜를 준 것은 없었고 오로지 네가 잘했기 때문이라며 교사생활 20년 동안 이렇게 반가운 편지는 처음이었다며 '고맙다'는 말씀도 주셨다.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시간이란 우리 모두가 살고, 일하며, 꿈꾸고, 창조하는 소중한 존재하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지난 삶을 평가하는 것처럼 지난 시간을 평가하고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게 이후 내삶의 중요한 개똥철학이 되었다 .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옛. 금. 동'의 1부 격인 10대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며, 다음주부터는 20대의 이야기를 전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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