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100 구타의 추억 구타의 추억 <내가 이등병 때의 내무반 단체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매일 후임병을 구타해야만 잠이 온다는 악마같은 선임병들이 상당수 있고 구타에 정신이상을 일으켜 의병제대한 이도 있다> 1984년 가을, 무사히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나는 이듬해 대학 3학년에 복학하여 사회에 적.. 2014. 8. 16. 세 병정과 바람둥이 세 병정과 바람둥이 앞에서 쓰려다 깜빡하고만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 ‘옛날의 금잔디’를 구상할 때 오늘 이야기도 많은 소재의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망설이다보니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망설인 이유는 '19금'의 이야기들이어서 행여 물의를 빚을지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이.. 2014. 8. 8. 그때가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그때가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그것이 지나간 기억일지라도, 아름다웠던 삶의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쾌락이 자주 존재의 타락을 강요한다면 즐거움은 존재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정의가 없다면 인간은 수치다" 라고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지만,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의 기억이 없다면 인간존재는 수치일 것이다. 존 러스킨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보다 미와 추를 구분하는 능력이 우선되고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미와 추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면 자연스레 선과 악이 구별되어지는 능력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선과 악', 그리고 '미와 추'는 동일선상의 개념이 아닐까 하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그 시절 '틀린 것은 틀렸다'고 이야기해주.. 2014. 7. 25. 실종 신고 실종 신고 '친구'로 유명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똥개’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형사인 아버지(김갑수)가 낯선 고아 소녀(엄지원)를 집에 데려오며 비슷한 또래의 고교생 아들(정우성)에게 친남매처럼 지내라고 한다. 그러나 주인공(정우성)은 사사건건 자신의 생활에 간섭하는 그 소.. 2014. 7. 18. 예의에 관한 어느 기억 예의에 관한 어느 기억 별셋상회에서 업무과장으로 근무 중인 B과장은 딱장대요 애주가요 찰진 독설가로 유명하다. 삼십대 후반인 그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마시는 술 때문에 간이 나빠져서 얼굴에 젊은이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이고, 검은 빛깔의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술로 망가진 건 얼굴뿐만 아니라 매일 충혈 되어 있는 눈동자라든지, 쌀자루에 곡식이 가득 차 삐져나온 것을 연상시키는 볼록한 배라든지, 걸어 다닐 때 뒤뚱거리는 모습에서 벌써 늙어 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다. 뾰족한 턱 위의 입을 앙다물고 안경 너머로 찣어진 눈이 상대방을 노릴 때엔 부하 직원들이 오싹 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B과장이 질겁하다시피 싫어.. 2014. 7. 11. 아들과의 만남 아들과의 만남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니 키울 때 생겼을 다양한 사건들이 생각난다. 나는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자식이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부모에게 보여주었던 재롱과 귀여움을 밑천 삼아 평생을 부모 등골 빼먹으면 사는 존재이라고 지인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나 .. 2014. 7. 4. 그 집 앞 그 집 앞 “행복은 항상 그대가 손에 잡은 동안에는 작게 보이지만, 놓쳐 보라, 그러면 곧 그것이 얼마나 크고 귀중한지 알게 될 것이다.” (막심 고리키) 아내와 뒷산에 등산 갔다 내려오면서 15년 전 살았던 옛집 근처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골목이 눈에 띄자, 누가 먼저라고 .. 2014. 6. 27. 눈 오던 날 눈 오던 날 아내가 임신한 것은 결혼하고 만 2년이 지난 후였다. 어느 날 아내가 자신이 임신한 것 같다고 귓속말하기에 나는 기쁘다기보다는 덤덤한 마음이 되어버렸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내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들어 결혼한다는 게 언감생심이었는데 결혼을 하고나니 드디어 올.. 2014. 6. 20. 남자의 향기와 눈물 남자의 향기와 눈물 돌아오는 7월 11일은 지난 1981년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34주년이 되는 기일(忌日)이다. 서양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아버님에 대한 슬픔도, 그리움의 감정도 해가 갈수록 퇴색되어 이제는 그저 아련한 느낌만이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이었다. 우리가족이 살던 동네에 아버님 연배의 건달이 한 명 살고 있었다. 그는 하는 일 없이 동네를 배회하며 길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것을 하루 일과로 삼는 양아치건달으로, 동네 사람들은 멀리서 그를 발견하면 일부러 가던 길을 돌아갈 정도였다. 우리가 살던 골목의 끝집에 그는 살고 있었다. 하교할 때마다 그네 집앞에 앉아 나를 노려보는 살기어린 눈빛 때문에 나는 항.. 2014. 6. 5. 예방주사 예방주사 금년 1월부터 견비통을 앓고 있다. 팔에 마비가 오는 듯한 현상을 느껴서 동네 의원에 갔다. 혹시 중풍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로 인해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면서 걱정이 오기 시작했다. 내 나이 또래의 예쁜 여의사는 자신의 손을 내밀면서 꼭 잡아보라고 했다. 시킨 데로 했더니 분명한 것은 중풍(中風)이 아니나 걱정이 많으니 원인 규명을 위해 전문의에게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불치병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최초로 간 병원은 관절 질환으로 유명해진, 근년에 문을 연 정형외과 병원이었다. 엑스레이를 들여다 본 젊은 의사는 ‘어깨충돌증후군’이라고 병명을 이야기하더니 혹시 종신보험 든 게 있느냐고 물었다. 이후 의사는 한 달치의 약을 주면서 매일 ‘고주파 열 치료’와 더운찜질 치료를 한.. 2014. 5. 30. 뇌물을 돌려주기 위해 편지를 쓰다 뇌물을 돌려주기 위해 편지를 쓰다 남이 지운 짐은 부당하면 벗어던질 수가 있다. 그러나 스스로 원해서 진 짐은 설령 그것이 부당하더라도 던져버릴 수가 없는 법이다. 우리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생각이란 언제나 순간적이었다. 명상이라든가 묵상 또는 산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구체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은 그저 좋은 생각을 얻기 위한 환경의 조성일 뿐 실제로 우리가 원했던 결론을 얻어내는 것은 결국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순간적인 달콤함에 빠져 앞으로의 기나긴 길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도처에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설 연휴 직후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품을 버리는 곳에 스티로폼과 종이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얼추 잡아 평소의 2~3배는 족히.. 2014. 5. 16. 그들이 내 노래에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보세요 그들이 내 노래에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보세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핑계 대며 신에게 부질없는 부탁을 하지는 않았을까. 이를테면 강가의 풀숲에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자신이 떠내려가든지 죽든지 하는 운.. 2014. 5. 9.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