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100

결혼식 전후에 있었던 일들 결혼식 전후에 있었던 일들 결혼은 어떤 삶에 대한 다른 삶의 개입이다. 따라서 그 결합은 어슷비슷한 두 개의 원이 만나는 것보다는 들쭉날쭉한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것이 더 단단할 것이다. 나의 단점과 그의 장점이 맞물리고, 또 그의 능력과 나의 무능이 맞물리고……. 사랑.. 2014. 5. 2.
지독한 오해 지독한 오해 어느 유명 사회학자는 결혼을 대략 다섯 가지 측면을 가진 제도로 간주했다.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성(性)과 종족보존 외에 경제적 협력과 정서 및 보험의 기능이 그 내용이다. 다섯 가지 내용 중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결혼은 정서의 제도라는 표현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가장 실감이 나게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위로와 격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성한테서 오는 위로와 격려이다. 결혼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삶의 비참함과 고독을 이겨내기 위한 상설(常設)의 상담 역, 위로 역, 격려 역을 갖게 만들어주는 제도가 아닐까 한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외로움과 고통을 달고 살아간다. 예술이나 스포츠, 각종 SN.. 2014. 4. 25.
어떤 결혼식 (하) 어떤 결혼식 (하) 그림 출처 : 글림작가의 세상바라기 ( http://blog.daum.net/e-klim ) 신부 부모님이 술상을 들여왔다. 소불고기, 돼지고기 수육이랑 잡채, 부침개 등의 안주와 동동주를 한상 그득하게 차려 푸짐해보였다. 신랑을 포함해서 함을 들고 온 4명 모두 객기를 부리기 위해 마신 술 때문에 이미 떡실신이 되어있었지만 함잡이에 대한 어른들의 예의를 무시할 수 없어 다들 좌정하고 마시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빈속에 소주를 마셔서 엉망이 된 상태에서 동동주까지 마시니 드디어 정신들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들 비실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신부 동생 녀석이 친구 2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고등학교 2학년인데도 서른 살이 다 된 형님들의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너네들 고등.. 2014. 4. 18.
어떤 결혼식 (상) 어떤 결혼식 (상) 성적(性的)인 것에의 의지는 인간의 의지 중 가장 치열한 것 중에 하나이며, 그것에 대한 보상 또한 인간을 가장 크게 격려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사랑의 무덤이라고 한 말은 어디까지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정의 무덤인 것은 확실해보였다. 성 개방이란 우리가 힘들여 버리고 온 동물의 길을 그 방면에서만은 되돌리려는 것과 같아 보였다. 왜냐하면 그 주장을 가장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대학 시절 서클에서 사귄 S라는 친구가 기억난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한 몸을 바치겠노라고 버릇처럼 떠들던 그는 깡마른 체구에 말술을 마시는 술꾼이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눈인사로만 알고 지냈던 그와 나는 복학.. 2014. 4. 11.
한 겨울 밤의 꿈 한 겨울 밤의 꿈 그러니까 내가 취직을 하고 서울에 올라와 두 번째 맞이하는 겨울이었다. 삼선교 시장 맞은편 골목 안에다 전세방을 얻고, Y대학 철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후배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자취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야말로 썰렁한 자취방이었으나 그나마 후배가 있을 때는 그런대로 지낼 만했다. 한데 대학가의 계절적인 열풍이 불어 닥치면 참 난감했다. 개강, 휴학, 조기 방학의 방정식으로 이어지는 데모의 뜨거운 바람이 거세게 불면, 조카가 고향으로 내려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런대로 지낼 만했으나 겨울은, 스물 아홉 살의 노총각으로 죽치고 있는 나를 정말 미치게 만들어 버렸다. 밥을 내가 해먹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스물 일곱을 지나면 노총각으로 불렀다) 겨울철.. 2014. 4. 4.
인간다움을 위해 인간을 죽인다? 인간다움을 위해 인간을 죽인다? 이데올로기, 그 어떤 주의(主義)건,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화려한 선전과 이상의 겉치레를 하고 있건 그 본질은 이기주의(利己主義)다. 집단이건 개인이건 주의(主義)란 그것을 주장하는 자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어 있다. 주장하는 자는 그 과정에서 희생.. 2014. 3. 28.
엇갈린 인연(因緣) 엇갈린 인연(因緣) 현자(賢者) 가라사대. ‘여자와 장작불은 자꾸 쑤석대지 마라. 연애는 깨지고 장작불은 꺼진다.’ 사랑은 인간이 시(詩)란 표현을 찾아낸 이래 가장 흔한 주제였고, 애정 편력은 한 시인의 전기(傳記)에서 종종 가장 정채(精彩)있는 형상으로 나타났다. 근대 이후 구전민요로 전해져 오던 ‘갑돌이와 갑순이’ 이야기는 어쩌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정(情)의 문화를 중시한, 자신의 내밀한 정서를 상대에게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한국인들만이 만들 수 있었던 숙명적인 비극은 아닐는지. 현자(賢者)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랑을 사랑답게 하려면 , 첫째 말을 절약하고 다음에는 우정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말의 역할이 지나치면 사랑은 관념적이 되고 반드시 피로와 혼란이 오게 되고야 만.. 2014. 3. 21.
그해, 1986년 4월 전후의 학우들 그해, 1986년 4월 전후의 학우들 인간이 언어를 발달시키고 그 결과 운율 형식에 의해 자신의 정의(情意)를 표현한 것을 우리는 시(詩)라고 일컬어 왔다. 운율은 일상세계를 어떤 미묘한 커튼으로 격리시켜서, 독자의 마음을 ‘눈뜬 황홀’의 상태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참지 못할.. 2014. 3. 7.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3년 만에 복학한 나는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겪어야만 했다. 많은 이유를 필설(筆舌)로 다 할 수 없을 만치 사고(思考)가 정체되어 도무지 앞길이 보이지 않는 패닉 상태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해 전두환 정부의 간선제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는 날로 격해져 갔고 4층 이상의 캠퍼스 건물에는 연일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삐라가 날아 다녔다. 삐라가 날릴 때마다 숨어있던 사복 경찰들이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봄날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얀 전단지들을 보며 그 모습이 흡사 떨어지는 하얀 꽃잎 같다고 생각했다. 그해 봄, 서울대의 김세진·이재호 두 학생이 분신자살을 했다.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 2014. 2. 28.
그날로 돌아가자 그날로 돌아가자 귀향열차(歸鄕列車)에서 병영兵營을 뒤로 하고 귀향열차歸鄕列車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 보면 경사傾斜 굽이굽이 마다 끝없이 이어진 포도밭과 구릉丘陵. 자인면에서 남부 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온 길 이곳저곳에는 호수湖水가 지천至賤으로 .. 2014. 2. 7.
독수리를 위한 변명(辨明) 독수리를 위한 변명(辨明) 그 시절, 군생활의 시작인 신병훈련소에서부터 자대(自隊)까지 함께 와서 같은 내무반에서 동고동락하던 이른바 '군대 동기'가 있었다. 그는 인천에 있는 I대학교 화공과에 재학 중 입대했는데 고향이 마산인 관계로 훈련소에서부터 나와 금방 친해졌다. 신병교육대에서 훈련 받는 중에 아버님이 별세하는 아픔을 겪었던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도 술. 담배를 하는 좀 괴짜였는데 상당한 양의 독서를 하는 것 외에도 정의감과 의협심이 유달리 강했다. 우리는 둘 다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나는 테가 큼직한 뿔테 안경을 썼었고(조영남 안경을 연상하면 된다) 친구는 모서리가 유달리 각이 진 날카로운 인상의 안경을 썼다. 그래서 둘에게 붙은 별명이 ‘부엉이와 독수리'였다. 안경테 모양이 너무 커서, 날.. 2014. 1. 24.
미역국과 낙지국 미역국과 낙지국 군 제대를 육 개월 앞둔 나는 '독수리'라는 이름을 가진 훈련의 여파로 손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독수리 훈련'은 특수부대 등 북의 비정규군이 우리나라 후방지역에 침투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민, 관 , 군이 공동으로 시행하는 연례 야외 기동훈련.. 2014.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