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100 에필로그 에필로그 이제 이 기나긴 이야기의 마무리를 할 때가 온 것 같다. 작은 내(川)가 모여서 강이 된다. 삶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기억을 만들고 종국에는 기다란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에 만난 가난한 남녀 사이에 한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게 되었고 그도 이제는 늙어가고 있다. 과연 그는 무엇을 남기려 할 것인가? 인간은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율성과 자유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공간에서 가장 우선시 두어야 할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남의 지배나 구속을 당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우리는 자율성, 또는 자율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우리는 환경과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을 완성해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 2016. 11. 25. 인다라의 구슬 인다라의 구슬 1. 재개발 주택 아파트에서 산 지가 17년째다. 그전에는 지금 살고 있는 대형 아파트 단지 뒤의 재개발 대상인 주택가에서 살았다. 아버님께서 남겨 놓으신 집에서 대학생 때부터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는데 내가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슬하에 두게 되니 삼 대 다섯 명이 사는 집이 되어버렸다. 나는 대기업에, 아내는 공무원으로 부부가 맞벌이한 관계로 형편이 비교적 넉넉했는데도 그곳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편리함보다는 이웃 간의 보이지 않는 정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최근에서야 내리게 된다. 우리 아이 두 명은 집 옆의 골목들을 다니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큰애가 다섯 살 즈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가 동네인 만큼 빈한한 가정이 많았다. 점심때가 되면 큰애의 친구.. 2016. 11. 23. 낡은 청첩장 낡은 청첩장 원래 흰색이었던 속지가 누렇게 바랜 사진첩을 들추다가 사진 틈에 숨어있던 낡고 두꺼운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1971년에 만들어진 청첩장으로 언젠가 뭔가 쓰임새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보관해 온 것이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왔는데 발견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2016. 11. 10. 옛이야기 옛이야기 세상을 떠나신 지 몇십 년, 오래되었지만 조부모님에 관한 기억이 몇 가지 남아있다. 초등학교 시절, 겨울 방학이 되어 큰집에 가면 마당에는 알곡을 가득 담은, 짚으로 짠, 쌀가마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나는 쌀더미 위를 다람쥐처럼 올라가곤 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 2016. 11. 2. 지금도 사랑 속에서 지금도 사랑 속에서 지난주는 차를 타고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지나다 큰길 근처에서 코레일의 ‘가야역’이란 안내판을 보게 되었다(위 사진). 그곳은 여러 채의 코레일이 운영하는 복지 시설이 눈에 띄었다. 게중에는 몇 개 정도의 부속 건물이 있었는데 유치원과 직원 사택, 휴게시설로 여겨졌다. 내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어릴 적 해당 장소에서 보았던 철도청 건물 여러 채가 옛 기억 그 위치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물자가 귀하고 가난했던 그 시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마다 목욕하는 일은 항상 큰 숙제였을 듯하다. 아홉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였던, 아들 셋을 두셨던 내 아버님은, 당신이 근무하셨던 철도청 가야역 그곳 직원 목욕탕에서 매년 명절 즈음이면 우리를 씻기셨다. 우리 형제 세 명은 역사(驛舍) 옆 .. 2016. 9. 2. 개와 고양이에 대한 여러 고찰 개와 고양이에 대한 여러 고찰 운전을 하다 보면 차에 치여 죽은 짐승의 사체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주로 개와 고양이 사체다. 당시 부산시와 진해시의 접경에 있었던 그 공장 근처는 원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대규모 공장이 완공되었으나 도로는 계속 건설 중이어서 매일 시골 동네 마을 길을 아슬아슬하게 운전해 가야만 했다. 일차선 외길이어서 맞은편에서 차나 경운기가 오면 100m 가까이 후진 운전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함께 타 출근하던 친구는 차에 치여서 죽은 후에도 계속 차바퀴에 밟혀 떡이 되다시피 한 개나 고양이의 사체를 보면서 말했다. “도로를 건너는 두 동물의 판단은 판이하기 짝이 없네. 차가 앞에 왔을 때 개는 무조건 도로를 돌진하는 편이고, 고양이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갑자기 건.. 2016. 7. 22. 잘 가시오, 가까이서 오래 사귄 이여 잘 가시오, 가까이서 오래 사귄 이여 요즘 나는 가슴 한군데가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그런 경험은 없지만, 수술을 받아 신장이나 폐와 같은 중요한 장기 하나를 베어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지난주 친구 한 명이 죽어 빈소에 다녀왔기 때문인데 두 가지 사항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첫째는 아직 생생해야 할 나이의 그가 갑자기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의 부음을 받은 지인들의 이기적인 모습에서였다. 죽은 친구는 최근 타지방에 살았던 관계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해마다 한 번 정도는 만나왔으며 매월 한 번꼴 이상 통화를 주고받아 왔다. 내가 서른다섯 살이던 해, 새로 전입한 회사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 회사는 갓 설립되어 회사의 뼈대를 만드는 중이었는데 임시로 만들어진 부서에.. 2016. 7. 1. 미안함을 전하다 미안함을 전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관계로 여름이 오면 걱정이 앞선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 길어진 여름을 어떻게 슬기롭게 이겨내느냐 하는 걱정 때문이다. 담배를 끊은 것은 2년이 넘지만, 그전에 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여름을 이기는데 특효라는 보신탕을 안 먹기로 한 것인데 나 스스로 한 그 약속을 10년 전부터 지금껏 잘 지키고 있으니 이는 스스로 칭찬할 만한 일이다. 열 살 즈음에 어머니가 ‘소고깃국’라고 천연덕스럽게 속였던 때문에 개장국을 먹은 적이 있다. 당시는 고깃국을 구경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먹게 되었지만, 개고기가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유별나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형 두 명은 식성이 무척 까다로웠기 때문에 이후 우리 집 밥상에서 더는 .. 2016. 6. 7. 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 청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30년 전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도 취업이 어려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문과 출신만. 더 범위를 좁히면 상경계 외의 문과는 취업이 어려웠다는 말이 솔직할 것이다. 학과(學科)에서 50명가량이 졸업을 앞두고 있었으나 졸업식 당일, 취업이 결정된 이는 나를 포함한 5명에 불과했다. 9급 공무원 자리는 널리고 널렸으나 대졸이 어떻게 그런 곳에……. 라는 생각에 응시하지 않았고, 7급 공무원 시험은 행정고시 떨어진 이들이 갈 곳 없어 치는 자리인 줄 알았다. 7급 공무원 갈 바에야 방향을 틀어서 그 노력으로 대기업이나 공사에 시험 치자는 의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졸업 후 2년 정도가 지나자 대강의 동기생들이 취업을 마친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9급 공.. 2016. 3. 18. 부라보! 내 인생 부라보! 내 인생 악마가 있을까? 기껏해야 2,000자가 될까 말까 한 이 글을 쓰기 위해 석 달 동안 비슷한 내용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나는 지치게 되었는데 ‘아이고! 이제는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자리에서 껄끄러운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매우 친한 친구의 부친이 별세하셔서 장지(葬地)까지 따라나선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H가 그 자리에 온 것이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악마로부터 시험에 빠지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악마가 초자연적인 존재, 즉 흔히들 말하는 귀신과 같은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이문열의 소설‘사람의 아들’을 읽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괴롭힌 그 악마가 '아하스 페르츠'라는 구두수선공이어서 .. 2016. 3. 4. 결핍 없는 곳에서 목 놓아 울다 결핍 없는 곳에서 목 놓아 울다 시간이 날 때마다 파란편지 선생님 블로그(http://blog.daum.net/blueletter01)의 글을 읽곤 한다. 선생님의 글솜씨가 유려하고 군더더기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무엇보다도 진영논리에 휘둘리시지 않으며 그와 별도로 청년처럼 젊게 사신다는 점이 부럽다. 사물의 팩트를 바라볼 때 지엽적인 부분이나 감정적으로 흐르기 십상인 선입관에 휘둘리지 않고 핵심을 직시한 후에 주변을 생각하는 부분은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최근에 읽은 선생님의 재미있는 글은 ‘그리팅맨(greeting man), 미안!’(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766)이었다. 조각가 유영호 씨가 만든 그 조각품은 발가벗은 남자가 인사를 하기 위해.. 2016. 1. 21. 장군(將軍)과 군중(群衆) 장군(將軍)과 군중(群衆) 1980년대 초반 어느 해의 늦은 봄이었다. 당시 5.18 사태라고 불리던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 전해의 일이었다. 대학 2년생인 우리에게는 이수하지 않으면 학교 졸업을 하지 못하는 ‘필수 과목’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교련’이라는 과목이었다. ‘교련’은 ‘학생에게 가르치는 군사훈련’을 의미한다. 대학에 와서 학군단이라는 곳에서 교련을 배워보니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배우던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다만 차이점은 1~2학년에만 배우는 이 과목을 학년마다 필수적으로 직접 군부대에 입소해서 열흘가량 숙식하며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통제되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다는 점은 당시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던 우리에게는 다소 수치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2016. 1. 15.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