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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316

보스니아 소설가 이보 안드리치(Ivo Andrić) 보스니아 소설가 이보 안드리치(Ivo Andrić, 1892~1945) 보스니아의 소설가로 1892년 보스니아의 트라브니크에서 출생했다. 소년 시절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보스니아에서 보낸 안드리치는 자그레브와 비엔나에서 철학을 공부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으로써 학업을 중단했다. 이 무렵 안드리치는 진보적 민족 단체 ‘청년 보스니아’에 가담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나 1914년 많은 단원들이 체포되고 안드리치도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때 옥중에서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키에르케고르는 훗날 그의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1년에 시를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20년 첫 단편집 『알리야 제르젤레즈의 여행』을 비롯 보스니아의 여러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 2025. 1. 25.
최초 문예동인지 [창조] 최초 문예동인지 [창조] 한국 최초의 종합 문예동인지로 1919년 2월 1일에 창간되어 1921년 5월 30일까지 통권 제9호를 발행하였다. 편집 겸 발행인은 제1ㆍ2호 주요한, 제3∼7호 김환, 제8호는 고경상이고, 제9호는 김동인ㆍ김찬영ㆍ김환ㆍ전영택 등이 공동 편집하였다. 발행은 창간호부터 제7호까지 일본 도쿄에서, 제8ㆍ9호는 서울에서 하였고, 체재는 국판 120면 안팎이었다. 창간호는 1919년 2월 1천 부, 81면으로 발행되었으며, 값은 30전이었다. 당초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간행된 이 잡지를 통하여 시 70여 편, 소설 21편, 희곡 4편, 평론 16편, 번역시 49편이 발표되었다. 신문학사에서 그때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을 청산하고, 구어체 문장의 확립과 새로운 문학사조였던 자연주의 및 사.. 2025. 1. 18.
조선시대 가곡집 가곡집 『가곡원류(歌曲源流)』 조선시대 가곡집 가곡집 『가곡원류(歌曲源流)』 1876년(고종13) 박효관ㆍ안민영이 엮은 가곡 모음집으로 조선 최종 최대의 가집이다. 이라고도 한다. 시조와 가사가 남창(男唱)․여창(女唱)으로 나뉘어 평찬되었는데, 이본(異本)이 많다. 이본은 장서각본(藏書閣本)ㆍ규장각본(奎章閣本)ㆍ국립국악원본ㆍ하규일본(河奎一本)ㆍ최남선본 등 11종이 있다. 1929년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에서 최남선본을 등사로 인출(印出), 이것을 다시 1952년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 재인출했다. 하규일본은 1943년 이왕직 아악사장(李王職雅樂師長)을 지낸 함화진(咸和鎭)이 자작 시조까지를 첨재(添載)하고, ‘증보가곡원류’라 하여 간행했다. 각 이본의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대체로 체재는 권두(卷頭)에 송(宋)나라 오증(吳曾)의 에서 ‘.. 2025. 1. 11.
문예지 [조선문단(朝鮮文壇)] 문예지 [조선문단(朝鮮文壇)] 1924년 10월 1일에 창간된 문학잡지로 동인지 아닌 한국 최초의 순문학지였던 [조선문단]은 방인근(方仁根)의 출자(出資)와 편집 및 경영으로 ‘이광수주재(李光洙主宰)’라는 표제 아래 발족하였다. 그러나 동인지가 아닌 [개벽]이 박영희ㆍ김기진 등을 중심으로 한 프로문학적인 동인적(同人的)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문단]도 이광수ㆍ방인근ㆍ전영택ㆍ주요한 등을 중심으로 한 준동인지(準同人誌)였다. [조선문단]의 문학적 경향은 주로 민족주의적인 방향으로 흘렀으나, 순문학적인 창작 의욕을 반영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매호 김안서(金岸曙)의 . 김동인ㆍ염상섭 등의 같은 것을 게재했고, 또한 창간호부터 현상추천제(懸賞推薦制)를 두어 다수의 신진작가를 .. 2025. 1. 4.
월간 문예잡지 [문예공론] 월간 문예잡지 [문예공론] 1929년에 창간되었던 월간 문예잡지. 1929년 5월 평양에서 양주동(梁柱東) 주재로 창간하여 1929년 7월 통권 제3호로 종간되었다. 편집은 평양에서 하고 인쇄는 서울에서 한 점이 특이하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방인근(方仁根)이다. 1929년 4월 30일 광문사(光文社)에서 인쇄하여 5월 3일 [문예공론] 사에서 발행하였다. 창간호의 ‘편집여언’에 “본지는 한 문단의 권위를 총망라하여 현대 조선 문예의 일대 조감도를 전개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듯이, “문단의 총체적 발표기관으로서…… 문예상 모든 의견과 주장을 불편부당의 태도로써 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권두의 집필자 명단에 40명 가까이 되는 이름이 열거되어 있어, 상당히 다양한 필진을 수용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 2024. 12. 28.
순수 문예지<문학예술(文學藝術)> 순수 문예지 1954년 4월 l일 창간된 순수 문예지로 편집 겸 발행인 오영진(吳泳鎭)이었다. 발행소는 [문학과 예술사]로 국판(菊版) 200면 내외였다. 애초 [문학예술]로 등록되었으나 환도(還都)와 인쇄소 사정 등으로 미처 발간하지 못하여 납본하려던 날 정간령(停刊令)이 내려 [문학과 예술]로 재등록하고 제3호부터 다시 [문학예술]로 복귀하였다. 이 잡지는 애초 피난지 부산에서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북한지부(文總北韓支部: 지부장 오영진)가 발행하던 타블로이드판 [주간문학예술(週刊文學藝術)]을 개편ㆍ게재한 것으로 박남수(朴南秀)ㆍ원응서(元應瑞)ㆍ김이석(金利錫) 등 월남 문인이 주체가 되어 제작ㆍ발행하였다. 국판 200면 내외로 매호 화가들의 표지화(表紙畵)로 장식했고, 추천제를 두어 많은 신인을 .. 2024. 12. 21.
월간 문학잡지 [문예] 월간 문학잡지 [문예] 월간 문학잡지로 1949년 8월 1일 창간되었다, 1954년 3월 1일 통권 21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발행인은 모윤숙, 편집인은 김동리에서 1950년 6월호부터 조연현으로 바뀌었다. 국판 200쪽 안팎. 창간호의 필진은 소설에 염상섭(廉想涉)ㆍ최정희(崔貞熙)ㆍ김광주(金光洲)ㆍ황순원(黃順元)ㆍ최태응(崔泰應)ㆍ허윤석(許允碩)ㆍ홍구범(洪九範), 시에 박종화(朴鍾和)ㆍ김동명(金東鳴)ㆍ모윤숙ㆍ유치환(柳致環)ㆍ박두진(朴斗鎭)ㆍ박목월(朴木月)ㆍ조지훈(趙芝薰)ㆍ김춘수(金春洙)ㆍ이종산(李鍾山), 평론에 김진섭(金晋燮)ㆍ이병기(李秉岐)ㆍ백철(白鐵)ㆍ조연현ㆍ곽종원(郭鍾元)ㆍ서정주(徐廷柱)ㆍ김동리 등이었다. 문학에서 정치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했으나, 사실은 우익의 입장에 동조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2024. 12. 14.
월간종합지 [개벽] 월간종합지 [개벽] 1920년에 창간되었던 월간종합잡지로 A4판. 160쪽 내외였다. 천도교단(天道敎團)에서 민족문화 실현 운동으로 세운 [개벽사(開闢社)]에서 출간하였으나, 1926년 8월 1일 통권 제72호(8월호)를 끝으로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되었다. 천도교는 항일운동과 신문화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중, 민족 문학의 수립과 민족 전통의 문화유산 확립을 기본으로 언론·학술·종교·문예를 게재하는 종합월간지를 발간하기로 하고, ‘후천개벽 사상’에서 이름을 따 ‘개벽사’를 창업하고 [개벽]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때 사장은 최종정(崔宗禎), 편집인은 이돈화(李敦化), 발행인은 이두성(李斗星), 인쇄인은 민영순(閔泳純) 등이었다. 창간 이유는 “세계사상을 소개함으로써 민족자결주의를 고취하며, 천도교 사상과 민.. 2024. 12. 7.
월간 [신태양지] 월간 [신태양지]   1949년, [신태양사]에서 황준성이 소설 · 수필 등의 문학 작품과 정치 · 경제 등에 관련된 논문을 수록한 월간 잡지로  발행인 겸 편집인은 황준성(黃俊性)이며, 발행소는 서울 중구 태평로2가 신태양사였다. 잡지의 판형은 A5판, 면수는 350면 내외였다. 1959년 6월 1일 통권 제80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이 잡지는 소설·수필·희곡 등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시사정보 및 국가·사회·경제 등에 관련된 논문을 수록함으로써 종합잡지의 구색을 갖추었다. 당시의 정세가 6·25로 인하여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도 종합잡지의 면모를 갖추고 내용도 충실하였으며, 용지의 질도 향상되고 꾸준한 발행부수를 유지하여 당대의 대표적인 종합잡지의 하나가 되었다. 표지는 컬러판으로 인쇄하였고 주요.. 2024. 11. 30.
월간 종합잡지 [동광(東光)] 월간 종합잡지 [동광(東光)] 1926년에 창간되었던 월간 종합잡지. B5판. 편집 겸 발행인은 주요한(朱耀翰)이다. 1926년 5월에 창간되어 1933년 1월에 통권 40호로 종간되었는데 원고 압수로 제3호를 발행하지 못하였기에 실제로는 39호가 발행되었다. 사회주의 잡지들에 맞서 안창호(安昌浩)의 [흥사단(興士團)]을 배경으로 창간되었다. 편집내용은 사상ㆍ학설의 연구ㆍ선전, 문예의 창작ㆍ번역소개, 역사ㆍ지리와 전기ㆍ전설ㆍ풍속ㆍ습관 등을 주로 다루었으며, 편집방침은 ① 건전한 흥미기사, ② 과학의 통속화, ③ 풍부한 삽화, ④ 국문 용법의 통일, ⑤ 간결ㆍ평명(平明), 실제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1927년 8월 16호를 내고 휴간하였다가 다시 이광수(李光洙)의 주선으로 1931년 1월 17호를 속간하였.. 2024. 11. 23.
여성지 [신여성(新女性)] 여성지 [신여성(新女性)] 1923년 9월 1일 자로 창간된 여성잡지로 [개벽사]에서 이미 내고 있던 [부인]을 종간하고 그 후신으로 낸 잡지이다. [부인]이 주로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했다면 [신여성]은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호흡하는 젊은 여성을 독자로 삼았다. 요즘처럼 잡지 제호를 발행인의 뜻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이 또한 검열 당국의 까다로운 허가 사항이었다. 편집 겸 발행인 박달성, 인쇄인 민영순, 인쇄소 대동인쇄(주), A5판 80면, 정가 30전이다. 제3호부터는 편집 겸 발행인이 방정환(方定煥 1899~1932)으로 바뀌고, 방정환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차상찬이 맡아서 1934년 4월호까지 통권 38호를 냈다. [신여성]은 목차만 보아도 [부인]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축 늘어진 구.. 2024. 11. 16.
종합교양지 [사상계(思想界)] 종합교양지 [사상계(思想界)] 1953년에 창간되었던 월간 종합잡지로 [사상계사] 발행으로 발행인은 장준하였으며 뒤에는 부완혁이었다. 이 잡지는 애초 1952년 8월 당시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원장 백낙준)의 기관지였던 [사상(思想)]으로 출발하여, 당시 6ㆍ25전쟁의 와중에서 국민사상의 통일, 자유민주주의의 확립 및 반공정신 앙양 등 전시하에 있는 지식인층의 사상운동을 주도하는 사상지(思想誌)로 창간되어 통권 4호를 내었다. 그 뒤 이 잡지의 편집에 참여하였던 장준하가 1953년 4월에 단독 인수하여 [사상계(思想界)]라는 제호로 시판함으로써 본격적인 종합교양지로 출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A5판 100면 내외로 발행되다가 400면 내외로 증면하였으며, 창간호 3,000부가 발간과 동시에 매진.. 2024.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