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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봄이 왔던 캠퍼스

by 언덕에서 2013. 11. 22.

 

 

 

 어떤 분들은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서 쓰고 있는 이 글들을 수필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최인호 작가가 쓴 연재소설 <가족>을 모델로 해서 내 나름대로 쓰고 있는 ‘소설’이다. 주제넘은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주변 이웃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일기와 같은 모자이크 소설을 쓰고 싶었다.

 잘하는 것은 별로 없지만 나름 글 쓰는 것은 자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나와 주변의 이야기’야말로 고갈되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소재라고 생각했다. 카테고리 서두의 프롤로그에서 밝혔다시피 나는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없겠지만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이 콩트들은 언제 끝이 날 지 모르는 ‘미완성 교향곡’과 같은 건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들이 나 자신과 가족 이야기를 넘어 우리 사회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처럼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 가운데에서 나타나는 범상치 않은 감동과 고뇌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대, 20대, 30대, 40대, 그리고 현재의 모습까지 5부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애초 구상을 해두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2부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까지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실명을 사용했고, 내용도 사실(fact)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2부를 구상하다 보니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학교, 군대, 회사 등의 실명을 표기할 때 예상되는 문제점 때문이다. 그래서 향후의 연재에서는 필요한 경우에는 등장인물이나 단체의 실명을 표기하지 않고 가명을 사용할 예정이다. 이점 양해 바란다. 자,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봄이 왔던 캠퍼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그리고 내가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캠퍼스의 잔디는 푸르고 하늘은 맑았다. 새로 산 양복을 입고 교문에 들어서니 그 순간 세상은 모든 게 내 것일 것 같았다. 그 기분이 언제까지 지속되었을까?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니 대학생활에의 회의가 생겨났다. 학과. 동문회. 서클 등에서 열어준 잦은 환영회와 회식은 나를 술독으로 빠뜨려 무절제한 방탕생활로 이끌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해 4월말부터 비상계엄이 확대되는 바람에 정국은 급랭했고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며 TV 뉴스에 나오던 대머리가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건 확실하게 보였다. 교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구석구석 포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5월이 되자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꼬리를 이어 계속되었다. 캠퍼스 고층 건물마다 '군부독재 타도하자!'는 삐라가 바람에 날렸고 벽보의 대자보에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다'는 글귀가 감성을 자극했다.

 그러는 사이에 캠퍼스에서 고교 동창 녀석을 만났다.

 "윤, 어떻게 지내니?"

 "그냥 살고 있어. 너는?"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내가 나가는 모임에 같이 가자. 여러 학교 학생들의 영어독서 토론회 모임이다."

 4월부터 교문 앞에 무장한 군인들과 탱크가 도열하더니 무기한 휴강이 계속되었다. 술집을 찾지 않고 뭔가 공부할 수 있는 모임이려니 하여 몇 번 참석한 모임에서 내 마음을 흔들게 했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그곳에 데려간 친구 녀석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인 모양이었다. 모임 때마다 누군가가 유심히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녀석이 그녀가 내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모임의 발표회에서 유달리 지성미와 여성미를 발산하는 그녀에게 나 역시 관심 많았던 터였다. 다리 저는 장애인이 앞에 걸어가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앞질러 가지 못하던, 길가의 걸인을 만나면 버스비를 빼고 가진 돈 모두를 주고 나서야 돌아서던,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 사진을 보며 울음을 터트리던 그녀 모습은 목표 없이 살아가는 나에게는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과 같았다. 당시 그녀는 신이 내게 주신 그 모든 가치, 그 모든 아름다움의 정점에 서 있었고, 당연히 그 결과는 무위(無爲)였다고, 라고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한 날들이 두 달 남짓 되었을까? 모임이 있는 날에는 함께 많은 시간을 가졌던 그녀가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뭔가 심상찮은 느낌에 친구 녀석을 닦달해보니 이유는 딴 곳에 있었다. 유명 대형교회 목사의 무남독녀인 그녀는 이단종교(?) 신자인 내가 못마땅하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성경 및 문학에 박식한 아카데믹한 청년으로만 알았는데 천주교 신자여서 실망이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개종(改宗)시킬 요량으로 계속 만나왔는데 도저히 손댈 수가 없을 정도의 모태신앙과 독불장군 식의 현학(衒學)을 갖추고 있어서 이제는 그만 결별하노라 전했다. 독서회 회합이 끝난 후 뒤풀이로 이루어지는 회식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니 소주 두 세병은 예사로 마시고 게다가 담배까지 피우는 모습을 목격하니 사탄(satan)의 종자(從者)임을 재차 확인했다는 말도 전했다.

 탈레스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고 단언했다. 그리스의 철인들은 스스로 변화하거나 운동하는 것은 생명 자체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변함'의 본질을 주변의 전언을 토대로 나름대로 정리해보니 이랬다.

 그녀는 독서연구회에서 알게 된 ‘나’란 인간을 전도(傳導)해서 아버지의 교회로 데려갈 생각을 했는데 여러 차례 만나다 보니 도저히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질 위인이 아니었던 걸로 판단한 것 같다. 대개의 사람들은 예수나 불타를 막연하게 신비로운 존재로 생각하는데, 당시 나는 종교의 창시자라고 일컫는 예수ㆍ불타ㆍ모하메드를 신비한 인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역사 속에서 살았던 인간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인간으로서 지닌 한계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였는지를 항상 생각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찮은 불타와 같은 레벨로 생각하는 점, 술. 담배를 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청교도적인 면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자유분방함에 당황했으리라. 그래서 자연스레 ‘사이’를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을 정했는데 메신저로서 또 친구 녀석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스무 살의 나에게 그 여파는 견딜 수 없으리 만큼 혹독했다. 이유 없이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나는 식음전폐 수준이 되어 방바닥에 드러눕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상사병(相思病)에 걸린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포복절도 할 일이지만 그녀를 만나 단판을 지어야 한다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결론을 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등굣길의 발길을 돌려 그녀가 다니는 학교 방향의 버스를 탔다. 해당 단과대학의 게시판에서 수업시간표를 확인하고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아침부터 이 교실 저 교실 앞을 서성거리다 저녁 무렵에야 도서관 입구에서 겨우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다방에서 어색한 표정으로 함께 커피를 마셨으나 이야기는 서로 겉돌고 있었다. 차갑고 냉랭한 분위기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자리를 옮긴 칼국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단념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수 있지요.”

 “연락드려도 될까요? 전화번호를 좀…….”

 “아니요. 제가 전화를 드리지요. 전화번호를 주세요.”

 이후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복학생 선배에게 고민 어린 상담을 해보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어리석기 짝이 없구만. 싫다는데 찾아간 것부터가 이상한 거야. 버스가 떠났는데 자네 혼자서만 고통스럽게 손을 흔들고 있는 거지.”

 결론은 명약관화(明若觀火)했다. 해결책은 그녀에 관한 모든 기억을 단칼로 무를 자르듯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2년 후 군입대하는 그날까지 신산(辛酸)함은 계속되었다. 차라리 그녀가 피카소를 좋아하는 모더니스트, 르노와르를 좋아하는 로맨티스트, 하는 식으로 구획된 삶을 살고 있고 그렇지 않은 내가 싫다고 말했다면 그토록 너절한 기분은 아니었겠지.

 누구라도 만일 자신이 꿈꾸는 어떤 가능성이 저런 식으로 배반당할 것이라면 그런 가능성은 차라리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부터 아예 지워버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번연히 그녀에게 배반당할 줄 알면서도 실낱같은 가능성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면 그런 삶이야말로 지옥에 다름 아닐 것이다.

 결국 나는 그녀에 대한 감각들을 이후에도 고스란히 자신의 내부에 남겨둔 채 어떤 관념 속에서만 그녀와 헤어지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당시에 나는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 되는가를 비로소 알게 된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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