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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모든 것은 변한다

by 언덕에서 2013. 11. 29.

 

 

모든 것은 변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나날이 늘어가기만 했다. 사랑과 운명이라는 단어들은 장난스런 언어유희로 보였다. 인고의 정신과 인문학도로서의 자만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뜨거운 가슴은 어두운 밤과 차가운 바람에도 식을 줄 몰랐다. 그리움의 감정은 여전히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배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달면 불길처럼 뜨거워지고, 식으면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가만히 있으면 연못처럼 고요해지고, 움직이면 하늘까지 뛰어오른다. 사나운 말처럼 가만히 매어져 있지 않은 것, 이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중국 춘추시대 철학자 장자가 쓴 <장자>에 나온다.

 

 답은 “사람의 마음”이다. 장자는 연이어 말했다.

“인간의 마음처럼 간사한 것도 없다. 오늘 좋다가도 내일은 싫고, 오늘 기쁘다가도 내일은 우울하고, 오늘 사랑하다가도 내일은 미워하고, 오늘 선(善)을 베풀다가도 내일은 악(惡)을 저지르고, 오늘 웃다가도 내일은 우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스무 살 그 시절, 야한 여자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녀석은 야하게 화장한 여자나, 손톱에 새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를 보면 기겁할 정도로 질색했다. 반면, 화장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다니는 여자를 보면 호감을 가졌다. 그래서 친구는 자신과 결혼할 여자는 절대로 화장을 하지 않는 수수한 여자라야 된다고 늘 생각하고 지냈다.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교회에 다녔는데,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어느 날인가부터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도 수수하게 하고 다니는 한 아가씨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던 그는 그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아가씨의 성격이 수수해서 차림새도 수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는 그 아가씨에게 반했고, 10년 동안 끈질기게 구혼을 한 결과 결혼 승낙을 얻어내서 마침내 자신의 이상형인 그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건은 결혼하고부터 시작되었다.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던 부인은 매우 게을렀다. 아침에도 10시가 넘어서야 일어났고, 밖에 나가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얼굴에 물 한 방울도 대지를 않았으며, 당연히 머리도 감지 않고 빗지도 않았다. 옷도 아무것이나 입고 자주 갈아입지도 않았다. 부인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그때서야 그는 깨달았다. 부인이 처녀 시절에 수수하게 하고 다녔던 것은 성격이 수수해서가 아니라, 바로 게을러서 꾸미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틈이 날 때마다 내게 말했다.

 "사랑? 웃기지 마라. 모든 것은 헛거다!"

 나는 잽싸게 대답했다.

 "모든 것은 변하는 거다. 너는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야!"

 어쨌든 그는 부인의 게으름에 질려 버렸다. 스무 살 때 야한 여자에게 질렸던 그가 이후 화장도 하지 않은 수수한 여자를 보면 오히려 질려 버렸고, 오히려 야한 여자를 동경하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20대 초반, 그 시절 나 역시 짙은 화장을 한 젊은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 세월이 흐르니 짙은 화장을 한 여자를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살아보니 화장도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수한 것을 좋아해서 화장하지 않는 여자도 있지만, 게을러서 화장하지 않는 여자도 상상 외로 많다는 사실을, 화장한 여자를 싫어하는 젊은 남자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말할 수 없는 주관적 본능이나 직관에 있는 것이지 말할 수 있는 객관적 경험이나 합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것이 더 자극적이고 효과적인지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이제는 남녀간에 선택하는 쪽이나 선택당하는 쪽, 유혹하는 쪽이나 유혹당하는 쪽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마음은 자연의 변화만큼이나 늘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에는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 따라서 순수함이 불결함으로 변할 때도 있고, 미가 추함으로 변할 때도 있으며, 미소가 간사함으로 변할 때도 있고, 침묵이 음흉(陰凶)으로 변할 때도 있으며, 진실이 거짓으로 변할 때도 있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은 변한다.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고, 젊음은 늙어가고, 부귀는 빈천으로 돌아가며, 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지게 마련이다. 변해가는 실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집착하거나 붙잡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뒤따라오게 된다. 우리가 늘 괴로운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는데 붙잡고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고,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이 만들길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힘든 존재일 뿐이다.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한다. 집착하면 아름다운 마음이 없어지고 미운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모든 것은 시간 속에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도 변하는데 어찌 모든 것이 변하지 않길 바라겠는가?

 그런 것이었다. 인간의 사랑이란 것은 반드시 자줏빛 망토를 휘날리며 백마를 타고 저 먼 데서 오는 건 아니었다.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었는데 철없던 스무 살 우리들은 애써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봄날이 오기 전에 봄날보다 먼저 두터운 거름을 밀치고 돋아나는 단단하고 뾰쪽한 마늘 싹처럼 불현듯 돋아나 순식간에 무럭무럭 자라는 신기한 그 무엇이었는데도 그 시절 나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사랑'이란 추상적인 관념 속에서만 계속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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