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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어른이 되기 위해 떠났던 여행

by 언덕에서 2013. 11. 1.

 

 

 

어른이 되기 위해 떠났던 여행


 

 

 

 

그해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치른 후였다. 우리는 고교졸업과 대학입시 시험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유달리 감성이 뛰어났던 같은 반 친구 두 명과 나는 무작정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바다로 떠나기로 했다. 당시 유행했던 송창식의 ‘고래 사냥’이라는 노래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시험을 평소 실력에 비해 잘 치지 못했다고 생각들 하고 있었으므로 시험결과 발표는 두려웠으나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이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 하나로 버티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집을 떠나기로 한 것은 아마도 입시에서 자유로워졌다는 해방감과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산의 중심지 서면에 있는 부전 역에서 울산, 포항으로 그래서 종국으로는 강릉까지 가서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를 만나자는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다. 철없는 초급청년 세 명은 간단한 배낭에 옷가지 몇 점과 만 원짜리 지폐 서너 장을 쥔 채 열차에 몸을 맡겼다. 여행을 도모한다고 했지만 기실, 학교에서 한 수학여행을 간 것 외에는 아무런 경험이 없는 처지들이었다. 완행열차인 비둘기호가 부산 시내와 해운대를 지나 현재 기장군 지역인 좌천역이라는 바닷가 시골 역에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승객을 모두 태웠음에도 열차는 출발하지 않고 계속 멈춰있었다. 열차가 고장 났다든지, 다른 기차를 보내기 위해 잠시 멈춘다는 식의 차내 방송 또한 없었다. 그때 친구들과 내가 바라본 차창 밖 플랫폼에는 열차 차장과 승객 한 명이 승강이가 벌이고 있었다. 열차에서부터 강제로 하차 된 승객은 10대 후반 정도의 뚱뚱하고 키가 작은 청년으로 보였는데 짧은 스포츠형 머리와 허름한 점퍼를 입은 채 보퉁이를 하나 든 상태로 선한 눈매를 갖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청년은 무임승차를 했고 차장은 빈 좌석이 많은 열차임에도 눈감아 주지 않았을까? 차창 밖 광경을 구경하던 우리는 궁금증 속에 그들을 주시했다. 강제로 하차 된 청년은 다시 열차에 올라타야 한다는 애절하고 간절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차장에게 보내며 계속 승차를 시도 중이었다. 그러다가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연이은 열차탑승 시도가 저지되자 청년은 차장에게 항의라도 하듯 입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앗! 이럴 수가……. 무료하게 열차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승객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 점퍼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스웨터를 벗고 상의 속옷까지 벗으니 나신이 되었는데 아주 큼직한 젖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이어서 차장이 저지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바지와 팬티까지 벗고 전라(全裸)가 되었는데 그 청년은 여자였다. 당황한 차장은 무전기로 역무원들을 불러 담요로 여자를 감싼 채 역 구내로 강제로 데리고 갔고 잠시 후 열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발했다.

 친구 둘과 나 사이에는 몇 분 동안 계속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무엇이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당시 우리는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는 애송이의 나이였지만 나름의 소설 같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나이가 20세 전후이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발달장애 또는 정신지체 상태일 것이다. 아마도 보호된 시설 또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숱한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괴롭힘을 당하다 못해 그곳을 무작정 탈출하여 자유로운 곳으로 가기 위해 무임승차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다시피 곧 열차 승무원에게 적발되었고 그 상태는 그녀에게는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공포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녀는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니었지만, 예전의 지옥과 같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뭔가 반대급부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고 그것은 성(性)일 것이다.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오늘 저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겠지……. 그러나 이렇게 잔인하게 움직이고 있는 험난한 세상은 참으로 무섭구나.”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나는 그때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은 내 인생에 많은 교훈을 남겨 주었다. 요즘의 관점에서는 소외된 계층의 복지 차원에서 접근될 문제겠지만, 당시 우리는 인간이 지닌 배타적인 속성을 단적으로 목격했다.




 


 그해 겨울, 강릉에 도착한 애송이 셋은 그 노래 가사에 나오는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를 만나지 못했다. 세상을 향해 다가간 우리에게 보이는 것 첫째부터가 돌아앉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살이는 험하고 인간은 이기적이며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속적인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날이기도 했다. 엄동설한의 겨울날, 무작정 옷을 벗어젖히던 그 소녀가 만난 험한 세상을 우리도 나아가야 하리라는 것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철부지 19살의 우리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라 각자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를 선택했고 서로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세상의 시정(市井)일이 항상 그러하듯, 꽃답고 아름답다는 것은 한 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절정일 때만큼 더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이후 함께 여행을 갔던 두 친구 중 한 명은 다른 나라로 이민하였고, 다른 한 명은 중년이 시작될 즈음에 지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둘 다 그 여행 이후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살아가다 보면 오랜 친구 간이라고 하더라도 의견의 차이나 감정의 대립으로 원수 같은 사이가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그리워할 수 있는 사이는 축복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우리는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지적하며 특히 그것을 꽃다운 시절이라든가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긴 여행이라면 그 굽이에서 우리는 숱하게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들 중 어떤 경우는 단 한 번의 스쳐 지나가므로 끝나는 이가 있었고, 만나긴 했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서 만났는지 기억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세월의 길목에서 쓰라림과 외로움을 함께 나눈 지난날의 벗들, 그 어떤 시간의 파괴력으로부터 살아남아 가끔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시절이다.

 

 

 

- 월간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 2015. 11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