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그 집 앞

by 언덕에서 2014. 6. 27.

 


그 집 앞

 

 

 

 

 


“행복은 항상 그대가 손에 잡은 동안에는 작게 보이지만, 놓쳐 보라, 그러면 곧 그것이 얼마나 크고 귀중한지 알게 될 것이다.” (막심 고리키)


 아내와 뒷산에 등산 갔다 내려오면서 15년 전 살았던 옛집 근처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골목이 눈에 띄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그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옛집은 부모님이 과거 몇십 년에 걸쳐 힘들게 일구어 놓은 재래식 이층 가옥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그 집에서 어머님과 내가 살았는데, 내가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남에 따라 점점 식구가 늘었다. 집은 우리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방이 부족하고 주차할 곳이 없어서 내가 동네 앞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이사한 탓에 그 집은 이제 추억 속의 집이 되어 버렸다. 어머님은 함께 가자는 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홀로 살기를 고집하셨다. 이후 어머님은 내가 살던 방을 교우(敎友)에게 전세 놓은 후 세입자 가족과 그곳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집은 장남인 큰형 소유로 되어 있었는데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자 형은 잽싸게 그 집을 팔아버렸다. 나와 미리 교감이 있었더라면 부모님의 분신과도 같은 그 집을 내가 매입할 수도 있었기에 항상 서운한 마음이다. 그러니까 내가 30년간 살던 그 집은 이제 남의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날,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오랜만에 그 집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마침 그 집의 대문은 반 정도 열려있었다. 대문 안의 마당에는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부모님이 심어놓은 배나무와 향나무, 내가 심었던 철 따라 피는 장미꽃과 목단 그리고 수국, 그 아름다운 꽃나무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밖에서 대문 안을 들여다보는 우리 부부를 발견하고는 사생활 침해를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는지 우리가 뭐라고 말할 틈을 주지 않은 채 대문을 ‘쾅!’하고 신경질적으로 닫아버렸다.

 집주인이 우리를 향해 누군데 남의 집 대문 안을 들여다보느냐고 물었다면 과거 이 집 주인이었노라고 대답하며 오랜만에 옛집 근처에 오니 감회가 깊어서 그러는데 집구경을 해도 되겠느냐고 부탁했을 텐데 아쉬움이 컸던 날이었다. 왜 그 집 근처에 갔느냐 하면 이유는 딴 곳에 있었다.

 아내와 나는 즐겨보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우리가 평소 슈퍼에서 구매해서 먹고 있는 된장이 100% 메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밀가루에다 메주를 약간 넣어 만든, 그러니까 된장 맛을 나게 만든 밀가루 소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송을 본 후, 이미 사들인 된장의 플라스틱 용기에 붙은 라벨에 깨알처럼 적힌 성분표를 보니 과연 콩 성분은 10%도 되지 않았고 주성분이 밀가루와 착색제, 방부제 등 화학 약품 범벅임을 발견했다. 그래서 과거 어머님처럼 집에서 된장을 직접 담가 먹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메주는 성당이나 사찰의 바자회나 시골 오일장, 인터넷 농협 등에서 사더라도 문제는 메주를 된장과 간장으로 만들 용기인 전통 항아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동네의 재래시장에 들렀건만 옹기 가게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거 어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옹기가 꽤 많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단지들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과거의 연을 이야기하며 두어 개의 항아리를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행심이 발동한 것인데 현재의 집주인에게 말도 못 걸고 이상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골목을 나오면서 아내는 내게 이야기했다.

 “당시 살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저 집에서 두 아이를 낳고 애들은 초등학교까지 할머니의 품에서 품성 바르게 자랐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행복은 누리는 순간에는 알 수 없고 대부분 세월이 흐른 후에 그 본질을 알게 되는 법이다. 그 시절, 우리가 살았던 그 옛집에는 어머님의 친구인 성당 교우들이 자주 집에 놀러 오곤 했다. 빈한한 형편의 할머니들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을 보고

 “너희는 천국과 같이 좋은 집에서 많이 배운 부모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라는 말을 하곤 했다.

 당시 나는 외풍이 세고 주차 공간이 없으며 좁고 불편한 구조의 재래 주택에 염증을 느끼고 있어서 ‘저 할머니들은 천국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이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당시 우리 가정을 보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친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한 동네에 두 여자가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두 여인의 남편들은 서로 대조적이었다. 한쪽 아줌마의 남편은 일요일만 되면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온종일 집에서 TV를 보거나 아니면 낮잠을 즐겼으며, 또 다른 주부의 남편은 일요일만 되면 낚시가방을 둘러메고 친구들과 낚시를 하러 가서 일요일은 남편과 함께 지내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집에만 있는 남편의 부인은,

 “아유 지겨워, 제발 등산을 가든지 낚시를 하러 가든지 나갔으면 좋겠다.”

고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았고, 일요일만 되면 낚시를 하러 가는 남편의 부인은,

 “제발 일요일만은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

고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상대방의 남편을 부러워했다.

 이처럼 현실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반대의 것을 원한다. 집이 없어서 해마다 이사를 하는 사람은 이사를 하지 않고 한곳에서 계속 살았으면 하고 바라고, 자기 집이 있어서 한곳에서만 몇십 년을 사는 사람은 제발 이사 좀 가 봤으면 하고 바란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야 하고, 그렇게 할 때 행복도 누릴 수 있다. 즉 남을 부러워하기에 앞서 내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삶이 최고라고 인정해줘야 하고, 그렇게 할 때 현재의 삶에 만족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행복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날, 그 집 앞을 지나오면서 필요한 옹기는 구하지 못했지만 지난 시절 잃어버렸던 행복을 다시 찾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대문을 열면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것 같은 느낌도 말이다.


 

- 월간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 2016. 4월호 게재 -


'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의에 관한 어느 기억  (0) 2014.07.11
아들과의 만남  (0) 2014.07.04
눈 오던 날   (0) 2014.06.20
남자의 향기와 눈물  (0) 2014.06.05
예방주사  (0) 2014.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