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100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고등학교 반창회(班窓會) 동기들의 성화가 심해졌다. 앞으로 모임에 나오지 않으면 제명(除名)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반창회 행사에 안 나가는 것은 나름의 핑계가 있었다. 모였다 하면 밤새도록 퍼마시는 분위기가 내 취향에 맞지 않았으며, 회식하지 않는 날에는 산행하기 일쑤인데 모두 전문산악인 수준이어서 내 저질 체력이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창 중 왕대머리라는 별명을 가진 녀석은 선생님이 옆에 앉아 계신데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곤 했다. 제자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제관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민망해서 그에게 담배를 끄라고 충고했는데 그는 ‘별놈을 다 본다’는 식으로 무시하는 것이어서, 나는 ‘저런 자식이 나오는 모임에는 절대 나갈 수 없다’고 선언했던.. 2016. 1. 8. 톰슨가젤의 비극 톰슨가젤의 비극 지난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누구는 엉터리 장사꾼에게 도둑맞은 그것을 드디어 찾았다고 기뻐하는가 하면, 독재자의 딸이 권좌에 올랐으니 이 나라 민주주의는 끝났다고 우울해 하는 이도 있었다. 자신이 싫어하는 이가 대통령이 되어 5년 동안 뉴스의 중심에 서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두 부류의 의견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며 나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반페미니스트나 보수주의자가 듣기엔 다소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여성이 대통령이 되었기에 우리나라는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은 발전의 길이라고 나는 우기고 있었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밤은 어둡기 짝이 없고 그들을 사회에서 움직이게끔 묶는 .. 2015. 10. 29. 창문을 열면 창문을 열면☜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 / 노래 이씨스터즈☜ 1 하늘이 푸릅니다. 창문을 열면 온방에 하나 가득 가슴에 가득 잔잔한 호수같이 먼 하늘에 푸르름이 드리우는 아침입니다. [후렴] 아가는 잠자고 쌔근쌔근 잠자고 뜰에는 울던 새가 가고 안 와요. 돌아오실 당신의 하루해가 그리워 천년처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2 바람이 좋습니다. 창문을 열면 이마의 머리칼을 가슴에 스쳐 먼 어느 바닷바람 산 윗바람 당신과의 옛날을 일깨웁니다. [후렴] 아가는 잠자고 쌔근쌔근 잠자고 뜰에는 울던 새가 가고 안 와요. 돌아오실 당신의 하루해가 그리워 천년처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3 낮달이 떴습니다. 창문을 열면 저렇듯 푸른 품에 안기었어도 너무 밝은 낮에 나와 수집은 얼굴 낮달이 지기 전에 돌아오세요. [후렴] .. 2015. 10. 27. 못 말리는 건망증 못 말리는 건망증 나이 오십을 넘으면서 부쩍 건망증이 심해짐을 느낀다.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40대까지만 해도 나의 기억력은 유별나게 정확해서 지인들이 나를 향해 ‘인간 녹음기’라고 부를 정도였다. 어린 시절 학년별 학급 급우 이름들을 줄줄 외울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드니 기억력이 약해져서 이제 어쩔 수 없다는 푸념을 하곤 한다. 건망증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우리나라 고전에서 건망증 여러 설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설화 중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건망증 설화의 기법은 삽화 즉 에피소드를 나열하여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 재미가 반복되는 듯하다. 나를 발견하는 소재가 이야기 끝에 나오면서 웃음 속에 담겨진 철학적인 면이 제시기도 한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던 시대에 자신의 정체.. 2015. 10. 21.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Ⅰ. 싱가포르의 절과 사원 지난주 엿새 동안 아내와 함께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빈탄 섬 여행을 했다. 젊은 시절 아내와 나는 나이 오십이 지나면 해마다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가자는 다짐을 하곤 했고 그런대로 이행해온 느낌이다. 올해 봄에도 이미 홍콩을 여행했으니깐. 계획에 없는 갑작스러운 여행은 책장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책 한 권 때문에 시작되었다. 아내가 지인으로부터 선사 받은 이라는 이상한 책을 읽은 나는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은 무책임하다’는 막말 투 의견을 표시하고야 말았다. 저자는 모 기업의 싱가포르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틈을 내어 싱가포르 내의 불교 사원과 도교 사원 현황을 저술했는데 책 전체의 절반을 불교 사원 12곳과 도교 사원 7곳을 소개하고 있고 나머지 반은 도교.. 2015. 10. 16.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가?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가? 우리집 아이들은 코흘리개 시절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나의 말에 이의를 달곤 했다. “아빠가 몰라서 그래. 공짜가 얼마나 많은데?” 나는 뭔가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부모님의 사랑 이외엔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공짜가 있으면 말해봐.” 아이들이 예로 드는 것은 뻔한 것들이었다. “가게에 가서 사탕을 한 봉지 샀는데 주인아줌마가 덤으로 다른 사탕을 몇 개 줬다. 이게 공짜가 아니고 뭐야?” “그건 다음에 또 오라고 그러는 거야. 한 봉지에 그 값이 들어있는 거야. 그러니까 공짜가 아니지.”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할 때는 흔히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자신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향후 자신의 입지를 설계한다. 그러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자신을 감싸고.. 2015. 9. 23. 어느 노인(老人)의 죽음 어느 노인(老人)의 죽음 그가 죽었다는 뉴스는 신문, 방송을 망라해서 계속해서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는 중국이란 이국땅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한 것인데 보는 이에 따라서 ‘그’라는 인간이 가진 가치에 비해 과분하다고 할 정도의 조문이 이어졌다. 어쨌든 그의 부음은 며칠 동안 실.. 2015. 9. 16. 권력 언저리 (그간 게으름 병이 도져 '옛날의 금잔디'를 계속 쓰지 못했다. 심기일전하여 100편까지 잘 마무리 할 참이다) 권력 언저리 며칠 전 신문은 전직 고위 장성이 뇌물을 받은 사건으로 10년 형이 선고된 것을 보도했다. 패가망신(敗家亡身)의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며 아들도 함께 쇠고랑을 차게 .. 2015. 9. 9. 돌고 도는 물레방아 돌고 도는 물레방아 초급사원 시절, 임원의 운전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겠다. 출근하면서 복도에서 만난 임원에게 공손히 인사했는데 그의 얼굴에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외근하기 위해 기사실에서 회사 공용차를 빌리던 나는 회사 차량을 담당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이사 얼굴이 왜 저래? 술 마시고 넘어지신 건가?” “하하~ 아니야. 당신만 알고 있어야 한데이.” 임원의 사생활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전속 운전기사인 그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정치인들이 운전기사를 채용할 때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친인척을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카더라' 소문을 퍼트리는 원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빼고 모두들 그 사건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가.. 2015. 7. 3. 짝신과 그날 짝신과 그날 20년가량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며칠 지난 날이었다. 송별 회식이 있었는데 부하 직원들 앞에서 취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먼저 일어서 나왔다. 택시 안에서 구겨 신은 내 구두를 보니 한 짝은 내 것이 아니어서 '짝신1'이었다. 취기 때문에 신발 구분이 제대로 안된 탓이었다. 그렇게 짝신을 신고 집에 와서도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취한 모습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이제는 오래된 그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 그 오래된 기억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기억나는 장소는 월례리 근처였는데 기장군 칠암리였던가 하는 곳일 것이다. 근처에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보이고 또 가수 정훈희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는 동네였다. '아나고'회라고 불리는 붕장어회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2015. 6. 26. 수난이대(受難二代) 수난이대(受難二代) 현재 국립경상대학교의 전신인 진주농과대학 전경 (1948년) 내가 스무 살 때 돌아가신 아버님은 처가를 무척 기피하셨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외갓집의 추억은 소중하겠지만 아쉽게도 내 유년의 기억은 어쩌다 한두 번 외가에 잠시 들른 기억뿐이다. 가장 또렷한 기억.. 2015. 6. 19. 세월(歲月) 세월(歲月) 오랜만에 들른 선배의 회사에서였다. 차(茶)를 내어오는 여직원의 유달리 앳된 얼굴이 특이했는데 선배가 그녀를 부르는 호칭이 이상했다. '아무개씨'가 아니고 ‘셀렝게’ 이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형, 셀렝게라니, 왜 그렇게 불러?” “아, 저 아가씨... 몽골에서 한국에 유학 온 대학생이야. 이름이 셀렝게고. 오전에 파트타임으로 우리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 “아, 한국인이 아니구나.”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니 오지랖이 넓은 표시가 났다. 선배의 딸 나이와 비슷해서 그럴 것이다. 선배는 셀렝게의 치아가 부실해서 충치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데 밤잠을 못잘 정도로 통증이 심하며 음식을 도저히 씹을 수 없는 상태라며 걱정했다.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는 외국인이어서 제대로.. 2015. 6. 5. 이전 1 2 3 4 5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