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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가?

by 언덕에서 2015. 9. 23.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가?

 

 

 

 

 

 

우리집 아이들은 코흘리개 시절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나의 말에 이의를 달곤 했다.

 “아빠가 몰라서 그래. 공짜가 얼마나 많은데?”

 나는 뭔가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부모님의 사랑 이외엔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공짜가 있으면 말해봐.”

 아이들이 예로 드는 것은 뻔한 것들이었다.

 “가게에 가서 사탕을 한 봉지 샀는데 주인아줌마가 덤으로 다른 사탕을 몇 개 줬다. 이게 공짜가 아니고 뭐야?”

 “그건 다음에 또 오라고 그러는 거야. 한 봉지에 그 값이 들어있는 거야. 그러니까 공짜가 아니지.”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할 때는 흔히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자신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향후 자신의 입지를 설계한다. 그러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자신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조금씩 사라진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거나 착하다고 해서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간다. 더욱이 사회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조직 속의 생활에 내공이 쌓이게 된다. 이후 꿈이라든가 이상이라는 것이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해하다가 타협책으로 한 가지에 매달리게 된다.

 ‘먹고 살만큼 돈이나 있으면 되지.’

 나이가 듦에 따라 타인의 삶의 방식을 유심히 보게 된다. 방송매체에서 귀농한 도시인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자주 대한다. 방송 리포터는 귀농인에게 예외 없이 ‘소득이 얼마예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러한 순간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의 인품이나 삶의 방식, 행동 방식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있느냐에 모든 가치가 귀결되는 것을 발견한다. 

 

 

 언젠가부터 돈이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맨손 하나로 시작한 탓에 쪼들렸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정작 돈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젊다는 이유로, 막연하게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다.

 노후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요즘에는 많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자식들의 남은 교육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귀촌을 대비해서 재산을 정리하고 미리 땅을 좀 사두어야 하지 않을까. 들어놓은 적금형 보험은 지급받을 때의 삶의 규모에 적절할까. 노후는 어떤 식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자식들 결혼비용은 얼마나 들까 하는 점들인데 이 모든 것이 돈과 연관된 문제들이다.

 지금도 친한 내 어릴 적 친구는 한번씩 만나 술을 마신 후 헤어질 때마다 로또복권을 사서 슬쩍 내 주머니에 넣어준다. 그러나 나는 별로 운이 없어서 복권은 물론 반은 걸린다는 경품 응모에도 걸리지 않는다. 그 결과, 돈을 모으려 한다면 결국 성실과 검약이라는 평범한 방법 외에는 다른, 눈이 번쩍 뜨게 되는 획기적인, 방법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돈이란 내가 벌어서 내가 쓴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본 원칙이다. 만약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얼마간의 재산을 물러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번 것이 아니기에 사용할 때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내 가족이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 행복은 부부 양쪽 부모로부터 교육 외에는 그 어떤 유산도 전혀 물러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나 가구, 전자제품, 자동차, 집기 등은 필요할 때마다 형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돈이란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번 것, 정당한 것, 꼬박꼬박 세금을 낸 것이 아니면 부자유스럽다. 나는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 또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돈이 너무 많아도, 또 너무 없어도 고통스러워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돈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돈이 너무 많으면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된다. 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형제간의 싸움이다. 부모 생전은 물론 부모 사후에 재산을 누가 많이 가져 가느냐에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잘 아는 가족의 평화스런 형제 사이는 모친의 별세로 산산조각 났다. 그간 형제간에 어느 정도 이해되어 왔던 의견 차이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자 며느리 사이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돈 싸움은 ‘돈이 없어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돈이 많은 사람이 싸움을 만드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런 싸움이 법정으로 가는 경우도 자주 목격한다. 법관들은 의절을 염두에 두고 하는 싸움이다 보니 조정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또 수십억 원대 자산을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평생을 모아 마련한 작은 건물 한 채를 놓고 맞붙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법관은 "결과적으로 가족 중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지만, 가족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정의(正義)인가' 고민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형제들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부모가 돌아가실 때 그 한 사람만 집이 없었다. 그런 경우 집을 갖고 있는 다른 형제자매들은 상속을 사양하고 우선 집이 없는 형제가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좋을 것이다. 피를 나눈 형제 사이기 때문에. 그러나 큰 별장까지 갖고 있을 정도로 부유한 재산의 형제일수록 한사코 상속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 가지려는 욕심 때문이다. 나는 이래서 인간은 불인(不仁)한 존재라고 항상 생각한다.

 

 

 

 대기업에서 근무할 당시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선배가 옆 부서의 동료로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나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재산이 있어야 세상살이에 걱정이 없을 것인지 그 기준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한 나의 우문에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끼니 걱정 안하고 남에게 손벌릴 정도가 아닐 수준’이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그 말을 명언 중의 명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돈 사용을 과시하려는데 큰 의미를 두며 사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증권회사 명예퇴직 후 별도의 수입이 없는 내 친구는 아내와 아들 이렇게 세 명이 살면서도 100평에 가까운 아파트에 전세 들어 살기를 계속 고집하고 있다. 그는 그간 저축해둔 돈도 얼마 없으면서 자가용 승용차는 대형차여야 한다고 고집한다. 그의 아내는 골프장에서 라운딩 하느라 그곳에서 매일 살다시피 한다. 나는 그의 재산이나 가족 구성 상태로 봤을 때 집은 20평대 아파트와 차는 준중형이나 중형 자동차가 적당하며 술은 소주를 마시라고 권한 적이 있다. '삶의 규모'를 조정하는 것은 생의 상위 정점을 찍고 하강하는 세대에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삶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기 싫으므로 되는 데까지 현 상태를 버텨보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복지국가로 향하고 있으니 종국에는 국가가 자신을 책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그의 논리는 '개미와 배짱이' 우화 중 배짱이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런 그를 볼 때마다 개미처럼 열심히 사는 많은 사람은 과연 바르게 살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아무런 대책 없이 무절제하게 재산을 낭비하다 돈이 떨어졌으니 국가에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하다(국가 부채가 많은 우리나라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돈이란 사용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돈을 모으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많고 그들 대부분은 돈을 벌다 그 와중에 죽어간다. 이렇게 돈만을 모으기 위해 사는 듯한 '스크루지'류의 사람 역시 문제다. 돈을 쌓아둔다는 것은 생활의 동맥경화를 부른다. 호흡 운동 중에 공기를 몸 밖으로 배출 못하면 그것은 치명적인 병이 된다. 마찬가지로 먹은 음식을 배설하지 못하면, 변비가 될 것이고 이후 장암의 원인이 되어 죽음으로 내몰 것이다. 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생활에도 독이 퍼져 파탄으로 내몰 것이다.

 자, 이제 결론을 내어보자. 죽을 때 재산을 한푼이라도 들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복지 제도가 부실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단정 지으면 무책임한 언사로 비난받을 것 같다.

 다만 적절하게 모으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됨됨이와 재능이 돋보이는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출세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큰 인물로 존경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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