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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

지금도 사랑 속에서

by 언덕에서 2016. 9. 2.

 

 

 

 

지금도 사랑 속에서

 

 

 

 

 

 

 

                                                        

지난주는 차를 타고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지나다 큰길 근처에서 코레일의 ‘가야역’이란 안내판을 보게 되었다(위 사진). 그곳은 여러 채의 코레일이 운영하는 복지 시설이 눈에 띄었다. 게중에는 몇 개 정도의 부속 건물이 있었는데 유치원과 직원 사택, 휴게시설로 여겨졌다. 내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어릴 적 해당 장소에서 보았던 철도청 건물 여러 채가 옛 기억 그 위치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물자가 귀하고 가난했던 그 시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마다 목욕하는 일은 항상 큰 숙제였을 듯하다. 아홉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였던, 아들 셋을 두셨던 내 아버님은, 당신이 근무하셨던 철도청 가야역 그곳 직원 목욕탕에서 매년 명절 즈음이면 우리를 씻기셨다. 우리 형제 세 명은 역사(驛舍) 옆 철도청 직원 목욕탕에 목욕하러 가라고 명령 받을 때마다 때마다 그곳 경비원의 제지를 받곤 했고, 그 과정을 통과해서 목욕탕에 간다고 해도 탕안에서는 여러 철도원이 주는 따가운 시선을 받곤 했다. 그 순간은 마치 인간 이하의 거지 취급을 받는 느낌이어서 ‘죽어도 그곳에 목욕하러 가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앙버티곤 했던 기억이 낡은 앨범 속 사진처럼 남아있다. 

 세월이 흐르니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질수록 당시 아버님에 가졌던 소소한 기억마저 따스하게 다가와 ‘철도’에 관한 모든 기억이 필요 이상으로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화 <철도원>이라는 느낌이다.

 영화 <철도원>은 1999년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영화로,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이 연출하고 디카쿠라겐과 히로스에 료코가 연기한 좋은 영화였다고 기억한다.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가 쓴 단편 소설집 <철도원>의 표제작 단편소설로서,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내가 이 영화 <철도원>을 본 시기는 내 나이 사십에 가까울 때였는데, 철도원으로 근무하다 돌아가신, 어렸을 때 아버님 모습이 생각나서 한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또 따스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영화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시골 마을 종착역, 호로마이역을 지켜온 철도원 오토마츠가 주인공이다. 17년 전 겨울 어느 날, 아기를 가졌다며 그에게 달려온 천진난만한 아내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기 이름은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났기에 부부는 '눈의 아이'라는 뜻인 유키코(雪子)라는 이름을 붙여졌다. 하지만 행복은 잠깐이다. 유키코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갑작스러운 열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고, 아내 시즈에마저 깊은 병을 얻어 유키코가 있는 하늘나라로 가버린다.

 이후로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홀로 살던 오토마츠가 나이 들어 정년퇴직하는 날 아침이다. 철길에서 세월을 되돌아보고 있는 오토마츠는 인형을 안고 있는 낯선 여학생 한 명을 만나게 된다. 소녀는 처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친숙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 소녀는 바로 죽은 딸 유키코의 유령인데, 오토마츠에게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현실로 되고야 마는가? 딸의 혼령은 사람이 되어 아버지 앞에 나타난다. 그간 힘들어도 꿋꿋하게 일해 온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딸은 다 자란 여학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새하얀 눈세상이 배경이었던 영화인데 눈마저도 따뜻하게 보였던 영화가 종종 생각나곤 한다. 반백이 넘은 나는 지금도 겨울이면 영화 <철도원>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영화배우 최불암 선생을 떠올리곤 한다. 영화 <철도원>과 아무런 관계없는 최불암 선생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불암 선생과 내 아버님에 관한 아주 소소한 인연 때문이다.

 

 

 

 

 

 최불암. 1940년생. 본명 최영한. 탤런트 또는 영화배우, 전직 국회의원, 그리고 국민배우…….

 내가 아버님에게 직접 들은, 아버님보다 11살 연하인, 최불암 선생의 인간적인 모습은 언제나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1929년생이셨던 내 아버님은 1981년에 간암으로 별세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열흘 전까지 철도청에서 노무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셨다. 선로 보수부터 직원목욕탕 보일러 담당, 열차 부품 정리, 열차 수리 등 주로 몸으로 때우는, 궂은 일을 하셨는데 마지막 5년은 운행 중인 열차에 동승하여 차량 이상여부를 점검하는 일을 하셨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경부선 열차를 탄 채로 근무하는, 만약에 열차가 기계적인 고장이 나면 응급조치를 하는, 그런 일을 하셨다. 하루를 근무하고 다음 날에는 하루를 집에서 쉬는 형태의 근무 형태의 근무를 하신 걸로 기억한다. 낮에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혹시 너희 아버지, 실업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가 다반사였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열차 맨 앞쪽에 운전하는 기관사실이 있고 객실과 연결되는 부분에 겨우 한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가진 작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이 아버님이 근무하시는 장소였다.

 아버님은 병적으로 근검한 분이셨지만 술과 담배를 즐기셨다. 술은 소주와 안주로는 김치만을 드셨으며(가난 때문이라는 말이 솔직하겠다) 담배는 최저가인 ‘금잔디’를 피우셨다. 1978년도로 기억한다. 군을 제대하고 대학 3학년에 복학한 장형은 당시 최고급 담배인 ‘거북선’만을 피웠다. 아버님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덮어두셨다. 역지사지로 내가 아버님 입장이었다면 그런 아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고 나의 시각에서 지난 시절을 반추해본다. 그해 어느 날, 서울 가는 무궁화 열차를 왕복으로 타고 오신 아버님은 평소처럼 매우 지친 몸으로 퇴근하셨다.

 “아버지, 이제 퇴근하셨습니까?”

 퇴근하신 아버님께 간단한 인사를 드리는데 아버님의 얼굴은 화색이 넘쳐흘렀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있는 뭔가를 소중히 들고 계셨고, 펼쳐서 보니 담배 세 갑이 보였다.

 

 

 

 

 

 

 수정 담배.

 1978년, 당시 최고급 담배는 500원 하는 거북선과 SUN이었고 바로 아래 등급 담배로 400원 하는 ‘수정’이란 담배가 있었다. 50원하는 최저가 ‘금잔디’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님이 400원이나 하는 고가 담배를 세 갑이나 들고 오시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머니는 궁금하신지 물어보셨다.

 “여보, 이 담배, 어데서 났어요?”

 사연은 이랬다.

 부산역에서 서울로 가는 무궁화 열차. 아버님은 여느 날처럼 기관사실과 연결된 철도원(검수원) 실에 앉아계시는데(그곳은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다), 40대에 막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는 출입금지구역이란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 아버님은 깜짝 놀라고 마셨다. 당시 수사반장에 출연하는 유명배우 최불암 씨였기 때문이다.

 “아니, 최 선생 아니십니까?”

 “아, 예…….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쩌신 일로?”

 “부탁드릴 게 있어서 그럽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무슨 부탁이?”

 “다름이 아니라, 여기 아저씨 옆자리에 좀 앉아서 서울까지 갔으면 해서요…….”

 “편안한 객실이 있는데 왜 여기 이렇게 불편한 곳에…….”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저를 보려고 제가 앉은 자리에 자꾸 몰려와서요.……. 옆에 앉아 계신 분들에게 피해를 주고, 저를 구경하는 시선들이 제게 참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파하!”

 아버님은 흔쾌히 그러시라고 허락하여 검수원실 작은 의자에서 둘이서 긴 시간 동석하게 되었다.

 서울역에 열차가 도착했을 때 최불암 선생은 아버님께 신문지에 뭔가를 싸서 전달하며 '고생하시는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내렸는데 나중에 열어보니 ‘수정’ 담배 세 갑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아버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결과를 두고 하는 이야기지만 평생을 금잔디와 백조 같은 저가 담배를 피우셨던 아버님은 처음으로 고급 담배를 피우는 호사를 누리셨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딸을 만난 영화 속 그 철도원처럼, 꿈에서 아버님을 뵙기도 하고 최불암 선생을 만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내가 최불암 선생을 만나 직접 대화할 수는 없겠지만 살다 보면 앞으로 그럴 기회도 혹시 생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이렇게 말씀드려야겠다.

 “최 선생님, 1978년 어느 날, 최 선생님으로부터 수정 담배 세 갑을 받았던 철도원의 아들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의 아버님은 그나마 좋은 담배를 며칠 피워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이다.

 

 

 

 - 월간지 <맑고 향기롭게> 2016. 1월호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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