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없는 곳에서 목 놓아 울다
시간이 날 때마다 파란편지 선생님 블로그(http://blog.daum.net/blueletter01)의 글을 읽곤 한다. 선생님의 글솜씨가 유려하고 군더더기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무엇보다도 진영논리에 휘둘리시지 않으며 그와 별도로 청년처럼 젊게 사신다는 점이 부럽다. 사물의 팩트를 바라볼 때 지엽적인 부분이나 감정적으로 흐르기 십상인 선입관에 휘둘리지 않고 핵심을 직시한 후에 주변을 생각하는 부분은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최근에 읽은 선생님의 재미있는 글은 ‘그리팅맨(greeting man), 미안!’(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766)이었다. 조각가 유영호 씨가 만든 그 조각품은 발가벗은 남자가 인사를 하기 위해 허리를 15도 숙여 인사하는 장면인데,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을 음미해보는 것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겸허한 태도라는 설명을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작가의 메시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벗은 조각에 달린 남성 심벌만 유심히 본다는 것이다. 작가가 조각상에 옷을 입힐 경우, 옷 입은 형태의 조각을 만들었다면 이념, 인종, 계급, 종교를 불문하고 인류가 가져야 할 존중과 배려가 눈에 띄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 남자들의 남근과 정력에 대한 광신적인 집착의 뿌리는 어디서부터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러다가 군 복무 때 매우 친하게 지내던 두 사람이 생각났다. 한 사람은 유달리 우람한 성기 때문에 고민을 했고 또 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성욕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지금도 그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1980년도 초반 내가 입대할 때는 <단풍 하사>라는 제도가 있었다. 두 사람은 제대 즈음에 하사가 예정된 이들로 나와 같은 이등병 출신과는 성분이 달랐지만 서로 끌리는 뭔가가 있어 친하게 지냈다. 성대와 중권이. 선량하기 짝이 없었던 두 사람에게도 세상살이는 요지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 근처의 위성도시에서 공고를 졸업하고 전자제품 부품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다 입대한 성대의 첫인상은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전형적인 서울말씨에 선량한 눈매를 한 그는 영화배우라고 해도 괜찮을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계급과 짬밥 개월 수가 적은 일병들이 하대해도 애써 무시하며 관계를 유지하려는 평화주의자로 기억하는데 그와 복무 개월 수가 비슷한 이들은 병이든 부사관 학교 출신이든 모두가 ‘말X’라고 그를 지칭했다. 여기서 ‘X'는 남자의 생식기를 한 음절의 단어로 표현한 것으로 국어사전에는 ’남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 그와 함께 목욕한 적이 있었는데 남근의 크기가 정상인보다 엄지손가락 하나 정도는 더 길었고 굵기 또한 그러했으며 몽둥이의 색깔은 유달리 검어 퉤퉤 해서 별명은 빈말이 아니었다.
솔직함이 화근이었을까? 어느 날, 야간 보초를 서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이라도 하듯이 ‘여성 혐오증’과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자연포경이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의 성기가 또래에 비해 유달리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의 중학교 3학년 누나가 벽에다 소변보는 자신을 유심히 훔쳐보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누나와 동네 근처의 포도밭에서 첫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냥 누나가 시키는데로 응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 나이에 동정을 잃은 셈인데 이후로 사흘이 멀다고 하고 그 요구는 계속되었고 그 누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하여 동네를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했다. 햐, 내가 놀란 표정을 하며 그를 쳐다보자 그는 말을 이었다.
“얘, 윤 일병, 너는 몰라. 모든 여자들은 너무 밝힌다. 내가 피해도 자꾸 따라다니니, (한숨) 나는 차라리 여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후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알게 되어 관계를 한 또래의 여자들이 여럿 있었던 모양이다. 선량하기 짝이 없고 바른생활의 대명사 같은 그였지만 항상 정에 이끌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 만든 참사가 아니었나 나름대로 정리해보게 된다. 경기도 시흥에 산다고 했는데 지금도 ‘시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다.
♣
넓적한 얼굴에 눈이 퉁방울 같았던 중권이는 경북 영주가 고향으로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주에서 사과 농사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2년제 무슨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했다고 했다. 키는 180cm가 넘었고 군살 없는 몸매는 마치 잘 빚어진 조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성품이 어땠느냐면 '법 없이 살아도 될 사람'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게끔 선량하고 또 어질었다. 그런데 문제는 유달리 성욕이 강해서 치마만 두른 젊은 여자라면 아무에게나 성욕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선임병들은 나보다 군대 짬밥이 두 달밖에 많지 않은 중권이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이라며 떡이 되도록 나를 구타하곤 했다. 그는 지나치게 과묵한 성격이었고 나 또한 우울했던 시절이었으나 둘은 보초 근무 때마다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갔다. 그런 그였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행정반에서 근무하다 알게 된 것인데 중권이를 향한 장교들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일반 병들과는 달리 상병반 출신은 토요일 누군가가 면회를 오면 외박을 보내는 것이 상례였는데 유독 중권이에게 면회 오는 아가씨들이 많았다. 작전장교는 면회부를 펼쳐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새끼, 저거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면회 때문에 외박을 나가는구먼. 그런데 면회 오는 아가씨들 이름이 모두 다르네. 저 새끼 카사노바 아니야?”
인사장교가 안 중위가 대답했다.
“상병반은 토요일 면회 때 외박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육군 규정에 그래 되어 있습니다.”
“육군규정이라니? 나발 같은 소리 마시오. 저런 새끼 때문에 대한민국 처녀들 씨가 다 마른다니깐. 앞으론 안 되는 것으로 하쇼!”
♣
그날 밤, 달은 푸르고 배는 꾸르륵 또 고팠다. 중권이는 그러한 내 심경을 알기나 하는지 이렇게 물어왔다.
“윤 일병, 애인 있나?”
내가 답했다.
“없어. 그런 게 가능할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그렇구나. 그라면 여자 손도 한 번 못 잡아 봤겠네.”
“히히…….”
웃으면서 내가 답했다.
“언젠가는 내게 찾아올 그녀를 위해 묵묵하게 기다려야제.”
그렇게 대답하고 나니 갑자기 그에 대한 여러 풍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궁금증을 풀 기회였다.
“그런데 면회는 누가 그렇게 자주 오는 거야? 약혼이라도 한 거야? 윤 대위는 벼르고 있던데? 그 동네 아가씨들은 헤픈가 봐?”
중권이는 내 말을 들으면서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적어도 사병 중에서 나처럼 장교들이 그를 어떻게 보고 있다는 고급 정보를 전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겸연쩍어 하던 그는 자신을 면회오는 이 중의 한 명과 어떤 계기로 인하여 꽉 잡힌 상태가 되었는데 앞로는 아무리 성욕이 발동하더라도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는 관계하지 않겠다고 했다.
“K 읍의 괜찮은 여관이라고 해서 돈 주고 들어갔는데 그 여관방이라는 것이 큰 방 하나를 베니어합판 같은 것으로 둘로 나눠 놓은 데였어. 둘이서 방에 들어가니 옆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군. 남녀가 약 10명 정도 모여서 고스톱을 치는 듯했지. ‘고!’ 또는 ‘스톱!’ 그리고 ‘피박!’ 등을 외치는 소리가 계속되었으니까 말이야. 방을 두 개로 나누긴 했지만 방음 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았어. 내가 미닫이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고스톱 치며 떠드는 소리가 그렇게 다 들리더라. 그리고 내가 여자에게 ‘약속처럼 그냥 잠만 잘 것'이라고 밖에서 한 말을 확인하는 말을 재차 하고 걔가 ‘믿겠다. 는 대답을 했지.”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 만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갑자기 옆방에서 떠들던 소리가 그치고 쥐 죽은 듯 조용해지데. 멀리 영주에서 여기까지 온 것도 나름의 각오를 하고 온 것 아니겠어? 나랑 손만 잡고 자려고 면회 온 것은 아니잖아? 그러나 일이 쉽지 않았어. 약속과 다르지 않으냐며 얘가 반항을 하는 거야. 힘으로 제압하려는데 이게 불가능한 거야. 왜냐하면, 이 가스나가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에도 출전했던 육상 선수였거든.”
“달리기 선수. 그런 거 말이야?”
“아니, 투포환 선수. 투포환은 물론이고 투창도 도(道) 기록을 가지고 있더라. 힘이 너무 세서 내가 도저히 얘를 이길 수 없는 거야.”
중권이 정도라면 남자 중에서도 키가 크고 체격이 우람한 강골 스타일인데 그가 당해낼 수 없는 체력이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아시아의 마녀로 불리곤 했던 투포환 선수 백옥자. 아니면 다가올 해에 열리는 L. A 올림픽 국가대표 여자 농구팀의 주장 박찬숙이 떠올랐다. 힘 좋은 여자 장사, 괴력의 포워드, 이런 신문 기사를 자주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욕정을 삭히고 포기했지. 힘으로 안 되니 도저히 다른 방법은 없는 거잖아. 그런데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옆방이 다시 시끌해지기 시작하더라. 와글와글……. 모두들 고스톱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 것 같았지. 미닫이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만. 그 소리 때문이었지. 걔가 마음을 바꿔 먹고 몸을 내어준 것은.”
“옆방에서 니들을 보고 뭐라고 했는데?”
“‘예까지 따라 왔으면 가시나가 좀 참지!’ 하는데 그 소리가 우리 둘에게도 들렸어. 움찔하는 것 같은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지. ”
나는 밤하늘에 큰 소리가 울러 퍼질 정도로 ‘하하’ 웃고 말았다. 얼마든지 중권이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임에도 그러지 않았던 여자의 행동은 나름대로의 진정성이 존재한다는 그야말로 엉뚱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대와 중권. 두 사람의 고통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신은 공평하지 않아서 두 사람의 고통을 각자에서 반씩 교환하게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고통을 그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결핍 없는 곳에서 목 놓아 우는 자들에게 물어 본다. 그들에겐 사는 방법은 주어진 그 길뿐이지 않은가. 아니면 또 무엇이 기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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