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

부라보! 내 인생

by 언덕에서 2016. 3. 4.

 

 

 

부라보! 내 인생 

 

 

악마가 있을까?


 

 

기껏해야 2,000자가 될까 말까 한 이 글을 쓰기 위해 석 달 동안 비슷한 내용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나는 지치게 되었는데 ‘아이고! 이제는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자리에서 껄끄러운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매우 친한 친구의 부친이 별세하셔서 장지(葬地)까지 따라나선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H가 그 자리에 온 것이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악마로부터 시험에 빠지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악마가 초자연적인 존재, 즉 흔히들 말하는 귀신과 같은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이문열의 소설‘사람의 아들’을 읽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괴롭힌 그 악마가 '아하스 페르츠'라는 구두수선공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

 외면은 평범해 보이지만 본질은 악마와 같은 인간들을 살아가면서 자주 대면하곤 한다. 물론 신문이나 뉴스에 접하는 엽기적 살인사건의 범인뿐만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이면에서 일반인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냉혹함이나 몰인정하고 야비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다. 이것을 흔히들 인간의 야누스적인 모습이라고 표현들 하더라. 친구 댁의 출상(出喪) 때 만난 H도 그런 분류에 따르면 ‘악마’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리의 힘을 빼라

 

 

 

 H는 오십을 넘은 내가 아직도 다리의 힘을 빼지 않고 산다고 농을 던졌다. 매사를 원리원칙대로만 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H는 강자(强者)에게는 비굴하고 약자(弱者)에게는 유독 강했다. 나는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가 부러질 때까지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H가 나의 도움을 받을 때 그는 그야말로 ‘약자’ 자체였다. 약자가 강자의 도움을 받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강자의 자비’를 끌어내는 것이다. 약자와 강자가 친구일 때는 약자는 ‘우정’이라는 것을 매개체로 해서 강자의 도움을 얻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린 친구잖아. 너, 나를 도와주면 안 되겠니?”

 그런데 그를 도와줬더니 묘하게 내가 쪼그라지고 말았다. IMF 같은 외적인 상황은 언제든지 한 인간의 삶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파산 비슷한 지경까지 몰리고 말았다. 그때 그는 언제 봤냐는 식으로 나를 외면했는데 잘 나가던 그도 위기를 맞은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살 만하다는 소문이 흘렀던 모양인데 또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 너, 나 한 번 더 도와줘야겠다!”

  수험료를 치르지 않고도 인생을 배우는 경우가 있다. 같은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그는 승승장구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는 친구 부친의 출상에 새로 뽑은 에쿠스를 몰고 영화제 시상식의 주인공처럼 나타났다. 듣자하니 그는 동업하던 친구를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고소해 법정에 세웠으며 같은 친목회 회원인 친구를 이유 없이 수모를 줘가며 쫓아내었다는 것이다.

 그날, 장지까지 가서 출상을 보고 돌아오는 일은 늦은 저녁에야 끝나게 되었다. 상주들이 사용하는 장례용 버스를 타고 오려던 나와 다른 친구는 저녁이나 함께하자는 H의 권유에 별생각 없이 그의 차를 타게 되었다. 도시로 가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별장에 있는 개가 밥을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차를 그의 별장이 있는 먼 시골로 향하게 했다. 개가 저녁을 잘 먹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늦게 도시로 돌아오게 되었다. H의 집 근처 전철역 앞에서 그는 집에 가야겠다며 차를 돌렸다. 늦은 저녁이어서 허기가 밀려왔다.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 되어 버렸다. 내가 다른 친구를 식당에 데려가며 말했다.

 “H의 개는 밥을 먹고, 저 녀석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굶고……. 개 같은 날의 저녁, 아니 개보다 못한 날의 저녁이네?”

 

 

 

 

 

약은 사람이 잘 살더라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굳어진다. 이유 없이 공짜로 타인에게 시혜를 베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한 타산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것을 모르고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와 믿음 그리고 정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그렇게 믿고 살고 있다.

 대기업 자재 담당자로 근무하던 나는 하청회사의 담당자 중 유달리 똑똑해 보이는 두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내게 보인 믿음과 정성은 실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 둘은 자기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부탁한 자질구레한 조사업무를 성심성의껏 완수해주었으며 훌륭한 상담자로, 좋은 동생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나는 그 둘에게 내가 생각한 아이템으로 창업할 것을 권유했고 그들은 내가 만든 계획서를 따라 창업을 시작했다. 그 둘은 내게 말했다.

 “은행에서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는데 형님이 해주셔야…….”

 순진한 나는 그들 회사에 덜컥 보증을 서주고 말았다. 이후에 그들의 회사는 벤처 붐과 더불어 일익번창을 거듭했다. 이후 IMF가 닥쳤으나 그들의 회사는 오히려 더 단단해져 갔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의하여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때 둘은 함께 하던 회사를 분리해 각자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두 회사 모두 건실한 중견기업이 된 지 오래였다. 그들이 회사를 세울 때 내게 했던 다짐이 기억났다.

 “회사를 크게 만들어 형님을 모시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희안하게도 둘의 대답은 같았다.

 “덕담으로 한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시다니요?”

 뒤늦게 세상살이의 무서움을 안 나는 그룹 관계사로 회사를 옮겼다. 어린 친구들에게 우롱 당했다는 생각에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진다고 자학을 습관처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순진한 사람은 괴롭다

 

 

 

 

 맑은 마음으로 순진하게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허망하기까지 하다. 그 시절 직장 동료 중 동갑내기로 사십이 넘었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이가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근무한 사이라면 아침에 출근해서 얼굴만 보아도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K는 한눈에도 홀아비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이였다. 그가 일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서 몇 년을 근무하자 사귀던 여자가 그 사이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래서 계속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지구의 반은 여자인데 그러면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되잖아? 그는 그 여자만 한 여자가 눈에 띄지 않아 그냥 혼자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여자는 잘살고 있고 혼자 사는 그 남자의 삶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는 여자에 대한 상처 같은 것을 트라우마로 안고 산다. 혼자 사는 것이 좋은 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결혼해보고 그것이 좋지 않아 혼자 사는 것과 아예 해보지도 않고 혼자 살아야만 하는 운명은 좀 다르지 않은가? 그는 결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상사의 자잘한 폭언에 괴로워하곤 했다.

 우리 사회는 이쪽이 저쪽의 인격을 높여주고, 받들어 줌으로써 내 인격을 높이는 그러한 상하 간의 존경과 신뢰의 대인관계 위에 서 있는 평등한 사회기 되어야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각자의 개성이 있고, 그 개성에 따라서 제각기 선택하는 직업이나 사고방식도 다를 것이다.

 또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사무적인 위아래의 구별이 전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상·하의 구별이란 한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고, 억압을 당하는 그러한 상·하의 구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회체제를 이루어 나가는 조직체로서의 상하이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은 극도로 발달한 메커니즘 시대에서는 직업도 가지가지요, 사무 분담의 상하나 순차도 층층이어서 우리 사회는 하나의 빈틈이 없는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구성원들이 서로 거짓과 숨김없이 흉금을 털어놓고 돕고 도우며 살아 나간다면, 그곳에는 저절로 밝은 우애(友愛)의 빛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 가슴 속에는 존경과 믿음이 가득 찰 것 같기도 하다. 이 존경과 믿음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의 본질이 된다. 이 존경과 믿음이야말로 삶의 기둥인데 서로 존경하고 신뢰한다면, 티끌만 한 부정이나 불신도 움틀 리 만무하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얼마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도 나처럼 늙어 있었다. 이제는 작은 회사에서 더 작은 회사로 옮겼다고 했다. 지금도 총각인 그는 그곳에서도, 그리고 이 나이에도, 상사의 자잘한 폭언을 여전히 고충사항으로 안고 있었다.

 

 

 

 

 

나이 듦의 쓸쓸함

 

 

 

 작년 말에 우연히 고교 반창회에 갔다가 반장이 되어버렸다. 모임에 자주 나가지 않는 나를 향해 급우들이 족쇄를 만든 셈인데 이후로는 꼬박꼬박 모임에 나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반장 등 임원진의 모임이 있어서 그곳에 갔는데 뜻밖에 스물다섯 명 가량의 동창이 모인 전체 동창회여서 40년 만에 만난 친구도 있을 정도였다. 내 또래들이 이렇게 늙은 얼굴이었음은 예전에 느끼지 못했다. 게 중에서 스무 명은 뒤쪽만 대충 머리가 있고 나머지 앞과 옆쪽은 홀랑 빠진 대머리였다. 머리숱이 그런대로 남아있는 친구들은 얼굴의 주름살이 어찌도 그리 많은지 나는 친구들 모두가 나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내가 삼십대가 될 때까지는 나는 내 어머니의 나이가 항상 서른여덟인 줄 알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이후 예순이 가까워지자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

 “살아온 날들이 너무 빠르다. 낮잠 한숨 잔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그때 나는 그 말이 다소 허풍스럽고 과장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아온 반백 년 이상의 세월이 낮잠 한번 잔 것과 비교될 수야 있는가? 지금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 가장 명징하게 정의할 수 있는 말은 ‘인생 별것 아니다’는 말과 함께 ‘인생살이 금방 간다'는 두 가지다. 인생 금방 간다는 말이야말로 나이 듦의 쓸쓸함을 단적으로 표시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새해 첫날, 새로 돋는 해를 보면서 올해는 여러 가지 일을 벌이지 말고 그간 하던 일을 잘 정리해보기로 했다. 블로그에서도 새로운 무엇을 시도하기보다는 하던 것을 말끔하게 완성하자는 생각을 해보았다. '옛날의 금잔디'는 자전적 소설 같은 내용을 콩뜨 형식으로 100편 써보자고 생각하며 재작년에 시작했는데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뭐든 마무리를 잘하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또 해본다. 그래도 부라보! 내 인생.

 

'(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안함을 전하다  (0) 2016.06.07
밥벌이의 지겨움  (0) 2016.03.18
장군(將軍)과 군중(群衆)  (0) 2016.01.15
아무도 몰랐다  (0) 2016.01.08
톰슨가젤의 비극  (0) 201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