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

옛이야기

by 언덕에서 2016. 11. 2.





옛이야기






세상을 떠나신 지 몇십 년, 오래되었지만 조부모님에 관한 기억이 몇 가지 남아있다. 초등학교 시절, 겨울 방학이 되어 큰집에 가면 마당에는 알곡을 가득 담은, 짚으로 짠, 쌀가마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나는 쌀더미 위를 다람쥐처럼 올라가곤 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발견할 때마다 내려오라고 야단치셨다. 위험하다고 느껴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큰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잔소리만 하는 할배가 죽었으면 좋겠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곤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뵐 때마다 내 손바닥을 펴게 하시고 손금을 보셨다. 그럴 때마다 혼자 고개를 끄덕이곤 하셨는데 손금으로 본 내 팔자가 좋아서 그러신 건지 아니면 습관이어서 그러신 것인지 알길 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돌아가셨다. 

 이런 기억도 있다.

 큰댁의 마당 구석에는 닭장이 있었는데 암탉이 알을 금방 낳아서 둥지에다 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만져보니 따뜻한 것이어서 그것을 들고 할머니에게 가서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흔쾌히 그러라고 하셔서 깨어 먹은 적이 있다. 따뜻하고 고소한 것을 마시고 있는데 등 뒤에서 뭔가 따가운 시선을 느끼게 되었다. 큰어머니가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큰어머니가 싫어하는 짓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러셨을까? 못 사는 집안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날, 밥 먹는 중에 큰어머니는 젓가락질이 서툰 나를 발견하고는 ‘지 아버지와 똑같이 젓가락질이 서툴다’는 지적을 하셨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그 말을 했더니 큰어머니의 언사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때야 어렴풋이 아버지와 당신의 형수인 큰어머니 간의 사이가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남 김해 시골의 대농이었던 할아버지는 그 많은 재산 대부분을 장남인 큰아버지 앞으로 물려주시고 둘째 아들인 아버지에게는 자투리 논 몇 마지기만을 넘기셨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부농의 아들이 도시 빈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장자상속의 원칙에 따라 흔한 일이었다. 나이가 든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가계를 꾸려나갔다. 도시 변두리의 마을에서 돼지를 키우기 시작하신 것인데 아버지는 아침마다 시장의 음식점을 돌며 음식 쓰레기를 거두시어 돼지 사료로 먹였다. 아버지의 몸에서 상한 음식 냄새가 나기 일쑤여서 학교 친구들이 알까 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부모님은 극진하게 조부모님을 대하셨다. 그런 점에서 두 분은 모두 어질기 짝이 없는 분이셨다. 부모에게, 시부모에게 싫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색 또한 하지 않고 사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제간에 불만이 있을지언정 절대 표현하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조부모님의 왕래는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로 잦았다는 기억이다. 두 분이 함께 오신 적은 없었고 한 번은 할아버지가 몇 달 지난 후에는 할머니가 방문하시곤 했다. 별다른 행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농번기가 끝나면 그냥 바람 쐬러 오신 것으로 생각된다. 할아버지는 시장 한구석에서 노인들이 모여 장기 두고 한담 나누는 곳에 어울리곤 하셨다. 시아버지가 오신 관계로 어머니는 시장에 가서 찬거리를 사 오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장바구니를 가져오라고 명하시고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가 일일이 뒤져보는 일이 상례였다. 어머니는 그것이 몹시도 못마땅한 것 같았다. 이웃 사람들에게 ‘시아버지가 장바구니를 검사하시니 매우 민망하다‘는 푸념을 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부농의 아내였지만 평생을 밭일과 들일만 하신 분이라 행색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고급 옷감으로 만든 깨끗하고 단정한 한복이 여러 벌 있었음에도 회색 치마저고리 같은 일상에 입던 옷을 입고 왕림하곤 하셨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어머니에게 ‘댁의 시어머니는 행색이 지나치게 추레하다’ 또는‘추접다’는 혹평을 하곤 했다. 좋은 옷이 있음에도 입어보는 버릇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여겨진다.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장을 보러 가거나 외출했을 때 장롱을 비롯한 이불장 등 집안의 모든 서랍을 뒤지셨다. 어떻게 살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할머니가 다녀가신 후 어머니는 내게 ‘네 할머니가 장롱을 뒤지지 않더냐’고 물곤 했는데, 나는 사실 그대로 ‘그렇다’고 대답하곤 했다.

 할머니에 관한 마지막 기억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사위와 아들 둘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낸 할머니는 구십 중반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노안으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였다. 설에 큰절을 올리며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라고 인사하면

 “에잇! 더러운 놈아!”

 라며 고함을 치시기가 일쑤였다. 오래 산다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신 것이다.

 큰댁 옆집에는 할머니의 윗동서인 큰할머니가 계셨다. 노환으로 몸져누워계셨는데 문안 인사를 드릴 때마다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이 사람아, 내가 퍼뜩 안 죽는다. 어쩌면 좋노?”

하시며 자식에게 짐이 되어 있음을 안타까워하셨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장형이 결혼하고 조카를 낳고, 둘째 형도, 나도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었다. 어머니는 ‘내리사랑’이라는 표현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듯 손주에게 할 수 있는 만큼의 모든 사랑을 쏟아 부으셨다. 그러다 한 번씩은 한숨을 쉬며 이런 말을 잊지 않으셨다.

 “손주들을 키우니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다 같은 손주인데 네 할머니는 어찌 그리 인정이 없고 너희에게 무관심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원망스럽고 또 이해할 수가 없다. 시어머니가 내 자식에게 용돈 한 푼 주는 것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고서도 무슨 할머니란 말이냐?”

 지난 기억들을 더듬어 보니 과연 그랬다. 할머니는 내가 서른세 살 때 돌아가셨는데, 내가 코흘리개 때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할머니로부터 용돈 받은 기억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그 점을 안타깝고 서운하게 생각하시며 사셨다. 어머니는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손주 사랑의 일면으로서 용돈 주는 행위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는 우리 형제가 시어머니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여기신 듯하다. 지금 우리 부부 슬하의 아이 둘이 반듯하게 자라난 것은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작년 가을에 큰아버지의 맏이 딸인 사촌 큰누이를 만난 적 있다. 누님도 이제는 칠십을 넘은 나이라 서정주의 ‘국화 앞에서’에 등장하는 ‘거울 앞에 선 내 누이’를 연상시킨다.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내가 먼저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누님, 가만 생각하니 삼십 년 이상 할머니를 대했는데 용돈 한 푼 받은 기억이 없네.”

 누님은 ‘하하’ 웃으면서 

 “할머니가 무슨 돈이 있었겠나? 있었더라도 말 못할 무슨 사정이 있지 않았겠나. 네가 많이 서운했구나.”

 라며 달랬다.

 “아니, 갑자기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랬지.”

 하니

 “하하, 숙모는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모두 옛이야기 아니냐?”

 며 나를 위로했다.

 누님은 이십대 젊은 나이에 청상(靑孀)과부가 되어 재가하지 않고 홀로 딸을 잘 키웠는데, 지금은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집안의 큰누나로서 갖은 못 볼 일들을 목도하고도 화해와 조정을 멈추지 않았다. ‘어짊’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는 점에 대해서 항상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 월간지 맑고향기롭게 2018년 1월호에 게재됨 -






위의 사진은 할아버지의 환갑 사진으로 추정된다. 진갑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렇다. 오래된 사진이어서 조심해서 스캐너로 떠서 jpg 파일로 만들었다. 신문지 위에다 음식을 차렸는데 p.c에서 신문 부분을 확대해보니 '베라크루즈'라는 서부영화 광고가 보였다. 게리 쿠퍼, 버트 랭커스터 주연…….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 영화는 1954년에 개봉된 것이어서 그 즈음의 사진이 아닌가 추축해본다.


'(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다라의 구슬  (0) 2016.11.23
낡은 청첩장  (0) 2016.11.10
지금도 사랑 속에서  (0) 2016.09.02
개와 고양이에 대한 여러 고찰  (0) 2016.07.22
잘 가시오, 가까이서 오래 사귄 이여  (0) 201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