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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93

벚꽃 엔딩 벚꽃 엔딩 세상에는 참 우스운 일도 많다. 얼마 전 내가 휴대폰을 잃어버린 사건도 그런 우스운 사건 중의 하나다. 우습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일반적인 분별일 뿐 알고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세상살이에는 우스운 일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람 사는 일을 진지하고 냉정한 눈으로 관찰하고 염려해본 사람이라면 내가 겪은 ‘휴대폰 분실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도 당연히 우스운 일만은 아니구나 하는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기억력이 줄어들었다는 것, 봄이 좋아진다는 것 이 두 개의 팩트가 만들어낸 사건은 비극인지 희극인지 구분조차 애매하다. 늙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고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온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날 창밖을 보.. 2015. 4. 10.
아버지 마음 아버지 마음 지금 기억을 되살려보니 그 해가 2007년이었다. 공무원인 아내가 기관 내에서 표창(表彰) 받은 관계로 그 포상(褒賞)으로 배우자로서 단체여행에 동반하게 되었다. 나는 단체여행이라는 단어에 항상 시큰둥한 편이지만 여행지가 백령도라는 말을 듣고 가겠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제주도, 울릉도 가봤다는 사람은 많았어도 백령도 여행 경험이 있는 이는 그다지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청에 납품하는 모여행사의 여행 상품은 부산에서 인천까지 관광버스로 이동하여 인천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백령도에 도착해서 1박 2일 한 후 저녁에 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와 경기도 이천에서 또 1박한 후 도자기 축제를 구경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그런 일정으로 기억한다. ♣ 5월3일 오전 9시 인천에서 백령도로 향하는 '데.. 2015. 3. 6.
귀신이 있다? 귀신이 있다? 현대에 생산되는 소설을 우리는 현대소설이라고 부른다. 근대 이후의 소설들은 통상 하나의 출판사가 그 소설에 출판권을 가지며 한 명의 작가가 저작권을 소유한다. 민담이나 전설은 물론 그렇지 않다. 그것에는 이렇다 할 소유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민담의 .. 2015. 2. 27.
고향 고향 나는 자리에 드러누웠다. 배 밑바닥에 부딪히는 잔잔한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깊이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나의 길을 가고 있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그와 나는, 각자가 이미 다른 길을 걸은 지 오래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하나로 이어져 있다. 성인이 된 그와 내가 겪어야 했던 단절을, 어린 이 아이들이 미래에 또다시 겪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의 단절된 마음 때문에 지금의 나처럼 이곳 저곳 괴롭게 떠도는 생활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지금의 아이들이 그처럼 경제적으로 괴롭고 힘든 생활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처럼 괴로워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지경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아이들은 마땅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아직 경험해 본 일이 없는 그런 삶 말이다! '희망'.. 2015. 2. 17.
여행에서 만난 60대 부부 이야기 여행에서 만난 60대 부부 이야기 약 10년 전의 일이다. 결혼 15주년 기념으로 홍콩, 싱가포르, 마카오 등을 거치는 단체여행 상품을 구매하여 1주일간 동남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단체여행 상품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같은 일행 중에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뜻밖에 여행이 즐거워지는 법이다. 출발, 공항 로비에 여행사 직원이 도착하자 근처에 있는 초면의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 오후 알게 된 것이지만 단체관광 일행의 구성은 이랬다. 40대 중반의 우리 부부 이외에 50대 초반의 부부와 자녀 둘,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부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 30대 후반의 부부 해서 12명의 인원이 일주일을 함께 여행하게 되었다. 어차피 다들 초면이어서 첫날과 이튿날은 관심이 없었지만.. 2015. 2. 13.
안녕, 안녕 안녕, 안녕 너와 헤어진지 일 년이 훨씬 지났다. 이제는 너도 변한 나의 마음과 엄연한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기에 아무래도 고백해야겠다. 아쉽지만 정식으로 결별을 고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너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헤어짐은 슬픈 일이다. 너와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수많은 회환이 나를 덮친다. 너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본다. 고교 시절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체육관 뒤편 아무도 오지 않는 모퉁이에서 너를 처음 만났다. 너를 처음 입에 대고 빨아 당겼을 때 나는 그만‘휘청’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나처럼 첫경험이었는지 앞에 서있는 녀석은 ‘이게 마약이구나! “ 하며 놀라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 옆에 앉은 녀석에게 고백했다. “나 방금 담배 피웠다.. 2015. 1. 23.
어떤 투사(鬪士) 어떤 투사(鬪士) 단순한 사람들은 한쪽만을 선택해 보고 그쪽을 이해한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집단 어떤 주장도 완전히 선하지 않은 것처럼 완전히 악하지만은 않다. 그 시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적당히 타협하게 되지만, 보다 철저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미덥잖은 그 정도의 차이에 빠져.. 2015. 1. 16.
햇복숭아 햇복숭아 젊은이들은 나 같은 중늙은이를 보면 궁금해 할 것이다. 저런 사람도 연애를 해보았을까, 아름답거나 슬픈 추억이 있을까 라고. 답은 아주 간단하다. 지나간 시절 아쉬움과 안타까움, 눈물 없는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삼십대 초반의 5월의 푸른 초록이 눈부신 오전.. 2015. 1. 9.
낮선 곳처럼 길을 잃다 낮선 곳처럼 길을 잃다 오래된 건물들에는 나름대로의 품위가 있고 역사가 있다. 지나온 세월 만큼의 추억과 기억을 가득 채운 경륜 있는 건물들만이 간직한 세월의 흔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건물로 말미암아 서로의 눈빛에서 흘러온 시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세월도 있다. 때문에 그 .. 2014. 12. 12.
술이 원수라고? 술이 원수라고? 좌충우돌의 미학은 /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 드디어 끝난다. /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 점잖은 친구들아, /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 되려 기뻐해다오. 위의 시는 김관식1(1934 ~ 1970) 시인의 시 '김관식의 입관(入棺)' 중 일부이다.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끝나다니 ‘너’는 누구일까? 바로 ‘술’이다. 술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는 것인데 실제로 그는 술 때문에 죽었다. “오오냐, 오오냐 적당히 살거라 시인들아!”라며 세상을 온통 긍정하면서도 눈물로 시적 에스프리2를 캐냈던 박용래3 시인은 천성적 순수로 현실에는 도저히 편입될 수 없는 시인이었다. 강경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으나 돈 세는 것에 염증나 그만둬버린 시인은 돈ㆍ사회와는 영영 등을 돌리고 술로만 .. 2014. 12. 5.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죽음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죽음 사람이 살다 보면 위험하게 생명의 고비를 넘길 때가 있다. 우연히 신문에서 어느 명사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경우를 칼럼으로 쓴 것을 보고 나도 그런 적이 있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는 죽을 뻔한 고비를 딱 세 번 우발적으로 당했다. 남들처럼 불치의 병에서 회복되어 살아났다는 그런 영웅적인 투병 경험은 아니지만 내가 비명횡사할 뻔한 첫 번째 기억은 군에서 제대한 이듬해 여름 방학 때였다. 동아리 멤버의 누님 부부가 사는 가덕도라는 섬에 친구들과 함께 2박 3일의 일정으로 이른바 여름 캠핑을 간 적이 있다. 더위를 식히느라 물에 들어갔다가 발을 헛디뎌 깊숙한 곳에 빠지는 바람에 물귀신을 될 뻔했다. 다행히 그곳에 주재하던 해양경찰이 실신 상태의 나를 건진 후 인공호.. 2014. 11. 28.
스며드는 저녁 스며드는 저녁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르 꽃 밑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고 저녁 스며드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잎들은 와르르 빛 아.. 2014.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