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 곳처럼 길을 잃다
오래된 건물들에는 나름대로의 품위가 있고 역사가 있다. 지나온 세월 만큼의 추억과 기억을 가득 채운 경륜 있는 건물들만이 간직한 세월의 흔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건물로 말미암아 서로의 눈빛에서 흘러온 시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세월도 있다. 때문에 그 부근에 서서 그 건물과 풍경을 바라보자면 무슨 음악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도시의 오래된 자취들에서 흘러나오는 기억의 파편 같은 것이리라. 그것은 가까운 것들이 멀어질 때 퍼지는 환청과 닮아 있다. 어쩌면 내게 멀어져 간 아득한 모든 것 같기도 하다.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은 그 성당도 그랬다.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곳에서 유아영세를 받았다.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교리를 배우고 도덕 보다 앞선 ‘교의’를 새기곤 했었다. 가난했던 시절, 갈 곳 없는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던 수많은 기억의 요람.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갈 때 그 성당은 이미 ‘우리들의 성당’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각자가 살던 동네마다 성당이 하나씩 만들어 졌으므로 그곳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성당을 잊고 30년을 살았다. 그런데 과연 그 성당은 옛 모습 그대로 일지가 궁금했다.
1960년대 초에 지은 그 성당은 최근에 개. 보수를 한 탓에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미로를 뒤지듯 겨우 입구를 찾아 미사가 시작하려는 본당으로 향하다 계단을 찾는데 또 헤매고 말았다.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나란히 있는 게 아닌가? 본당 내에서도 또 헤매어야만 했다. 체육관만큼 커보였던 그곳이 교실 몇 개 붙여놓은 것 같이 작았던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모두들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교실에 가보면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우리가 공부를 했던가 하고 놀라는 감정 말이다. 안개처럼 밀려오는 오래된 추억들을 안고 기억의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쳐보지만 모두들 지나간 기억의 조각들뿐이었다. 나는 어느 틈엔가 현실의 길을 잃고 그것은 마치 내 기억 속을 헤매는 듯 했다.
다음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박사, 있잖아. 어제 아내랑 서면성당에 미사 보러 갔거든.”
“왜? 너네 동네 성당 안가고?”
“서면성당, 안가본 지 30년이나 되었잖아? 그냥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데.”
“그래, 어떻더노?”
“건물을 보수했는데 이제는 마당 조차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였어. 게다가 도로변에서는 입구도 못 찾았고.”
“아……. 그랬구나.”
갑자기 이성복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제목이 ‘음악’이던가?
비 오는 날 차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 이성복 '음악' 전문,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문학과지성사. 1993
시인의 말처럼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그런 느낌의 낡고 오래된 푸른 환청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벌써 한 해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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