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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

낮선 곳처럼 길을 잃다

by 언덕에서 2014. 12. 12.

 

 

 

 

 

 

 

 

낮선 곳처럼 길을 잃다

 

 

 

 

 

 

 

 

 

 

 

 

 

 

 

오래된 건물들에는 나름대로의 품위가 있고 역사가 있다. 지나온 세월 만큼의 추억과 기억을 가득 채운 경륜 있는 건물들만이 간직한 세월의 흔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건물로 말미암아 서로의 눈빛에서 흘러온 시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세월도 있다. 때문에 그 부근에 서서 그 건물과 풍경을 바라보자면 무슨 음악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도시의 오래된 자취들에서 흘러나오는 기억의 파편 같은 것이리라. 그것은 가까운 것들이 멀어질 때 퍼지는 환청과 닮아 있다. 어쩌면 내게 멀어져 간 아득한 모든 것 같기도 하다.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은 그 성당도 그랬다.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곳에서 유아영세를 받았다.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교리를 배우고 도덕 보다 앞선 ‘교의’를 새기곤 했었다. 가난했던 시절, 갈 곳 없는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던 수많은 기억의 요람.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갈 때 그 성당은 이미 ‘우리들의 성당’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각자가 살던 동네마다 성당이 하나씩 만들어 졌으므로 그곳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성당을 잊고 30년을 살았다. 그런데 과연 그 성당은 옛 모습 그대로 일지가 궁금했다. 

 

 

 

 

 1960년대 초에 지은 그 성당은 최근에 개. 보수를 한 탓에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미로를 뒤지듯 겨우 입구를 찾아 미사가 시작하려는 본당으로 향하다 계단을 찾는데 또 헤매고 말았다.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나란히 있는 게 아닌가?  본당 내에서도 또 헤매어야만 했다. 체육관만큼 커보였던 그곳이 교실 몇 개 붙여놓은 것 같이 작았던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모두들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교실에 가보면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우리가 공부를 했던가 하고 놀라는 감정 말이다. 안개처럼 밀려오는 오래된 추억들을 안고 기억의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쳐보지만 모두들 지나간 기억의 조각들뿐이었다.  나는 어느 틈엔가 현실의 길을 잃고 그것은 마치 내 기억 속을 헤매는 듯 했다.

 

 

 

 

 

 

 

  다음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박사, 있잖아. 어제 아내랑 서면성당에 미사 보러 갔거든.”

 “왜? 너네 동네 성당 안가고?”

 “서면성당, 안가본 지 30년이나 되었잖아? 그냥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데.”

 “그래, 어떻더노?” 

 “건물을 보수했는데 이제는 마당 조차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였어. 게다가 도로변에서는 입구도 못 찾았고.”

 “아……. 그랬구나.” 

  

  갑자기 이성복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제목이 ‘음악’이던가?     


   

  비 오는 날 차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 이성복 '음악' 전문,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문학과지성사. 1993

 

 

  시인의 말처럼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그런 느낌의 낡고 오래된 푸른 환청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벌써 한 해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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