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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안녕, 안녕

by 언덕에서 2015. 1. 23.

 

 

 

 

안녕, 안녕

 

 

 

 

너와 헤어진지 일 년이 훨씬 지났다. 이제는 너도 변한 나의 마음과 엄연한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기에 아무래도 고백해야겠다. 아쉽지만 정식으로 결별을 고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너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헤어짐은 슬픈 일이다. 너와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수많은 회환이 나를 덮친다.

 너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본다. 고교 시절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체육관 뒤편 아무도 오지 않는 모퉁이에서 너를 처음 만났다. 너를 처음 입에 대고 빨아 당겼을 때 나는 그만‘휘청’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나처럼 첫경험이었는지 앞에 서있는 녀석은 ‘이게 마약이구나! “ 하며 놀라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 옆에 앉은 녀석에게 고백했다.

 “나 방금 담배 피웠다. “

 나를 힐끔 쳐다보던 수재(秀才)는 아무 말이 없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넘쳤다.

 다음 쉬는 시간, 그 녀석은 나를 끌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교직원용 화장실. 녀석은 교복 안주머니에서 거북선이란 담배를 꺼내며 내게 권했다. 그날은 거기에서 그치질 않았다. 지금은 유명 시인이 된 또 다른 수재 녀석이 옆 반에 있었다. 무슨 심사였는지 하굣길 걷다가 발견한 그를 큰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또 고백했다.

 “나 오늘 담배 피웠다.”

 “그래?”

  정현종의 시를 계속 이야기하던 그는 빵집을 발견하자 그 안으로 들어갔다. 빵집 일층은 담벼락을 공유하는 옆학교 여자상업학교 학생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층은 휑하니 비어있었다. 그가 교복 안주머니에서 손을 빼니 거북선 담배 한 갑이 또다시 고스란히 나왔다.

 “피우자.”

 텅 비어 있는 빵집 이층 방에 연기가 퍼져갔다.

 너를 입에 물면 어른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방과 후 후미진 골목길에 숨어 어른인 척 너를 물고 있던 친구들도 기억난다. 그때의 진지하던 표정들을 잊을 수 없다.

 물론 청춘의 고민과 상처, 그 고비마다 너를 만나 위안을 얻을 때도 있었다. 연거푸 너를 피워대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첫사랑에 버림 받았을 때, 아버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너를 피우며 눈물을 흘렸고 군대에서 죽을 만큼 맞았을 때 너를 피우며 시름을 떨쳤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깨졌을 때도 너의 연기를 삼키면 상처 받은 마음이 가라 앉았다. 직장이 망했을 때 쓰라린 심정으로 처자식을 생각할 때 너는 나의 벗이 되어주었다. 한 달 동안 계속 밤샘 근무를 하다 정신을 잃을 상황에서도 너를 대하면 정신이 살아나곤 했다. 누군가 어려운 질문을 할 때는 무식함의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는 구원투수이기도 했다. 너는 술 취한 늦은 밤, 밤길을 밝혀주는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했지. 그래, 생각해보면 너는 내게 고마운 존재인 적이 많았다.

 

 

 

 그러나 너와 헤어져야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너와 헤어짐을 몇 년 간 시도했지만 번번이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너를 찾곤 했다. 그렇게 너와의 이별은 번번이 실패했고, 네가 없으면 불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너와 헤어져야 한다고 결심했다. 19세 당시 내게 너를 권했던 이들은 모두 너와 결별했건만 나만 그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박약 외에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와 헤어짐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의 지독한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자꾸만 네가 내 체력과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너를 피우는 사람이 만든 연기가 내 후각을 자극할 때 나는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남에게는 무한한 민폐가 될 수 있음을 말이다. 그간 침묵으로 애써 외면해주었던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다시 전한다.

 간혹 남들이 담배를 심각하게 피우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그것은 그가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그의 담배 피우는 모습에서 내가 피우던 모습을 상상해 보려는 생각 때문이다. 삼십오 년 동안의 습관을 이제 버린 지 일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남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에서 내 자신의 과거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간혹 아직도 책상 서랍에 남아 있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 뽑아들고 입에 물고 빈 연기를 빨아보기도 한다. 나는 향수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나는 일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피우던 담배와 라이터를 그대로 갖고 있는데 그것은 담배를 끊기 위해서 갖고 있던 라이터를 친구 주고 담배는 가위로 잘라버리는 요란스런 시위행위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었다.

 너와 헤어진지가 일년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가 말했던가.

“금연처럼 쉬운 일이 없다. 오늘 끊었다 내일 다시 피우고, 내일 끊었다 모레 다시 피우고….”

 너와 헤어지는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역설적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헤어졌다. 너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진작 인사를 못해서 미안하다. 너와 헤어진 후 일 년이 지나면 완전한 이별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너와 완전히 헤어졌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이 이제는 온 것이다. 사랑할 수 없어 너를 죽여 버린 너를 보내고 나니 희망이 보인다. 두 번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강 건너 붉은 새가 말없이 사라진다. 그리운 이여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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