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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귀신이 있다?

by 언덕에서 2015. 2. 27.

 

 

 

귀신이 있다?

 

 

 

 

 

현대에 생산되는 소설을 우리는 현대소설이라고 부른다. 근대 이후의 소설들은 통상 하나의 출판사가 그 소설에 출판권을 가지며 한 명의 작가가 저작권을 소유한다. 민담이나 전설은 물론 그렇지 않다. 그것에는 이렇다 할 소유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민담의 소유권자가 될 수 있고 그것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처럼 확대 재생산된다.  그는 '역사에서 절대자는 과거나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쪽으로 움직여 나가고 있는 미래에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누구나 민담의 윤색가가 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새로운 민담의 창조자가 되어 사회를 자신의 의도대로 뒤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여고생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도중에 탄 어떤 할머니가 그 여고생이 앉은 자리 앞에 와서 선다. 여고생이 자리를 양보하려 하자, 할머니는 몇 번이나 괜찮다면서 사양한다.

 몇 정거장이 지나고 갑자기 그 할머니가 여고생에게 ‘노인이 바로 앞에 있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앉아 있다’는 둥 막말을 퍼부어 대며, 여고생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너 따라와 이년아”라고 말하면서 여고생에게 버스에서 내릴 것을 종용했다. 억울함을 느낀 여고생이 시비를 가리려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자, 잠자코 있던 버스기사가 조용히 뒷문을 닫으면서 “학생 가지 말고 그냥 있어”라고 말한다.

 버스기사의 백미러에는 아까부터 따라오던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고, 그 할머니는 버스에서 내려서 그 봉고차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여고생 봉고차 납치괴담이라는 위의 이야기처럼 리얼리티만 있다면 거기에 살을 붙여 이리저리 퍼뜨릴 것이다. 물론 저자의 이름을 모른다. 나는 이런 근거없고 돼 먹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나 자신이 체험한 기막힌 이야기로 독자들이 읽은 후에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1.

 벌써 약 25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조부모님, 증조부모님 등의 집안 제사(祭祀)를 성공한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는 사촌 장형이 서울에서 지내고 있지만 당시는 백부님이 살아계셨던지라 본가인 경남 김해시에서 제사를 지냈었다. 명색이 족보가 있는 집안임을 자랑하는 우리 가문이어서 제사 또한 밤 12시 정시에 지내는 것이 상례였다. 제삿날에는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야근을 하지 않고 상사에게 양해를 받은 후 퇴근하여 경남 김해 본가로 넘어가서 제사를 지냈더 것이다. 조부님이 대농으로 터잡고 사시던 김해시 내외동 벌판 지역은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그런 연유로 김해에서 부산으로 통하는 전철이나 각종 야간 직행버스가 불야성을 이루지만 당시는 인가가 그다지 많질 않아 밤이 깊으면 오로지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해서 부산의 신혼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하여 입사한 회사에서 초급사원 티를 벗고 있는 중이었다.

 조모님의 제삿날인 6월 중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제사가 끝나고 친척들이 모여앉아 음복(飮福)을 하고나니 시계가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였던 일가들은 아침의 출근을 위하여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동네 벌판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당시는 같은 방향이면 택시기사가 합승을 요청할 경우 그것을 양해해주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택시를 잡은 나는 운전사 뒷자리에 앉아 부산까지 갈 것을 요구했고 다행히 그 택시는 경남택시가 아닌 부산번호를 단 택시여서 무난히 귀가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지닌 채 좌석에 몸을 묻었다.

 우기(雨期)로 접어들려는지 그날의 날씨는 습했고 가랑비가 간간히 뿌리고 있었다. 지금의 부산 · 김해간 도로는 왕복 8차선으로 변했지만 당시는 왕복 2차선 도로였다. 부산으로 향하는 밤길을 질주하던 택시 앞창에서 버스 정류장의 가로등이 보였고 흰 블라우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차를 잡기위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기사는 내게

 “같은 방향이면 합승을 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그러시라고 대답했다.

 택시를 그녀 앞에 세운 기사는 조수석 창을 약간 열어 물었다.

 “어디까지 갑니까?”

 그녀는 대답했다.

 “광안리요…….”

 뒷자리의 창을 통해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심 ‘헉!’소리를 낼만큼 놀랬지만 나는 표시를 내지 않았다.

 기사도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조수석 문을 열려고 했지만 손잡이를 움직였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고 문도 열리지 않았다. 1분 정도가 흘렀을까 기사는 계속해서 조수석문을 열려는 그녀를 무시하고 급히 가속기를 밟았고 차는 급발진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단순했다. 흰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창백한 얼굴의 그 여성은 눈썹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기사가 그녀를 태우지 않고 급히 차를 움직인 이유가 궁금했다. 기사는 ‘아이고! 재수없어.“를 남발하고 있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억누르며 태연한 표정으로 기사에게 물었다.

 “제 목적지인 서면에 저를 내려주시고 광안리로 가면 되잖아요. 왜 안태웠습니까?”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차문 손잡이를 잡고 열려는 데도 소리가 안나잖아요. 손님은 저게 사람으로 보여요? 저건 헛깨비예요. 유령이라구요! 운전을 오래 한 우리들은 보면 알아요.”

 귀신이 있다니, 귀신이 있다니, 여러번 사실 여부를 물었지만 기사는 내가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이상할 정도의 침묵만을 유지했다.


2. 

 이후 새벽 2시경에 집에 도착하여 잠시 눈을 부쳤다가 그날 아침에 출근하여 아침 회의를 마친 후였다. 간단한 티타임이 있었는데 지난밤에 있었던 일, 그녀를 유령으로 간주했던 그 택시 기사의 판단이 타당했나에 대해 의문을 품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다들 그 택시기사가 좀 예민한 사람이 아니냐는 의견들이었다. 그러면 택시 문 손잡이가 이상이 없음에도 차문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라는 내 질문에는 다들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갑자기 평소에 과묵하기로 유명한 동료 C씨가 내게 물었다.

 “기사 나이가 얼마쯤 되어 보이든가요?”

 “글쎄요. 40대 초반 정도였지요.”

 경북 영천의 시골에서 자란 C씨는 부친이 그곳 향리에서 택시 기사를 업으로 살아왔는데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어느 늦은 밤, 아버님은 영천 읍내에서 여자 손님을 태우셨는데요. 사십대 후반 정도? 택시 탄 장소에서 30킬로 정도 되는 외딴 마을로 갈 것을 원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어느 집 앞에 도착한 그녀는 지갑을 안 들고 왔다고 하면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며 대문을 열고 그 집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지요.”

 “아하, 그래서요?”

 “20분을 기다려도 그 여자가 택시에 오질 않아 그 집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녀는 없었다고 합니다. 대문이 하나뿐이므로 그 사이 집을 나간 사람도 없고요. 그런데 그 집에서는 제사가 막 끝난 듯했는데 제사상 뒤편에 놓여진 사진을 보니 사진 속의 인물이 아까 택시에서 내린 여자였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이야기를 듣는 모두들 놀란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야기는, 그런 류의 괴담(怪談)은 귀에 못이 앉을 정도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최불암 시리즈만큼 흔한 심심풀이 땅콩 같은 이야기 말이다.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C씨는 군복무 시절 수도방위사령부인가 하는 곳에서 헌병대 하사관으로 복무했고 회사에서는 과묵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 경우 저 경우를 따지며 거짓부렁을 싫어했으며, 매사 정확하고 담백함을 좋아하는 그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당혹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귀신이 있다니, 귀신이 있다니, 여러번 사실 여부를 물었지만 그는 이후 내가 그 회사를 그만 두고 타회사로 옮기는 그날까지 이상할 정도로 그건에 대해서만은 침묵을 유지했다.

 

 

 

 

 

 몹시도 사랑하는 어느 남녀가 있었다. 둘은 너무 사랑해서 함께 살기로 했다. 5년 만에야 아이를 하나 낳았다. 예쁜 딸이었다. 딸은 자라서 어느새 다섯 살이 되었다. 어느 날 어린 딸은 현관 앞 계단에서 시장에 다녀오던 엄마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엄마 나 예뻐? 응, 너 예뻐. 계단 하나를 더 올라 딸은 또 물었다. 엄마, 나 정말 예뻐? 엄마는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래, 너 예뻐. 계속되는 문답에 종내에는 화가 난 엄마가 문을 막고 선 아이를 살짝 밀었는데 그게 아이와의 마지막이었다. 딸아이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었다. 부부는 상심에 잠겼지만 곧 다시 아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이는 시장에서 돌아오는 엄마를 붙잡고 물었다. 엄마, 나 예뻐? 5년 전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엄마는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고는 대답했다. 그래,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아이는 한 계단을 더 올라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예뻐? 그래, 너 정말 예뻐. 문답은 마지막 계단에 갈 때까지 반복된다. 마지막에 아이는 묻는다. 엄마, 나 정말 예뻐? 두려움에 떨면서 엄마는 대답한다. 그래, 너 예뻐.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묻는다. 근데 왜 그때 나 밀었어? 

 

 위의 이야기는 작가 신경숙이 자신의 단편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에 실린 『벌판 위의 빈집』에서 인용해 유명해진 내용이다. - 귀신이 있다니, 귀신이 있다니, 여러번 사실 여부를 알기 위해 소설의 앞뒤를 계속해서 읽었지만 작가는 내가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이상할 정도로 언급을 회피했다. 이 이야기에서 발견되지 않는 또다른 재미가 추가적으로 있다면 얼마든지 변색되어 퍼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이야기는 민담의 형태로 채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겪은 이야기도 '기록되지 않은 20세기의 민담들'이라는 제목으로 된 책 속에 포함되어 출판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현대에도 공포의 민담이 생겨나고 있다고? 이렇게 의심을 보낼 이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에 기반한 민담과 전설이 어디선가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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