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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햇복숭아

by 언덕에서 2015. 1. 9.

 


 

 

햇복숭아

 

 

 

 

 

 

 

 

 


 

젊은이들은 나 같은 중늙은이를 보면 궁금해 할 것이다. 저런 사람도 연애를 해보았을까, 아름답거나 슬픈 추억이 있을까 라고. 답은 아주 간단하다. 지나간 시절 아쉬움과 안타까움, 눈물 없는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삼십대 초반의 5월의 푸른 초록이 눈부신 오전이었다. 용인시에 위치한 회사 연수원에서 일주일 동안의 일정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육십대 초반의 남루한 옷차림의 노신사가 강사로 초빙되어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대면 다 알만 한 분. 가나안 농군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다.

 "여러분, 내가 많이 늙어 보이지?"

 그 질문에 모두들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예!"하고 대답했다.

 "해마다 봄이 되면 햇복숭아가 열려요. 여러분도 햇복숭아 서른 개 정도만 먹어봐, 나처럼 될 테니까."

 그러니까 해마다 햇복숭아 한 개씩 먹으면 서른 해 후에는 자신처럼 늙게된다는 표현이었다.

 



 그날 내가 동아일보사 쪽에서 외근을 마친 것은 늦은 봄날 하오 2시경이었다. 날씨 때문인지 몸이 나른하여 버스를 타지 않고 덕수궁 담을 끼고 시청 쪽을 걷고 있었는데 , 갑자기 '도둑이야!' 하는 고함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젊은 사람 몇이서 북창동의 옛 중국인거리 쪽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었다.

 나는 서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매치기려니 하고 무심히 그들이 뛰어가는 광경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분명히 어릴 적 친구인 김황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향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 동기 동창인 그는 헐레벌떡하고 뛰고 있었다.

 "야, 황근아!"

 그는 나를 힐끗 쳐다보는가 싶더니 뭐라고 소리치면서 여전히 뛰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가 날치기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이 분명하였다. 그가 뛰어가는 방향에서 영화촬영팀의 대형 카메라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뒤에서 뛰며 앞서 뛰어가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가로수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영화촬영 광경을 지켜보았다.

 김황근은 조금 전처럼 다시 뛰면서 앞서 뛰어가는 사람을 붙잡는가 싶더니 금방 북창동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10분 후에 내 앞에 나타난 그는 허붓허붓 웃었다.

 "오랜만이다. 십년 만이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내가 악수를 청하면서 그렇게 말하자 그는 재빨리 대답했다. 마치 그렇게 물어볼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동안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잘 안되어 집어치우고 영화사의 전속 엑스트라가 된 거야. 지금 날치기 쫓고 있는 신을 촬영한 거고. 매일 오전 중으로 명보극장 앞에 있는 대기실로 오면 만날 수 있으니까 한번 보자. 오늘은 바빠서 이만 실례한다."

 "응, 내가 한번 찾아갈게."

 김황근은 내게서 떠나 이번에는 서울시청 정문 방향으로 뛰어갔다.

 경남 K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이트클럽이나 야간 무대에서 트로트 가요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하던 그가 군대 제대 이후로 언제 서울로 올라와 무슨 일을 하다가 지금은 하루벌이 엑스트라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몇 년이 되도록 영화관을 간 적이 없을 정도로 바빴으니까 볼 수도 없었다. 사실은 그가 출연한 영화의 제목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그가 알려준 대기실 겸 사무실인 곳에도 찾아가지 못하고 말았는데, 다른 고향 친구에 의하면 그가 무슨 영화에 잠시 나왔다는 것이다.

 그 후 그러니까 시청 앞쪽에서 만난 지 몇 달 뒤인 그해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신촌 로터리에서 광화문 쪽으로 나가려고 전철을 타려하는데 그가 불쑥 나타났다.

 

 

 "야, 윤○○!"

 "난 또 누구라고. 영화배우가 웬일이지?"

 "그거 집어치운 지 오래야."

 "그럼 뭘 해?"

 "이렇게 버스정류장에 서서 시간을 기록하고 있어."

 "커피나 한 잔 할까?"

 "기록을 제대로 해야 하니까 다음에 하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광화문."

 "그럼 우리 회사 버스가 광화문을 통과하니까 그걸 타. 응, 마침 저기 온다. 저걸 타."

 빈 차여서 앉아가면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 다음에 보자고 말하기가 바쁘게 재빨리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내가 막 버스에 오르자 그는 버스 기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손님, 그냥 태우세요!"

 내가 오른 버스에는 마침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나는 여간 부끄럽지 않았다. 그가 내게 베푼 작은 호의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우정과 호의는 고마웠다.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초여름이었다. 당시 하숙하던 신촌에서 버스를 탔는데 뒷자리에 앉은 내게 기사가 앞쪽으로 오라고 소리쳤다. 내가 운전사 쪽으로 다가갔더니 색안경을 낀 운전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아, 김황근 그가 아닌가. 이 녀석은 나를 가끔씩 웃기려고 서울에 나타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보다시피 이렇게 됐네. 비번 날 만나러 갈 테니 명함이나 한 장 주게."

 나는 그에게 명함을 주고 태평로에서 내렸다.

 며칠 후 회사에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쉬는 날이라서 나하고 술이나 마시며 옛날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나는 퇴근하는 대로 곧장 나가겠다고 약속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퇴근 후에 만난 우리는 북창동의 삼겹살 집에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장가는 갔나?"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대답했다.

 "자네도 들었을 걸? 당시 고향에서 사귀던 초등학교 동창이 있었지. 계속 연애하다가 지금은 남매를 두었다네."

 "난 자네 소식을 듣지 못해서 알지 못했지."

 "그 여자도 전에는 미장원을 다니다가 자격증을 얻어 직접 운영했는데, 요즘은 운전을 한다고."

 나는 그가 아무 말이나 꾸밈없이 내뱉는 데에 호감이 갔다.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면서 얼큰하도록 마셨다.

 "아내가 곧 이리로 올 거야."

 "일하지도 않고 왜?"

 "자네를 만난다니 잘난 친구를 자기도 만날 자격이 있다나. 날 일찍 데리고 들어가기도 그러기도 하고……. 그리고 나 조금 있으면 인도네시아로 일하러 나갈 거다."

 "거긴 또 왜?"

 "왜라니, 거기 가서 좀 많이 벌어 보려는 거야."

 나는 그가 친지가 운영하는 합판 공장이 있는 인도네시아가 아닌 유럽이나 남북미의 어느 나라라도 가려고만 하면, 능히 갈 것만 같았다. 그만큼 한번 마음먹었다 하면 실천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밤 열 시가 가까워서야 그의 아내가 나타났다. 남편 곁에 앉은 그녀는 내게 싱긋 웃으면서 인사했다. 여장부답지도 않은데, 다부진 구석이 보이는 인상이었다. 술은 사양했다.

 "몇 년이나 있으려나?"

 "2년. 그런데, 그동안 저 여잘 자네가 잘 감시해 주게. 세상이 험하잖아."

 "하하, 웃기지 말라. 부인에게 그게 무슨 결례야?"

 "세상에서 제일 못나빠진 남자가, 제 여편네 바람피울까 겁내는 사람이라고요. 하긴 외국 나간 남편 몰래 탈선하는 여자들이 많긴 하지요."

 그날 밤 나는 그와 몹시 취하도록 마시다가 헤어졌다.

 "야, 윤○○. 나 외국에 가서 서울 시내 35평짜리 아파트 한 채 값을 벌어가지고 왔다. 그동안 잘 있었어?"

하고 내 앞에 나타날 줄 알았던 그가 해외에 나간 지 5개월도 채 안되어 사고로 숨졌다는 전갈을, 그의 아내로부터 받는 나는 가슴이 뻐근하도록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한번 잘 살아 보겠다고 부지런히 동분서주하던 그가 재수 없게 하필이면 해외의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죽었단 말인가.


 ♣



 누구라도 햇복숭아 서른 개를 먹을 동안의 기억 속에는 우리 인생의 지나온 말 못하는 가슴 아픈 일들이 빛바랜 일기장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가슴 아릿하게 저민 사랑 역시 유적(流謫)처럼 듯 남몰래 간직하고 있을 지 모른다. 프랑스 시인 폴 랭보가 이야기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젊은 시절의 고난은 인생을 가슴 찢어질 듯 고통스럽게 만들고, 깊은 몸살을 앓고 난 다음날의 어지러움처럼 고통이 상당 기간 가지만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무척 성숙해져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삶은 애매하고 모호한 만큼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결과를 터무니 없이 수월하게 이루어 보이곤 한다. 삶이란 잿빛 덩어리는 수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그 우연을 교묘하게 숨기고 단지 애매모호한 겉모양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사이가 뜸하게 되고 먼저 연락을 몇 번 해도 연결이 되지 않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불혹(不惑)을 지나고 지천명(知天命)하고 이순(耳順)해지면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이란 옷깃이 한번 스칠 때마다 그 인연에 의해 우리가 서로를 알게되며 그 인연을 건너가는 다리와 같은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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