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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악령(惡靈, Бесы )』

by 언덕에서 2009. 10. 16.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악령(惡靈, Бесы)』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Dostoevski Fedor Mikhailovich. 1821∼1881)의 장편소설로 <죄와 벌>로 시작되는 5대 장편소설의 제3작에 해당하며 1867년부터의 작자의 해외여행 동안에 탈고되어 1871∼1872년에 잡지 [러시아 뉴스]에 연재되었다. 도스토옙스키가 1869년 모스크바에서 비밀 혁명 조직의 내분으로 일어난 ‘네차예프 사건’에 충격을 받아 집필한 『악령』은 서구의 허무주의와 자유주의에 심취하여 혁명을 일으키고자 하는 당대 젊은이들을 비판하기 위한 정치 소설이다. ‘네차예프 사건’은 스물한 살의 청년 네차예프가 5인조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에 소속되었다가 탈퇴한 이바노프가 밀고할 것을 우려하여 동지들과 함께 이바노프를 살해한 후 호수의 구멍에 유기한 사건이다.
 작품의 제목인 ‘악령’은 성경 구절 중 돼지 떼에 씌인 ‘악령’에서 차용했다. 작품 속 비밀 혁명 모임인 ‘우리 편’은 물론 악행에 휘말리는 러시아 전체가 ‘악령’에 들린 ‘돼지 떼’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말년에 극우 보수주의자가 된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러시아에 유행하던 혁명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광기와 폭력, 악으로 점철된 그들의 행동과 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젊은 시절 허무주의와 사회주의에 심취해 페트라솁스키 모임에 출입하다 사형 선고까지 받은 이력이 있는 사상범 도스토옙스키 스스로를 향한 통렬한 자기반성의 산물이자 ‘참회록’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이 사건을 축으로 하여 악마적인 초인 니콜라이 스타브로긴, 자살 필연론자 키릴로프, 독자적인 사회주의적 미래상을 말하는 시가료프, 이상주의적인 리버럴리스트 스테판 베르호벤스키, 거기에 또다시 투르게네프를 희화화한 작가 카르마지노프 등 복잡한 인물이 등장한다.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은 다른 모든 인물들의 매개자로 나타난다. 그는 항상 욕망의 삼각형에서 가장 높은 꼭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욕망을 스타브로긴에게서 빌려온다. 그들은 진정으로 스타브로긴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스타브로긴에 대해 존경과 증오가 뒤섞인 감정을 느낀다. 또한 그들 모두가 스타브로긴의 무관심이라는 벽에 부딪쳐 좌절한다. 소설은 이들 사이의 사상적, 정신적 드라마로서 전개되는데, 특히 이지적인 허무와 추하고 괴이한 감각적 기쁨과의 상극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끊지 않으면 안 되는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가장 도스토옙스키적인 인물상으로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다분히 교훈적인 의도가 들어 있으나 뛰어난 예술성으로 작품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테판 트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키는 소도시의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그의 아들 표트르는 귀국하여 혁명운동을 계획한다.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한때 군인이었으나, 지금은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스타브로긴은 무(無)의 인물로써, 주변의 인물들에게 각기 다른 특정 사상을 주입함으로서 그들 각각을 일종의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리자와 약혼했으나, 그녀와의 관계는 복잡하다.

 표트르는 다양한 혁명가들과 함께 도시에서 비밀 결사를 조직한다. 그는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을 리더로 세우려 하지만,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그의 계획에 관심이 없다. 키릴로프는 '인신 사상'이란 특이한 사상을 가지는데, '자살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여, 스스로가 신의 위치에 선다.'라는 생각을 실천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도시는 점점 혼란에 빠져든다.

 표트르의 음모는 점점 더 과감해지며, 그는 도시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여러 사람들을 조종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는 그가 영향을 준 인물들을 서서히 파멸시키고 결국 스스로도 파멸하지만, 정작 니콜라이 본인은 특정한 사상을 직접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무'라는 단어가 가장 걸맞는 인물이다. 그 역시 자신의 내적 갈등과 죄책감 속에서 고통받는다. 결국, 니콜라이는 리자와의 약혼을 깨고, 그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반란은 실패로 끝나고, 표트르는 도망치며 도시를 떠난다.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자신의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스테판 트로피모비치는 자신의 이상이 실패한 것을 깨닫고, 혼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키릴로프도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하여 자살한다. 도시는 혁명의 여파로 황폐해지고, 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간다.

 

 주인공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형이상학적 관념이 피와 살로 형상화되어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인물이다. 막강한 영향력으로 등장인물 전체를 장악하지만, 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연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인물인 니콜라이는 선과 악, 고해와 악행이 교차하는 언행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극단 사이를 조율하며 작품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각각 지향점과 사상적 토대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긴장감을 더한다. 샤토프는 해방된 농노이자 한때 혁명을 꿈꾸던 대학생이었으나, 메시아의 도래를 꿈꾸는 슬라브주의자로 전향한다.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다 기나긴 복역과 유형 생활을 겪은 후 종교에 깊게 심취하고 보수주의자가 된 도스토옙스키 본인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스타브로긴은 소설 속 댄디즘 가운데에서도 가장 기괴하고 악마적인 화신이다. 그는 이 작품 속 모든 등장인물들의 욕망의 매개자로 자리잡고 있다. 그가 이처럼 모든 인물들의 모델이 될 수 있기 위해서 댄디적인 성향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욕망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무엇이든 간에 우월한 속성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그런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우월성을 가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관심이다. 작품 속에서 스타브로긴은 다른 모든 사람들, 즉 그를 모델로 삼아 모방하는 사람들의 욕망 너머에 존재하는 듯이 그려진다. 스타브로긴이 공통된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추종자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더욱 우월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 자신은 특별한 매개자를 두고 있지 않은 까닭에 그만이 모든 인물들의 욕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악령」의 인물들은 모두 노예들이다. 그들은 오직 스타브로긴의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이다. "그들은 그만을 위해 존재하며, 그에 의해서만 욕망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이 책을 쓸 당시 러시아는 과격 혁명파들이 소동을 일으켜 사회문제화 되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것을 탐탁지 않아 했는데 이 작품 『악령』은 이런 혁명파들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원래 사회주의자였고 사형선고까지 받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 사형이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형을 받았고, 유형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인간이 이성으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우익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는 니힐리즘이 사회주의 혁명의 근본적인 기반이라 생각했고 이것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여겼다. 원래 세계는 신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모든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인데 니힐리즘은 신을 부정함으로써 모든 것에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면 내가 살아야 할 의미도 없지 않겠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고 이것이 `악령`의 한 부분이 되었다. 

 

 ♣ 

 

 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놓아기르는 돼지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가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락으로 도망쳐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사람이 낫게 된 경위를 알려 주었다. ―제사(題詞) 중에서

 신약성서에 악령이 들린 돼지의 무리가 호수에 뛰어들어 익사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작품은 무신론 혁명사상을 그 `악령`으로 보고, 그것에 이끌린 사람들의 파멸을 묘사하려고 했다. 실재한 아나키스트 혁명가 소설에서는 표트르 베르호벤스키가 전향자 샤토프를 참살한 린치사건에서 취재하였다.

 돈은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절반이다.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오늘날의 우리처럼 돈에 대한 집착과 강박이 심했다. 그런데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등 지주 출신인 다른 작가들은 돈에 초연했다. 그런 점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매우 현대적이다. 사람과 사회를 읽는 데 천재였던 그가 돈의 의미도 정확하게 파악했다.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다른 절반은 우리가 알고 있듯 초월과 구원의 문제, 즉 종교성이다. 돈·치정·살인이 뒤얽혀있는 통속적인 줄거리로부터 삶과 행복의 의미를 건져 올렸다. 라스콜리니코프(‘죄와 벌’)나 드미트리(‘카라마조프…’)는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거나 살인범의 누명을 쓰지만 그로부터 구원이라는 한 줄기 빛을 만난다. 진흙 위에서 연꽃이 피는 것처럼 돈이라는 천박하고 치사한 토양에서 최고의 정신성을 탐구한다.

 

 

 

 

 

 

☞도스토옙스키 5대 장편 :  

     <죄와 벌>(1866)  https://yoont3.tistory.com/11300809

     <백치>(1868) https://yoont3.tistory.com/11300808

     <악령>(1871) https://yoont3.tistory.com/11299430

     <미성년>(1875) https://yoont3.tistory.com/11302770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1880) https://yoont3.tistory.com/11299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