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테르나크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러시아 소설가 파스테르나크(Boris Leonidovich Pasternak: 1890~1960)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러시아 자국에서 발표가 허용되지 않자 1957년 이탈리아에서 출판되었고, 다음 해인 1958년에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었다. 그 후 작가는 소련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었고 끝내는 노벨상을 사퇴해야 되는 궁지에 몰렸다. 이 소설은 시와 산문이 교차하는 지점에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해 온 작자의 숙원이 실현된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의사 유리 지바고로, 러시아혁명이 정치적.사회적인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 절박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개인적인 자유의 세계로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지식인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으며, 자연과의 교감, 영원한 러시아를 상징하는 여성 라라에 대한 그의 사랑, 시대의 편승자와 낙오자로 구분되는 수많은 작중인물의 운명을 통해 혁명과 사회주의의 현실에 대한 심각한 환멸, 종교적인 새로운 통일적 원리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 후 1965년 미국 MGM사에 의해 영화화되어 크게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리 지바고는 시베리아의 부유한 사업가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열 살 때 어머니마저 병사하자 지바고 가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고아가 된 지바고는 외삼촌의 주선으로 모스크바의 상류 지식인 가정인 화학자 그로메코 댁에 입양되었다. 그로메코 가에는 지바고와 나이가 비슷한 토냐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는 러시아에서 바로 혁명의 물결이 뒤덮던 시기였으며,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이윽고 1905년에는 모스크바 브레스니야 지역에서 무장 봉기까지 일어나는 위험한 사태로 발전되었다.
지바고는 의학을 공부한 뒤, 소꼽동무인 토냐와 결혼했다. 제1차대전이 일어나자 지바고는 곧 소집되어 군의 야전병원으로 배치되었다. 거기서 부상을 당한 지바고는 간호사로 일하던 라라를 만나게 된다.
라라는 소녀시절 지바고 일가를 파산하게 한 변호사 코마로프스키에게 능욕당한 후 계속해서 육체 관계를 가지며 그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였다. 그녀는 그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이후 그녀는 성실한 청년 파샤와 결혼했으나 전쟁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편을 찾고자 간호원으로 자원하여 일선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바고와 라라의 만남에서 둘은 숙명적인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느덧 전쟁은 혁명으로 바뀌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지바고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모스크바로 3년만에 돌아오지만, 혁명 직후의 모스크바는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는 모스크바의 생활에서 가망이 없음을 느끼고 가족과 함께 우랄의 시골 마을 바투이키노로 이사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안정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농사일에 힘을 쏟고 시를 쓰며 인생과 예술에 대한 의미를 갈구했던 지바고는 이웃 읍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라라와 재회하게 된다. 지바고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신의 조화와 자연스러운 언행을 잃지 않은 라라를 사랑하게 된다.
아내 모르게 라라와의 재회의 기쁨을 누리던 지바고는 어느 날 라라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빨치산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되었다. 거기서 강제로 의사 일을 맡은 그는 그들의 군의관으로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빨치산 부대와 함께 생활하면서 지바고는 백위군과 빨치산, 그리고 민중들 사이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배반과 복수의 잔인한 행위를 직접 목격한다. 그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탈출한다. 지바고는 바투이키노로 가서 폐허가 된 마을에 숨어 살았다.
라라는 그때까지 지바고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의 사랑은 한층 더 깊어졌다. 지바고의 가족들은 이미 유럽으로 떠나 있었다. 지바고와 라라의 샐활은 깊은 애정으로 맺어졌으나, 새 정권하에 그들의 사랑은 어울리지 않았다. 바투이키노의 숲 속으로 피신한 이들 두 사람 앞에 지난날 라라에게 큰 상처를 남겼던 코마로프스키가 나타났던 것이다. 지바고는 코마로프스키가 그들을 극동의 안전지대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하자 라라 모녀를 넘겨주고 만다. 결국 지바고와 라라는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라라와 헤어진 지바고는 걸어서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의 생활과 건강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 지바고는 모스크바에서 다른 여자, 옛날 하인이었던 사람의 딸과 결혼했다. 그는 직업적으로는 의사였으나 그의 정열을 온통 문필에 쏟아 시를 쓰고 번역하는 일로 궁핍한 생활을 꾸려나갔다. 가끔 유럽에서 토냐로부터 편지가 왔으나 지바고의 운명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여름이 거의 끝나갈 8월 하순, 그는 취직한 병원에 출근하려고 전차를 탔다. 허탈한 가슴을 안고 지나온 과거의 영상을 되새기면서... 그러다 그는 길바닥에 뛰어내려 쓰러진 채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모스크바에 들렀던 라라는 우연히 지바고의 상가(喪家)를 발견하고는 슬픔에 오열하고 만다.
1958년 파스테르나크는 “동시대의 서정시와 러시아 서사문학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했다.”라는 평가와 함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지만, 정치적인 위협에 시달리자 수상을 포기했다. 그러나 바로 전년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가 『닥터 지바고』를 두고 “사랑의 책”이라고 말한 것은, 이 소설이 정치적 해석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에 가닿는 이야기임을 시사한다. 이를 증명하듯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각색된 동명의 영화가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는 등, 오늘날에도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재해석되는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닥터 지바고』는 역사의 거센 풍랑에 휩쓸려 희롱당하는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의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10년 동안 이 작품을 위해 공들였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결국 포기해 버린 작품이기도 하다.
닥터 지바고의 일생은 소련의 인텔레겐차의 생애와 죽음의 이야기이며, 인텔리겐차가 혁명 속으로 들어가 혁명을 거치는 과정과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줄거리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우연에 의한 사건이 지나친 감도 있으나, 주인공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있다. 옛 소련의 인텔리겐차의 모습으로 지바고는 등장하지만 그는 국민의 고뇌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일반 대중들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혁명 속에서도 자신의 진리와 예술의 의미를 추구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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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지바고는 자신을 둘러싼 전쟁과 혁명을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 정신의 독립을 찾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생의 목적을 삶을 지키는 것에 두고 있지만, 혁명에 대한 소외감은 차츰 적대감으로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면서 혁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삶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파스테르나크는 지바고를 자신의 분신 같이 동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장편이고, 이전에는 시인으로 일관해 왔던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 작품에 나오는 시대 상황의 묘사와 현장감의 사실성은 소련 대륙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문체는 너무도 시적인 것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렇지만 파스테르나크가 1930년대 이후 스탈린주의에 대해 결정적으로 영향받은 것은, 혁명의 그늘과 인간적인 삶에 대한 어두움이었다. 작가는 이로써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더불어 자유에 대한 인식을 이 작품을 통해 던져 주려 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러시아 혁명이 정치적, 사회적인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 절박한 시대 상황 속에서 개인적인 자유의 세계를 영위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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