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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프루스트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by 언덕에서 2009. 10. 7.

 

 

프루스트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Proust Marcel.1871.7.10∼1922.11.8)의 대하소설로 1913∼1927년 간행되었다. 그는 먼저 1896년 창작집 <즐거움과 그 나날>을 내놓았고, 전통적인 소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장 상퇴유(Jean Santeuil)>(1952년 출간)를 썼다. 그러나 ‘20세기 초대의 문학적 사건(G. Picon)’이라는 반향을 일으키며 프루스트의 작가적 재능을 조명받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유명한 장편소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의해서였다.

 제1권 <스왕가(家) 쪽으로>(1913),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1918), 제3권 <게르망트 쪽>(1920), 제4권 <소돔과 고모라>(1922), 제5권 <사로잡힌 여자>(1923), 제6권 <달아나는 여자 알베르틴>(1925), 제7권 <다시 찾은 시간>(1927) 등 전 7부로 이루어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적으로 1877년경부터 1차 대전 직후인 1920년경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의 귀족과 부르주아의 사회를 심층적으로 그리고 있는 거대한 소설이다. 프루스트는 이 방대한 분량을 엄격한 구도하에 통제하고 하나의 건축물처럼 구축하여 간다.

 어느날 우연히 홍차에 적셔 먹은 마들렌느 과자가 불러일으킨 어린 시절의 회상은 잊혀진 과거를 재생시키고 현재화시킴으로써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단절을 메우고 지속적인 연결을 이룬다. 그리하여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는, 변모와 망각 속에서 죽어 가는 자아는 그 <뜻하지 않은 추억>의 힘에 의해 비로소 시간의 궤적에서 이탈하여 시간을 초월하고 통일성을 회복하게 된다.

 프루스트는 인간의 심층 의식 속에 파묻혀 있던 이러한 자아의 소생, 즉 무의지적인 기억만이 영원한 진실성을 갖는 것이라고 보았다. 시간을 거슬러 참된 자아의 얼굴을 찾아가는 끈질긴 작업을 통해서 소설은 이미 있는 것을 설명하거나 어떤 모랄을 제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과정 그 자체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과거를 재생시키려는 노력, 즉 일상적 자아의 껍질을 벗겨 낸 숨은 자아의 추적과 현상 속에 가려진 진실의 추구는 바로 쓰는 행위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그 결과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인생, 따라서 진실로 체험된 유일한 인생>을 프루스트는 문학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사회 현실의 재현이 소설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19세기 후반에 현실 속으로의 탐구라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소설공간이 열리게 되었다.

 대하소설의 전체 구성은 <스완의 집(家) 쪽으로>(1913)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1918, 1919년 공쿠르상 수상) <게르망트 쪽>(1920) <소돔과 고모라>(1922) <사로잡힌 여자>(1923) <달아나는 여자 알베르틴>(1925) <다시 찾은 시간>(1927)의 7편 16권(보급판)으로 되어 있다. <사로잡힌 여자> 이후는 작가의 사망 후에 간행되었다.

 1870년 보불전쟁에서 제1차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귀족, 사교계 부르주아의 풍속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 그 무렵 인기있던 예술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고, 동시에 화자인 ‘나’의 기억을 통해 탐색된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고 있다.

 이 작품은 파리의 부르주아 출신 문학청년인 ‘나(마르셀)’의 1인칭 고백형식으로 쓰인 ‘시간’의 방대한 파노라마이다. 제3공화정 시대의 귀족ㆍ부르주아의 풍속사(風俗史)인 동시에, ‘화자’의 기억을 통해 탐색된 인간의 심층심리학책이기도 하다.

 이 한 편의 작품은 현 세기에 있어서 시에서의 발레리의 업적에 필적한다. 전 7편 16책으로 된 이 작품은 부르조아 가정의 외아들이 사교계에 출입하면서 그 동안 사랑과 인간과 자아를 응시하며, 인생의 헛됨과 절망을 느끼나 최후에는 이 절망의 심연에서부터 기억의 정화와 창조에 의해 열린 새로운 세계에의 희열과 구원을 발견해 내는 것을 그린 섬세 미묘한 대심리소설이다.

 

영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Time Regained> , 1999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작품은 모두 7편으로 구성되었는데, 파리의 부르주아 출신으로 문학청년인 ‘나(마르셀)’가 회상하면서 쓰는 1인칭 고백 형식의 글이다. ‘나’의 행복했던 유년시절, 사교계 생활, 연애 경험 등을 기억에 의해 재구성한 것으로, 복잡하게 얽힌 테마를 긴밀하게 결부시켜 잔혹한 시간의 흐름에 퇴화되어 가는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 그리고 그 주위 환경을 그려내고 있다.)

 유년시절 ‘나’는 휴가를 보낸 콩브레 마을의 부르주아 집안인 스왕 가(家)와 중세 이래 명문귀족인 게르망트 가(家)로 향하는 길목에서 언제나 양쪽 집안으로 향하는 길을 동경했다.

 (이 작품은 이 두 세계가 세기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교체하고 융합해 가는 것을 축으로 해 전개되고 있다.)

 '나’는 스왕 가의 딸 질베르트에게 연정을 품었으나 실패하고, 다시 노르망디 해변에서 알베르틴을 만났다. ‘나’와 그녀는 동거생활을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질투의 어두운 그림자를 남겨 준 채 죽어버렸다.

 '나’는 게르망트 가족인 생루와도 친분을 맺으며, 사교계 생활에도 적응하는 등 갖가지 행복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치피 ‘시간’이 갖는 파괴력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것이며, 인생은 결국 ‘잃어버린 시간’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절망에 빠진 ‘나’는 게르망트 가의 파티에서 일찍이 그처럼 찬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늙어버린 모습을 대하자 인간 존재의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나 생루와 질베르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나’는 유년시절 갈망했던 두 길이 하나로 합치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 ‘나’의 내부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지나간 시간을 찾아내게 되며, ‘내’가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고 항상 하고 싶었던 일, 글을 쓰게 된다.

 

작품 속 등장인물과관계도

 

 

 감각ㆍ기억을 통해 환기되는 심상과 잠재의식의 영역에까지 파 내려가서야 발견되는 심상을 묘사한 이 작품은 종래의 소설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그러한 개념을 수정하는 혁신적 문학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라불레, 몽테뉴, 데카르트 이래의 프랑스 모럴리스트의 전통이 강력히 그리고 뿌리깊게 흐르고 있다. 문체는 극히 난해한데 그것이 독자적인 섬세 미묘한 내용과 흔연히 일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그 복잡다기한 구조 때문에, 고딕양식의 대성당에 비유되기도 하고, 교향악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주제는 뛰어난 지성과 애처로울 만큼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화자 마르셀의 절대적 행복을 추구하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행복한 유년시절, 사교계 생활, 연애경험 등을 기억에 의해 재구성한 것으로, 복잡하게 얽힌 테마를 긴밀하게 결부시키면서, 잔혹한 시간의 흐름에 풍화되어가는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사회를 그려낸 하나의 커다란 그림 두루마리이다. 어린 시절, 샤를 수앙의 딸 질베르트에게 품었던 동경, 질투의 어두운 그림자에 뒤덮인 알베르틴과의 사랑, 생 루와의 우정, 게르망트 공작가(家)에 상징되는 사교계에서의 성공 등, 화자는 온갖 형태로 그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차피 ‘시간’이 갖는 파괴력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것이며, 인생은 결국 ‘잃어버린 시간’에 불과하다. 프루스트는 모든 것을 서서히 좀먹고 파괴해가는 ‘시간’의 힘을 뿌리칠 수 있는 무엇인가 절대적인 것을 갈망한다.

 

 

 작품의 끝 부분에서, 화자는 게르망트가의 파티에 참석하여, 일찍이 자기가 그처럼 찬미하였던 사람들의 늙은 모습을 대하자, 인간 존재의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때 연달아 그의 속에 되살아나는 ‘무의지적 기억(감각 속에 남아 있던 기억)’의 힘이 지나간 시간을 다시금 찾아내게 하며, 예술작품에 그것을 정착시킴으로써 자기가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과거는 풍화하여 잊혀져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에 침전하여 사소한 감각적 경험을 계기로 되살아남을 지적하고, 예술은 그러한 초시간적 감각을 고정시킴으로써 영원에 접촉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프루스트는 이 테마를 1870년(프랑스-프로이센전쟁)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 이른바 ‘벨 에포크’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전개한다. 거기에는 사교계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를 움직인 여러 가지 사건(드레퓌스 사건 등)이나, 그 무렵 인기가 있던 예술작품이 정밀히 분석되고 묘사되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프랑스의 한 시대의 연대기가 되기도 한다. 특이한 문체, 잔인할 만큼 정밀한 관찰 안목, 거의 병적이라고도 할 만큼 집요하고 정확한 심리분석, 그러한 특징을 가진 이 작품은 J.조이스, F.카프카의 작품과 더불어 현대문학에 새로운 길을 개척한 20세기 최고 최대의 소설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