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100편 감상101

짧아서 더 슬펐던 아버지의 두 번 웃음 / 구효서 짧아서 더 슬펐던 아버지의 두 번 웃음 구효서(1958 ~ ) 어딘가에 쓴 적이 있다. 아버지와 평생 나눈 대화를 원고지에 적는다면 다섯 장이 아닐 거라고. 아버지는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근엄한 것과는 달랐다. 삶 자체가 아버지에겐 견디는 거였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는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논과 밭의 땡볕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 산과 들에 사는 나무와 바위처럼 아버지에겐 표정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도 평생에 두 번 정도는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첫 기억은 구봉서 배삼룡의 ‘웃으면 복이와요’를 보던 중이었다. 참고 있던 웃음을 당신도 모르게 놓쳐버렸던 것이다. 킥, 하고 새어나온 웃음 때문에 아버지는 여간 당황하지 않았다. 식구들도 사색이 되었다. 0.5초도 지속되지 못한 아버지의 짧은 웃음.. 2010. 11. 11.
딸깍발이 / 이희승 딸깍발이 이희승 (1896 ~ 1989)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 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요새 청년들은 아마 그런 광경을 못 구경하였을 것이니, 좀 상상하기에 곤란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 시대 일인들이 '게다'를 끌고 콘크리트 길바닥을 걸어다니던 꼴을 기억하고 있다면 '딸깍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산골 샌님이 마른 날 나막신 소리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얘깃거리가 될 것도 없다. 그 소리와 아울러 그 모양이 퍽 초라하고 궁상이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인생으로서 한 고비가 겨.. 2010. 11. 9.
죽은 시인의 사회 / 최인호 죽은 시인의 사회 최인호 (1945 ~ ) K형, 나는 후배작가 중에서 K형을 눈여겨보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비록 평소에 작가들과 어울리지 않아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K형의 작품만은 일부러 찾아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K형의 작품 속에는 독특한 재능 같은 것이 번뜩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나는 질투심을 느낄 수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만나게 되기를 고대해 왔었습니다. 마치 74세의 노인 괴테가 보헤미아의 온천지대에서 19세의 소녀 울리케 폰 레베초프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해 구혼까지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괴테가 울리케에게 매혹 당한 것은 애욕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그 눈부신 젊음의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울리케와 같은 싱싱한 생명력을 가진 젊은 작가를.. 2010. 11. 4.
가난한 날의 행복 /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 김소운(1907 ~ 1981) 먹을 만큼 살게 되면 지난날의 가난을 잊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가난은 결코 환영할 것이 못 되니,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고 어려웠던 생활에도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회상이 있다. 여기에 적는 세 쌍의 가난한 부부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옛날이야기지만, 내게 언제나 새로운 감동(感動)을 안겨다 주는 실화들이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 부부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남편이 직장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反對)였다. 남편은 실직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했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 2010. 11. 2.
바둑이와 나 / 최순우 바둑이와 나 최순우(1916~ 1984) 6·25 사변이 일어난 이듬해 3월 서울이 다시 수복되자 비행기 편에 겨우 자리 하나를 얻어 단신으로 서울에 들어온 것은 비바람이 음산한 3월 29일 저녁때였다. 기약할 수 없는 스산한 마음을 안고 서울을 떠난 지 넉 달이 됐던 것이다. 멀리 포성이 으르렁대는 칠흑 같은 서울의 한밤을 어느 낯모르는 민가에서 지샌 나는 우선 전화戰禍 속에 남겨두고 간 박물관의 피해 조사에 온 하루 동안 여념이 없었다. 부산에 보낼 첫 보고서를 군용 비행기 편으로 써 보내고 난 그 다음날 오후 비로소 나는 마음의 여유를 얻어 경복궁 뒤뜰에 남겨두고 간 나의 사택을 방문하기로 했다. 평시와 다름없이 그대로 문을 꼭 닫아두고 떠났던 나의 서재, 그리고 독마다 담아놓고 간 싱그러운 보쌈김.. 2010. 10. 28.
청빈예찬 / 김진섭 청빈예찬 김진섭(1903 ~ ? ) 이는 또 무어라 할 궁상이 똑똑 흐르는 사상이뇨 하고, 독자 여러분은 크게 놀라실 지도 모른다. 확실히 사람이 이 황금만능의 천하에서 청빈을 예찬할 만큼 곤경에 빠져 있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이왕 부자가 못된 바에는 빈궁도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일이니, 사람이 청빈을 극구 예찬함은 우리들 선량한 빈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개개의 힘센 무기요, 또 위안이다. 혹은 부유라 하며, 혹은 빈곤하다 말하나, 대체 부유는 어디서 시작되는 것이며, 빈곤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이냐? 사람이 부자이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많이 가져야 되고 사람이 가난키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적게 가져야 되느냐? 그러나, 물론 이것을 아는 이는 없다. 보라! 이.. 2010. 10. 26.
돌아가는 배 / 김성우 돌아가는 배 김성우(1934 ~ ) 돌아가리라. 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출항의 항로를 따라 귀항하리라. 젊은 시절 수천 개의 돛대를 세우고 배를 띄운 그 항구에 늙어 구명보트에 구조되어 남몰래 닿더라도 귀향하리라. 어릴 때 황홀하게 바라보던 만선滿船의 귀선, 색색의 깃발을 날리며 꽹과리를 두들겨대던 그 칭칭이소리 없이 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빈 배에 내 생애의 그림자를 달빛처럼 싣고 돌아가리라. 섬의 선창가에서 소꿉놀이하며 띄워 보낸 오동나무 종이 돛배의 남실남실한 걸음으로도 사해四海를 좋이 한 바퀴 돌았을 세월이다. 나는 그 종이 돛배처럼 그 선창에 가 닿을 것이다. 섬을 떠나올 때, 선창과 떠나는 배에서 서로 맞잡은 오색 테이프가 한 가닥씩 끊기는 아픔이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든지 늘어지는.. 2010. 10. 21.
길 / 김기림 길 김기림(1908 ~ ? )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젓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이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덕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 2010. 10. 19.
귀향, 화해 그리고 새 출발을 위하여 / 정운영 귀향, 화해 그리고 새 출발을 위하여 정운영(1944 ~ 2005) 추석은 귀향이다. 그러나 그 귀향이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고기는 옛 못을 생각한다(覇鳥戀舊林 池魚思故淵)"는 도잠陶潛의 감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또한 그것은 "흥청한 나룻배에 올라 고향으로 간다 / 갈 곳은 붉은 노을에 잠을 깨었고"라는 스테판 게오르게(Stefan George)류의 오만한 「귀향」으로 나타나서도 안 된다. 고향은 언제나 우리에게 영원한 '힘의 샘'이기 때문이다. 어디엔가 돌아갈 거처가 있다는 사실은 분주한 문명에 찌든 도회인들에게 분명히 넓고 깊은 위안이 된다. 고향은 언제나 그 넉넉한 가슴으로 우리를 맞으면서도 구태여 그 대가를 기다리지 않기에, 아파트의 면적이나 승용차의 배기량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도시의 각.. 2010. 10. 15.
무소유 / 법정 무소유 법정(1932 ~ 2010)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크리팔라니가 엮은 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地上)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 2010. 10. 12.
이런 남자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 신달자 이런 남자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신달자 (1943 ~ ) 남자 친구 하나쯤 갖고 싶다. 여자 친구보다는 이성의 분위기가 풍기면서 그러나 애인보다는 단순한 감정이 유지되는 남자 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여자 친구보다는 용모에도 조금은 긴장감을 느끼고 애인보다는 자유로운 거리감을 둘 수 있는 남자 친구가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너무 자주는 말고 가끔은 내게 전화를 해서 건강도 묻고 가족의 안부를 물어주며 혹간은 너는 아직도 아름답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남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가 월급 외의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를 떠올려 무얼 사줄까 물어 준다면 더욱 기쁠것 같다. 날씨의 변화에도 민감해서 비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 문득 거리를 걷다가 공중전화에 들어가 내게 전화해 주는 관심이.. 2010. 10. 9.
짝 잃은 거위를 곡(哭)하노라 / 오상순 짝 잃은 거위를 곡(哭)하노라 오상순(1894 ~ 1963) 내 일찍이 고독의 몸으로서 적막과 무료의 소견법(消遣法)으로 거위 한 쌍을 구하여 자식 삼아 정원에 놓아기르기 십 개 성상(十個星霜)이거니 올 여름에 천만 뜻밖에도 우연히 맹견의 습격을 받아 한 마리가 비명에 가고, 한 마리가 잔존하여 극도의 고독과 회의와 비통한 나머지 음식과 수면을 거의 전폐하고 비 내리는 날, 달 밝은 밤에 여윈 몸 넋 빠진 모양으로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동무 찾아 목메어 슬피 우는 단장곡(斷腸曲)은 차마 듣지 못할러라. 죽은 동무 부르는 제 소리의 메아리인 줄은 알지 못하고 찾는 동무의 소린 줄만 알고 홀연 긴장한 모양으로 조심스럽게 소리 울려오는 쪽으로 천방지축 기뚱거리며 달려가다가는 적적(寂寂) 무문(無聞).. 2010.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