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100편 감상101 새지 않은 밤 / 이문열 새지 않은 밤 이문열(1948~ ) 이것은 오래전 내가 서울서 겪은 영락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무렵 나는 이것저것 모든 것으로부터 쫓겨 작은 가방 하나 만을 들고 아스팔트 위를 헤매던 방랑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날이 저물어 올 때쯤에는 나는 드디어 아무 데도 갈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원래 그 거리에는 친구들도 있고 인척도 더러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그들이 모두 머리를 흔들 만큼 신세를 진 후였던 것입니다. 나는 별수없이 그때만 해도 그 거리 어디에나 흔하던 무허가 여인숙을 찾아들었습니다. 독방이 300원, 합숙이 200원. 그런데도 제 주머니에 남은 것은 고작 500원뿐이었습니다. 내가 가방 속에 든 일거리를 그 밤 안으로 끝낸다 하더라도, 그것을 돈과 바꾸기 위해서는 최대한 가진 돈을 아껴야 하.. 2010. 8. 20. 탈고 안 될 전설 / 유주현 탈고 안 될 전설 유주현(1921 ~ 1982) 벌써 여러 해 전의 이야기다. 도회 생활에 심신이 피로하여 여름 한 달을 향리에 가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그 때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 나의 생애를 두고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며, 필시 그들은 내 메말라 가는 서정에다 활력의 물을 주는 역할을 내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해 줄 줄로 안다. 향리 노원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 한철에는 찾아오는 대처 사람들이 선경에 비길 만큼, 그 풍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 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 밭둑에는 높직한 원두막을 지어 놓았던 것.. 2010. 8. 18. 산촌여정(山村餘情) / 이상(李箱) 산촌여정(山村餘情) 이상(李箱 : 1910 ~ 1937) 1 향기로운 MJB의 미각을 잊어버린 지도 이십여일이나 됩니다. 이곳에는 신문도 잘 아니오고 체전부는 이따금 하도롱빛 소식을 가져옵니다. 거기는 누에고치와 옥수수의 사연이 적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일가 때문에 수심이 생겼나봅니다. 나도 도회에 남기고 온 일이 걱정이 됩니다. 건너편 팔봉산에는 노루와 멧도야지가 있답니다. 그리고 기우제 지내던 개골창까지 내려와서 가재를 잡아먹는 곰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동물원에서밖에 .. 2010. 8. 13. 장기려 박사 / 김규태 장기려 박사 김규태(1934 ~ )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4개월 만인 1950년 10월 19일, 유엔군과 국군은 평양을 탈환했다. 당시 김일성의과대학 의사였던 장 박사는 대학병원과 야전병원을 오가며 부상자 진료에 밤낮이 없었다. 그 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대전환, 국군은 평양을 철수하게 된다. 이 때 장기려박사는 남으로 가기 위해 환자용 버스에 태워졌다. 부모와 부인, 그리고 5남매를 두고 차남만 데리고 떠났다. 이 순간이 45년간의 긴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족을 만난다는 일념으로 부산에서 피란생활이 시작되었다. 영도에서 천막을 치고 무료 진료소를 열었다. 절.. 2010. 8. 11. 가로수 / 신지식 가로수 신지식(1930 ~ ) 내가 다니는 거리거리에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눈이 트고 잎이 나고 더러는 꽃도 피고, 그리고 잎이 지면 멀쟎아 또 눈꽃이 피는 가로수……. 나는 그 아름다운 변화 앞에 놀라는 기쁨을 버릴 수가 없다. 문득 놀라 바라보는 그 한 동안, 모든 괴로움, 모든 미워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나는 어느 새 가장 선량한 가람이 되어 세상을 볼 수 있다. 맨 처음으로 거리에 나무를 심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생각건대, 그는 참으로 멋진 사람이었으리라. 오늘, 나로 하여금 이 기쁨을 누리게 한 그에게 나는 깊은 감사를 드려 마지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의 따렌(大連), 긴장과 살벌이란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험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여학교를 다녔다.. 2010. 8. 4. 이전 1 ···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