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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00편 감상10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창녀촌의 노랑머리 1984년 8월 8일 대전에서 신영복(1941 ~ ) 징역을 오래 살다보면 출소한지 얼마 안 되어 또 들어오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또 들어와 볼낯없어하는 친구를 만나도 나는 그를 나무라거나 속으로라도 경멸할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만기가 되어 출소하는 친구와 악수를 나눌 때도“이젠 범죄하지 말고 참되게 살아라”는, 교도소에서 가장 흔한 인사말 한 마디도 저는 지금껏 입에 올린 적이 업습니다. 그것은 그가 부딪쳐야 했고 또 부딪쳐야 할 혹독한 처지를 감히 상상하기 조차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까닭은‘도둑질해서라도 먹고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의‘생각’은 일단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데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 2010. 9. 30.
나무 / 이양하 나무 이양하 (1904 ~ 1963)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탓하지 아니한다.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과 불만족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을 안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움쭉 않는 한여름 .. 2010. 9. 28.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1934 ~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잎 한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2010. 9. 23.
노란 손수건 / 오천석 노란 손수건 오천석1(1901 ~ 1987) 남쪽으로 가는 그 버스 정류소는 언제나 붐비었다. 생기찬 모습의 젊은 남녀 세 쌍이 까불거리며 샌드위치와 포도주를 넣은 주머니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플로리다 주에서도 이름 높은 포트 라우더데일이라는 해변으로 가는 버스였다. 승객이 모두 오르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황금빛 사장과 잘게 부서져 오는 하얀 파도를 향하여. 차창 밖으로 추위 속에 움츠러든 회색의 뉴욕 시가가 뒤로 미끄러져 흘러갔다. 세 쌍의 남녀들은 알지 못할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흥분 때문에 계속 웃고 떠들어 댔다. 그러나 그들도 뉴저지 주를 지나갈 무렵쯤 되어서는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회복하여 조용해져 가고 있었다. 그들의 앞자리에는 몸에 잘 맞지 않는 허술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묵묵.. 2010. 9. 21.
김수환 추기경님을 보내며 / 박완서 김수환 추기경님을 보내며 박완서(1931 ~ 2011 ) 지난해 가을이었다.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인 이해인 수녀님을 문병 갔다가 같은 병동에 추기경님이 계시다는 걸 듣고 가 뵙고 싶어 가슴이 다 울렁거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환이지만 위중하여 문병객을 사양한다는 건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수녀님 '빽'이면 혹시 뵐 수 있을까 했는데, 먼저 가 뵙고 온 수녀님이 오히려 말리셨다. 편히 주무시는 시간이 많은데 의식이 있으실 때는 간호하는 수녀님들이나 문병 오는 가까운 분들에게 미안해하시고 감사를 표하고 싶어 애쓰신다는 말을 들었다. 병환 중에도 남을 배려하기 얼마나 힘드실까. 이승에서 마지막 안식을 방해하지 않는 것도 추기경님을 위하는 길인 것 같아 뵙기를 단념했다. 선종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2010. 9. 16.
얼굴 / 조경희 얼굴 조경희(1918 ~ 2005) 얼굴은 가지각색이다. 둥근 얼굴, 긴 얼굴, 까만 얼굴, 하얀 얼굴, 누런 얼굴, 다 각각 다르다. 얼굴은 각자 바탕과 색깔이 다를 뿐만 아니라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눈, 코, 입, 귀, 어느 한 부분이나 똑 같지가 않다. 이렇게 똑 같지 않은 얼굴 중에서 종합적으로 잘 생긴 얼굴 못 생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것과, 생김새는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인상이 좋고 나쁜 것이 구별된다. 첫인상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지만 자주 만날수록 그 우락부락한 모습이 차차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뜻 보아서 첫눈에는 들었는데 두 번 세 번 볼수록 싫어지는 얼굴이 있다. 지금도 내 생김생김이나 인상이 나쁘다고 여기고 있다. 나는 일찍이 얼굴이 예쁘지 못해서 비관까지 한 적이 있.. 2010. 9. 14.
거지 여인 / 류시화 거지 여인 류시화(1958 ~ ) 북인도 바라나시에 머물 때였다. 아침이면 나는 갠지스 강변의 메인 가트에 가서 앉아 있곤 했다. 그곳에는 나말고도 한 인도 여인이 앉아 있었다. 사십대 중반의 그 여인은 더러운 붕대로 두 손을 감고, 늘 새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메인 가트는 성지 바라나시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인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아침마다 북새통을 이루었다. 또한 온갖 종류의 장사꾼들과 호객꾼, 걸인과 성자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바로 그곳에 날마다 한 거지 여인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누구와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녀 역시 색 바랜 낡은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스스로 구걸을 하거나 하다못해 짜이(인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 2010. 9. 9.
완물상지(玩物喪志) / 이윤기 완물상지(玩物喪志) 이윤기(1947 ~ 2010)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수집하고는 하지요? 내게도 그런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표, 성냥, 수석, 도자기, 벼루 같은 걸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중에서 수석 수집이 취미인 친구는, 강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떤 수석 한 점을 1천만 원에 팔았다고 술을 사기도 했습니다. 수집가들에게 포위당하면, 나도 평생 뭘 하나 수집해 보아야겠다는 어줍지 못한 생각을 합니다만, 곧 포기해 버리고는 하지요.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만 내게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지요.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뭘 수집하는 걸 좋아하기는 마찬가지군요. 미국의 한국인 중에는 영화 포스터를 수집하는 사람, 카메라를 수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한국인이 숟가락을 수집하고.. 2010. 9. 7.
방망이 깎던 노인 /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윤오영(1907 ~ 1976)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 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2010. 9. 2.
나의 사랑하는 생활 / 피천득 나의 사랑하는 생활 피천득(1910 ~ 2007) 나는 우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지금 돈으로 한 오만 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면은 그 돈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낡은 몸을 입원시키고 싶다. 나는 깨끗한 침대에 누웠다가 하루에 한 두번씩 더웁고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 제 생일날 사주지 못한 빌로도 바지를 사주고, 아내에게는 비하이브 털실 한 폰드 반을 사주고 싶다. 그리고 내 것으로 점잖고 산뜻한 넥타이를 몇 개 사고 싶다. 돈이 없어서 적조하여진 친구들을 우리 집에 청해오고 싶다. 아내는 신이 나서 도마질을 할 것이다. 나는 오만 원, 아니 십만 원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는 생활을 가장 사랑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기운을 다 팔아버리지 않.. 2010. 8. 31.
별은 빛나건만 / 신경숙 별은 빛나건만 신경숙 (1963 ~ ) 이모네 집은 버스가 하루에 한 번 다녔던 우리집에서도 더 들어가야 하는 골짝에 있었다. 이모네엔 나보다 열 살 위인 연님이 언니가 있다. 이모는 내가 가면 한없이 선량하게 웃으시며 보리쌀 위에 쌀을 얹어서 밥을 안치셨다. 무슨 일인가 늘 바쁜 이모는 거기까지만 했다. 불을 때고 밥뜸을 들이고 상을 보아 밥을 푸는 건 연님이 언니였다. 밥상에 앉아서 보면 내 밥만 쌀밥이었고 일곱이나 되었던 이종오빠들은 물론 이모 이모부 연님이 언니 것은 새까만 보리밥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내 몫의 그 쌀밥이 눈 위에 찍혀 있던 발자국과 함께 생각나는 것은. 연님이 언니는 여중을 졸업한 후 줄곧 집에서 이모를 돕고 지냈다. 이모네는 기와지붕의 안채와 초가지붕의 아래채로 이루어져 있었.. 2010. 8. 26.
어머님께 / 김태길 어머님께 김태길(1920~2009) 간밤 꿈속에서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저희들 사는 모습이 궁금하셔서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꿈속에서 못다 올린 말씀 이제 글월로 보충하고자 합니다. 어머니의 막내아들인 저도 이제 80대 중반을 넘어섰습니다. 하오나 건강은 비교적 좋은 편이어서 이런 저런 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무실이 두 곳에 있어서, 오전과 오후로 갈라서 나갑니다. 어머니의 막내며느리인 도식 어미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무릎 관절이 부실해서 걸음걸이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운동을 충분히 하기 어려우므로 몸이 점점 약해지고 기운이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지난 해 여름에 어미는 가사 노동을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말을 어렵게 입 밖에 냈습니다. 가사 노동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세끼.. 2010.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