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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00편 감상

이런 남자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 신달자

by 언덕에서 2010. 10. 9.

 

 

 

이런 남자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신달자 (1943 ~  )

 

 

 

 

 

남자 친구 하나쯤 갖고 싶다. 여자 친구보다는 이성의 분위기가 풍기면서 그러나 애인보다는 단순한 감정이 유지되는 남자 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여자 친구보다는 용모에도 조금은 긴장감을 느끼고 애인보다는 자유로운 거리감을 둘 수 있는 남자 친구가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너무 자주는 말고 가끔은 내게 전화를 해서 건강도 묻고 가족의 안부를 물어주며 혹간은 너는 아직도 아름답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남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가 월급 외의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를 떠올려 무얼 사줄까 물어 준다면 더욱 기쁠것 같다. 날씨의 변화에도 민감해서 비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 문득 거리를 걷다가 공중전화에 들어가 내게 전화해 주는 관심이 있는 남자. 그런 남자 친구라면 내게 아직도 친구가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 그런 남자 친구 하나 갖고 싶다.

 내가 몹시도 쓸쓸한 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갈등 없이 "나 지금 외로워"라고 말해도 별 다른 비약 없이 순수하게 내 감정을 이해하고 적당한 유머로 날 위로해 주는 남자 친구가 있다면... 그래, 그런 남자 친구가 있다면,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날 시간이 텅 빌 때 차나 하자고 일방적인 시간 때우기를 해도 그것을 우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비좁은 거리를 달려와 주는 남자 친구가 있다면, 제법 인생이 부유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자 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조금 먼 거리를 단둘이 드라이브하며 깊은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도 무리하게 꾹꾹 눌러야 할 그런 속수무책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맑은 우정의 남자친구, 음악을 얘기하고, 영화를 얘기하고 앞으로의 늙어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공감의 우정을 갖는 남자 친구. 그런 남자 친구가 있다면 장관이나 총장이 되는 친구보다 행복할 것이다. 좀더 욕심을 내자면, 애인은 아니지만 애인 비슷한 관심을 가져주는 남자 친구였으면 한다.

 환절기가 되면 비타민이라도 사와서 복용 방법까지 친절하게 일러줘 나를 감동시키는 남자친구, 살아가다가 어떨땐 국내건 해외건 비행기표라도 사서 예정없는 여행을 권하는 그런 남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가 한번쯤 "힘들지?" 하며 내 깊은 설움을 헤아려주는 배려가 있다면 그가 날 멀리해도 내가 평생 친구로 섬길 것이다.

 나이가 들었으므로 너무 용모를 따지지는 않아야겠지. 그러나 키가 좀 크고 강력한 의지력 뒤에 부드러운 미소가 있는 남자, 그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늘 상대를 더 의식하는 인격을 갖춘 남자 친구라면, 그런 남자 친구가 있다면 나이를 먹어 가더라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내가 해야할 자질 구레한 일들을 기쁘게 심부름해줄 수 있는 남자 친구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가령, 자동차 수리라든가 내가 가기싫은 구청이나 동사무소 같은곳을 대신 가준다면... 그러나 그런 일을 그도 싫어 한다면 그것은 별개의 것으로 둬도 좋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저 내마음 저 너머 어디쯤에 나의 남자 친구가 있다는 믿음과 상관 관계를 느끼도록 노력해 주는 일이다. 서로의 인생에 너무 깊게 밀착되어 있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서로의 인생밖에 머물러 있어도 곤란하다.

 좀더 지혜롭게 인간 관계를 조절해 가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비범한 인성으로 나를 실망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예의 바르고 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인품이야 말로 내가 친구로 어깨동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도 사고, 이번에 또 산다고 대구탕 값을 아까워해도 안될 일이다. 세번, 네번을 사고 당연하다고 여길때 나는 열번을 계속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자기가 맡은 일은 벼락이 쳐도 깔끔하게 해내는 전문성이 강한 남자, 그런 남자가 내 친구라면 좋을 것이다. 여자 친구는 너무 많아도 천박하게 보일 것 같다. 그렇다고 늘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신경 쓰인다. 분명히 우리는 친구이므로 서로를 편안하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 편안하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장점인가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생각하면 그저 기분이 좋은 사람, 인간적으로 신뢰성이 있으면서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남자, 그런 남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자, 그러나 그런 남자가 이 세상에 있겠는가? 만약 그런 남자가 있더라도 그런 일류 사내가 나에게와 줄 것인가... 하는 회의는 나를 더욱 쓸쓸하게 한다. 그리고 설령 그런 남자가 내게 친구로 와 준다고 할 때 내가 그를 수용할 능력이 있냐도 큰 문제다. 왜냐하면 좋은 친구를 갖는 것은 운이 아니라 노력이므로 게으른 나는 엄두도 못낼 일이 아닐까.

 

 

 


 

 

신달자 : 시인. 시집으로  시집으로 《봉헌문자》,《겨울축제》,《모순의 방》,《아가》, 산문집으로 《백치애인》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으며, 명지대에서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