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김기림(1908 ~ ? )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젓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이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덕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김기림 : 시인. 문학평론가. 영문핟자. 호는 편석촌. 함북 성진 출생. 일본대학 문학예술과 졸업. 조선일보 학예부장. 1933년 구인회 결성. 시집《기상도》(장문사, 1936) 《태양의 풍속》《바다와 나비》《새노래》, 이론서《문학개론》, 시론집《시론 》,수필집《바다와 육체》, 번역서《과학개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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