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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00편 감상

어머님께 / 김태길

by 언덕에서 2010. 8. 24.

 

 

어머님께 

 

                                                                                                                김태길(1920~2009)

 

 

 

 

 

                                                                                                                 

간밤 꿈속에서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저희들 사는 모습이 궁금하셔서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꿈속에서 못다 올린 말씀 이제 글월로 보충하고자 합니다.

  어머니의 막내아들인 저도 이제 80대 중반을 넘어섰습니다. 하오나 건강은 비교적 좋은 편이어서 이런 저런 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무실이 두 곳에 있어서, 오전과 오후로 갈라서 나갑니다.

  어머니의 막내며느리인 도식 어미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무릎 관절이 부실해서 걸음걸이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운동을 충분히 하기 어려우므로 몸이 점점 약해지고 기운이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지난 해 여름에 어미는 가사 노동을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말을 어렵게 입 밖에 냈습니다. 가사 노동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세끼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한 가지 의견을 냈습니다. 아침식사는 식빵과 우유 등으로 간단히 때우고, 점심과 저녁식사는 가까운 음식점에 가서 사먹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제가 자동차 운전을 못하므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범위 내의 음식점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미가 보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처지이므로 그 범위는 아주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대로 예닐곱 군데 음식점을 발견하고 그곳과 인연을 맺기로 했습니다.

  한동안은 견딜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동안’이 3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만든 음식은 아무리 되풀이해서 먹어도 싫증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매식(買食)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위장이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입니다. 입이 까다롭기는 제가 어미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도 판명이 났습니다.

  어미는 다시 제 손으로 식사 준비를 하겠다고 비장한 결의를 밝혔습니다. 주부라는 것은 밥을 제 손으로 지을 신성한 의무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매식을 하자는 절충안이었습니다. 이 절충안을 따라서 한 달포 정도 또 세월이 지 나갔을 무렵에 겨울이 닥쳐왔습니다. 날씨가 추울 때는 빨리빨리 걸어야 추위가 덜한 법인데, 어미는 빨리 걸을 수 없으므로 외출이 부담스럽다며 움츠리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집에서 끓여 먹고 한 끼 때우는 편이 낫다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또 하나의 절충안을 내놓았습니다. 주방에서 하는 일 가운데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어미가 맡고, 그 밖의 단순 노동은 제가 맡는다는 분업의 원칙을 따르자는 절충안 말입니다. 제가 어미의 도우미, 그러니까 조수 노릇을 하겠다는 이 안에 대해서, 어미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명예교수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학술원의 회장 직까지 맡고 있는 남편을 어찌 손아랫사람 대접을 하겠느냐는 논리였습니다. 이에 저는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논리로 맞섰습니다. 요즈음 젊은 남편들은 앞치마까지 두르고 아내의 도우미 노릇을 한다는 사실 모르느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앞치마까지 두르지는 않기로 약속하고 저는 그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주방 도우미로서 제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깨끗이 빤 행주로 식탁을 닦는 그것입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행주에 상·중·하 세 가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서 식탁을 닦는 것은 중급(中級)만이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하급 행주라 해도, 옛날 농촌의 행주처럼 너덜너덜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는 주된 일은 조리대(調理臺)에 늘어놓은 준비된 음식 접시와 수저 등을 쟁반에 놓아서 식탁까지 운반하는 일과 식사가 끝난 뒤에 빈 그릇을 다시 쟁반에 모아서 싱크대 근처로 가져다놓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음식 그릇과 수저 등을 식탁에 늘어놓는 일도 제가 자진해서 맡았으나, 제가 해놓은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든다며, 그 부분은 면제시켜 주었습니다.

  주방일 가운데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이 설거지 아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설거지는 한 곳에 서서 하는 일이므로 보행이 불편한 어미도 할 수 있다며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하오나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바다 건너 미국 땅에 가서 박사 학위까지 받고 돌아온 하나뿐인 남편에게 그 따위 구질구질한 일은 시키지 않겠다는 어미의, 이 시대 마지막 현모양처의 표본인 어미의,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은 세상이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던 때와는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편리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우물에 가서 물을 퍼올릴 필요는 없으며, 꼭지만 틀면 찬물과 뜨신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청솔가지나 장작을 땔 필요도 없습니다. 전기나 가스로 음식도 만들고 난방도 합니다. 세탁기라는 것이 있어서 빨래거리를 넣고 스위치만 누르면 저 혼자서 일을 합니다. 설거지거리가 많을 경우에는 ‘식기세척기’라는 것을 사용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밖에도 편리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하오니 어머님, 아무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김태길(1920~2009): 철학자, 수필가, 서울대 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