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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라오서(老舍) 단편소설 『초승달(月牙兒)』

by 언덕에서 2020. 4. 16.

 

라오서(老舍) 단편소설 『초승달(月牙兒)』 

 

  

중국 소설가 라오서(老舍; 1899~1966)의 단편소설로 근대화 과정에서 중국의 하층민으로 살아간 한 여자가 나락의 끝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과정을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이문열 세계문학산책> 5권에서 이욱연 옮김으로 처음 소개되었으며, 2001년 [창비세계단편문학선] '중국'편에서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이라는 책에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이후 2019년 [어문학사]에서 출간한 <중국현대단편소설선2>에 다시 소개되었다.

 작품 속의 여주인공은 몸을 팔던 어머니의 삶을 따라가지 않으려 소학교를 다니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그녀도 결국 어머니처럼 되고 만다. 작가는 여자가 어쩔 수 없이 매음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서술하여 독자에게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라오서는 베이징의 만주기인(滿洲旗人) 출신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1916년 베이징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등 사범을 나와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1924년에는 런던 대학에서 동양학을 강의하며 문학을 연마하였고 1934년 칭다오(靑島)의 산둥(山東) 대학교수로 근무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다 1949년 귀국하여 문예계의 요직에 임하면서 '인민 예술가'라는 영예도 얻었지만 1966년 문화혁명 당시 반당 분자로 비판을 받았고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후 1978년 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내가 처음으로 초승달을 보았을 때, 한 길을 머금은 초승달은 무척이나 차가워 보였다. 7살짜리 여자아이인 나는 그렇게 조그만 집 문간에 기대앉아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그때 집안은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득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의 등에 업혀 아버지의 무덤가에 갔을 때도, 초승달은 소리 없이 차가운 빛을 발하며 하늘에 걸려 있었다. 그 후 남의 집 빨래를 해 주며 전당포에 물건을 저당 잡혀 간신히 살아가던 어머니는 새 아버지를 맞이했고, 새 아버지네 집에 들어가고 나서는 나도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소학교를 졸업하던 해, 새 아버지는 갑자기 떠나버렸고, 가난은 다시 반복되었다.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살기 위해서는 딸을 팔아야 한다고 했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나' 대신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다. 먹을 것이 없어 어지러워 쓰러지는 순간에도, 초승달은 하늘에 걸려 희미한 빛을 발하다가 어둠 속에 묻히곤 했다.

 그후 나는 식당 종업원이 됐다가 입에 풀칠을 할 수 없어 사창가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이후로 내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삶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 했다. 나는 이상적인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꿈은 금세 사라지고 현실의 삶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덕을 중시하는 새로운 관리의 정책에 따라 경찰의 단속이 있었고, 나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경찰에 잡혀갔다. 순화 교육을 거부하고 높은 관리의 얼굴에 침을 뱉은 나는, 위험분자로 분류되어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때 내 머리 위로 초승달이 어렸다.

 “여기서 나는 오랜 벗인 초승달을 보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보지 못했던가? 어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떠올렸다.

 

 

 

 

 

 

 이 작품 초승달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된다.

 ‘나는 또 초승달을 본다. 한기를 띤 희붐한 초승달을 본 게 몇 번인가. 지금과 같은 이런 초승달을. 조각달을 볼 때마다 늘 다른 모습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앉아서 초승달을 볼 때마다, 내 기억 속의 푸르른 구름에 걸려 있곤 한다. 잠들려는 꽃을 깨우려는 저녁 바람처럼 나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초승달‘은 무슨 의미일까? 그녀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소학교에서 공부할 때 하지만 그녀가 매춘에 임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다시 그녀의 주변에 등장한다. “내 마음속의 어려움을 어떤 형상을 빌려 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초승달일 것이다. 초승달은 의지할 데 없이 부유스름한 하늘에 걸려 희미한 빛을 내다가 금세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이 작품에서 ‘초승달’은 불행한 삶을 사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로서 그녀의 가련한 삶을 더 서글프게 만들고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 당시 중국 사회가 얼마나 여성이 혼자 살기 힘들었는지 이 소설을 보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고 결국 하층민 여성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몸을 파는 것뿐이다. 『초승달』은 근대화 과정에 있는 중국의 한 서민층 결손가정의 여자아이가 매춘부로 자라나고 결국, 감옥에서 끝을 보게 되는 어두운 이야기다. 

 

 

 

 현대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라오서는, 1937년 작품 <낙타 상자>로 일약 국제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 『초승달』은 한 여인의 살아온 과정을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소설이다.

 (전략) 『초승달』의 주인공이 사는 근대화 과정의 중국 사회는 겉으로는 제도적인 여성 교육이 있고 일거리도 주어진다. 하지만 교육은 여성이 독립된 생산 주체가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못하고 일거리도 불완전 취업의 형태로 그 급여로는 홀로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거기다가 부모의 보조도 바랄 길이 없는 주인공은 처음부터 예정된 길을 가듯 매음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그런 여성의 삶에 짐 지워진 불리한 조건들을 사회적 정치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사실적이면서도 담담한 필치는 주인공에 대한 연민도 비난도 싣고 있지 않으며 주인공이 그렇게 밀려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분석하거나 비판하는데도 별로 열의가 없다. 광란의 문화혁명 와중에서 홍위병들에게 끌려나갔던 작가가 며칠 만에 시체로 발견된 배경에는 그런 문화적 태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5권 206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