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콘래드 단편소설 『발전의 전초기지(Outpost of Progress)』
폴란드 출신 영국 소설가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 1857~1924)의 단편소설로 1896년에 발표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를 연결하는 이 실존주의 작가는 고립과 고독 속에서 파멸해가는 문명인을 그렸는데 암흑의 핵심을 예견케 하는 단편으로 비평가들의 시선을 끈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문명의 전초지><오지의 전초기지><진보의 전초기지>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작품 속에서 케이어츠와 카알리에라는 두 사나이는 어떤 회사에 고용되어 상아를 수집하도록 아프리카의 한 출장소에 배치된다. 거기에서 문명인인 그들의 와해가 급속도로 진행된다. 그들은 서구 문명과 단절되어 ‘아무런 도움도 없이 황야에 직면’하도록 내버려 진다. 그들은 이러한 고립과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준비도 없다. 이 단편은 서구사회에서 단절된 고립과 고독 속에서 문명인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콘래드가 콩고 여행 중에 얻은 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
작가는 열두 살에 고아가 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884년에는 일등항해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배를 타고 세계 여러 나라를 오가다 1886년 8월에 영국으로 귀화했다. 2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항해 경험을 살린 해양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대전 후에 그 실존주의적 인간관과 엄격한 정치 인식으로 대단한 시선을 끌어 오늘날에는 19세기와 20세기를 연결하는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는다.콘래드는 젊은 날 선원이었고 흔히 해양 작가로 알려져 있으나 모든 작품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암흑의 핵심><서구인의 안목><로드 짐>을 비롯해 <노스트로모><비밀정보원> 등이 있고 중단편도 볼 만한 것을 많이 남겼다.
『발전(Progress)의 전초기지(outpost)』라는 제목은 내용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 매우 아이러니하다. 이 작품은 해양소설은 아니지만, 바다를 잘 알고, 여러 대륙을 많이 다녀본 콘래드의 경험과 상상력의 결합으로 탄생한 소설이다. 과거 선진국들은 힘을 앞세워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불공정 거래를 일삼았다. 그런가 하면 낯선 나라로 파견된 자국인들도 그들이 만든 제국주의 이념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딸의 결혼지참금을 벌기 위해 전신국을 그만둔 케이어츠와 퇴직 군인인 카알리에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설치된 교역거래소에서 근무하게 된다. 둘은 토착민을 다스리고, 기지의 사업을 관장하는 임무를 띠고 파견되어 있다. 본국에서 보급품을 실은 배는 6개월에 한 번 온다. 무역소의 전임자는 열병으로 사망하였고 개화한 원주민 마콜라가 상아를 모으는 등의 무역소 실무를 맡아 처리하고 있다. 교역소 직원인 흑인 마콜라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소장과 부소장을 얕본다.
마콜라는 고용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주인행세를 한다. 이들 두 백인은 책을 읽고 자신의 옛이야기를 하며 무료하고 갑갑한 시간을 보낸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돌발적인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케이어츠와 카알리에는 권총을 갖고 있다.
문명사회에 살던 둘은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환경에 처하게 되자 서로 의지하면서 무척 친밀하게 지낸다. 하지만 단조롭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점차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인근 부족과의 갈등 때문에 물자 지원도 받지 못하고, 본국에서 온다던 보급선도 점점 늦어진다. 남은 건 쌀과 커피밖에 없는 상황이다. 둘은 괴롭고 고립된 생활을 하며 마음이 황폐해진다. 만약을 위해 비축해둔 설탕을 먹자는 카알리에의 요청을 케이어츠가 거절하면서 다툼이 일어난다.
케이어츠는 상대방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총도 없는 카알리에를 죽이는 총격 사건이 벌어진다. 막상 카알리에가 사망하자 케이어츠는 아연실색한다. 마콜라는 카알리에가 열병으로 죽었다면서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한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나 뒤늦게 도착한 보급선에서 내린 회장이 발견한 것은 자살한 케이어츠의 흉한 몰골이었다.
『발전의 전초기지』는 문명이 주는 안도감과 인간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공포감을 동시에 주는 양면적인 공간이다. 19세기 말 서구의 식민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뻗친 자본주의의 힘과 그것이 지니는 모순, 그리고 문명사회의 대표자인 백인의 허구를 묘사한다. 제목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백인의 오지 진출은 진보라는 명분을 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아 약탈의 거점을 확보하려는 것일 뿐이다. 후진국의 야만을 그들이 문명으로 걷어 주겠다는 시혜(施惠) 의식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실상은 통상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작가는 두 백인이 읽는 신문 기사를 통해서 그들의 허구에 찬 이념을 꼬집고 있다. 두 백인은 문명을 전한 최초의 사람이 된다고 자부하지만, 그 문명은 사실 허약하기 짝이 없다.
이 작품은 식민지 개척시대의 고립된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과 문명사회의 허구를 비판하고 있다. 소설에는 어리숙해 보이는 두 명의 백인과 개화된 원주민이 등장한다. 딸의 지참금을 벌기 위해 일을 그만둔 작고 뚱뚱한 케이어츠와 몸집과 키가 큰 퇴역 군인 칼리에, 그리고 똑똑한 원주민 마콜라이다.
두 사람은 오지의 원주민들을 관리하고 상아를 모으며 문명을 전파하라는 명목으로 전출을 부임 받았기에 자기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곳에서 업무를 총괄하며 실질적인 세력을 가진 사람은 교육받은 원주민 마콜라이다. 마콜라는 토인이지만 케이어츠와 카알리에 보다 훨씬 유능해 보인다.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며 어떨 때는 두 명의 백인보다 더 교활하고 똑똑한 모습을 보이며 또한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
현지인들이 아프리카 상아의 수집과 취득 과정을 주도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백인 둘은 유배나 다름없는 근무환경에 처한 무능하기 짝이 없다. ‘지구의 어두운 구석까지 빛과 신앙과 상거래를 가져가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싶었던 그들은 ‘몰골이나 성미가 차츰 변해가는 것’을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고 ‘야만인’이 되어간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뿐이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 이를테면 사랑, 미움, 믿음, 심지어는 의혹까지도 없앨 수 있지만, 우리가 삶에 집착하는 한 두려움만은 없앨 수가 없다’라는 두 사람의 절규는 사실상 모든 사람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식민시대는 지났지만, 이 작품 『발전의 전초기지』는 우리가 생각 없이 대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을 통해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자행되는 일들을 살펴보게 된다.
(전략)이 작품에 등장하는 케이어츠와 카알리에는 자신이 소속된 사회에서는 열패자로 분류될 인물들이다. 하지만 식민주의의 현란한 포장에 취해 개인의 능력과 집단의 힘을 혼동한 나머지 한편으로는 은혜라도 베푸는 자세로 짐승 같은 원주민들의 삶을 내려다본다.
그런데 그토록 믿고 의지해 온 문명세계와의 단절과 고립은 그런 그들의 의식을 비틀고 마침내는 뒤집어 엎고 만다. 쌓여가는 외로움과 무력감에 젖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어리석음과 무능뿐이다. 그런 그들에 비해 갈수록 영악해지는 고용인 마콜라나 음험하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교역소를 휩쓸고 지나가는 원주민 노예사냥꾼들은 섬뜩한 아이러니까지 풍긴다.
아마도 작가는 그러한 비틀기와 뒤집기를 통해 오직 힘의 논리로만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서구문명의 암흑상과 난맥상을 드러내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서로를 죽이고 스스로 죽고마는 작품의 결말은 서구문명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비관적인 예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6권 113~4쪽에서 인용)
'외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잭 런던 단편소설 『불을 피우기 위하여(To build a fire)』 (0) | 2020.04.20 |
---|---|
라오서(老舍) 단편소설 『초승달(月牙兒)』 (0) | 2020.04.16 |
프로스페스 메레메 단편소설 『마테오 팔코네(Mateo Falcone)』 (0) | 2020.04.09 |
안톤 체호프 단편소설 『약혼녀(Nevesta)』 (0) | 2020.04.06 |
나카지마 아스시 단편소설 『산월기(山月記)』 (0) | 2020.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