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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안톤 체호프 단편소설 『약혼녀(Nevesta)』

by 언덕에서 2020. 4. 6.

 

안톤 체호프 단편소설 『약혼녀(Nevesta)』

 

  

러시아 소설가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1860∼1904)의 단편소설로 1902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결혼식을 앞둔 처녀 나쟈가 지식인 청년 사샤의 충고를 듣고 파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 약혼녀는 삶의 방식을 혁명해야 한다는 만년의 체호프가 가졌던 사상을 주제로 담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이 작품 『약혼녀』를 그의 여러 명편들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친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간절히 바라는 지식인 청년 샤샤의 목소리와 그의 운명은 일찍이 러시아 문호 고골이 절규했던 인간적인 너무나 비참한 러시아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을 쓴 1902 체호프는 마흔두 살의 나이로 모스크바예술단의 여배우 올리가 크니페르와 처음으로 결혼하였다. 두 해 후인 1904년에 체호프는 병세가 악화하여 독일의 요양지 바덴베이에르로 옮겼는데, 이곳에 온 지 한 달 후인 715일 어느 숙사에서 러시아의 거족적인 애도 속에 마흔네 살의 장년(壯年)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모스크바에서 거행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풍요로운 봄이 시작되는 어느 날, 귀족에다 부유층 집안의 고명딸 스물세 살 나쟈는 울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녀의 집안에서는 그녀가 열여섯 살부터 결혼을 계획했고 마침내 비슷한 집안의 안드레아 안드로비치와 약혼했고 결혼식 날짜도 정한 상태다. 나쟈의 집에는 열흘 전부터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와서 머무는 사샤라는 친척 남자가 있는데 할머니의 먼 친척인 몰락한 귀족 미망인의 아들이다. 청년 사샤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그의 어머니가 죽자 나쟈 할머니는 그를 모스크바의 학교에 보내 주었다. 2년 후 사샤는 미술학교로 옮겨 15년 정도 다니다가 겨우 건축과를 졸업했다. 이후 사샤는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석판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나쟈는 결혼 상대자인 안드로비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지 않음은 물론, 아무런 정도 느끼지 못한다. 결혼 날짜를 잡았지만, 약혼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쟈는 갈등을 겪는다. 신혼집까지 구한 마당이라 섣불리 파혼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중 할머니를 뵈러 온 사샤와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갖게 되고 그의 가르침에 용기를 내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 결심한다. 가족에게 사냥하러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함께 집을 떠난 사샤와 나쟈는 모스크바까지는 같이 가다가 나쟈는 혼자서 페테르스부르크로 향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가을이 지나고 겨울도 갔다. 새로운 곳에서 공부를 시작한 나쟈는 오월에 고향을 방문한다.

  나쟈는 파혼으로 많은 사람이 상처받은 걸 알게 되었고 하필이면 그날 사샤가 객지에서 폐결핵으로 죽었다는 전보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쟈는 새롭고 광활한 자유로운 생활, 아직 불분명하고 비밀에 싸인 그 생활에 매혹돼 경쾌한 마음으로 마을을 떠난다.

 

 

 

 

 

 

 체호프는 대학에 재학 중이던 1879년경부터 체혼테라는 필명의 유머작가로서 문단에 나타났다. 당시 그의 집안은 상당히 궁핍한 환경에 있었으므로 그는 가계를 도우기 위해 원고를 써야 했다. 18791885년 사이의 작품은 300편을 넘지만, 그 대부분이 가벼운 유머형 콩트였다. 비평가는 이 시기의 그를 종달새처럼 노래하는 체호프즉, '체혼테'라 평하고 있다.

  그러나 1886년부터 그리고로비치의 충고를 계기로 체혼테 시대는 끝나고, 본격적으로 체호프의 진면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후기 체호프의 작품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체호프는 1880년대의 러시아의 침체기에 있어서 인텔리겐챠의 무기력한 장면, 사회의 인습과 무지 등에서 오는 비애와 슬픔을 가수가 노래하듯  뛰어난 솜씨로 그려 나갔다.

  (전략)  『약혼녀는 변화 없고 무위(無爲)한 일상에 길들어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시골 아가씨가 어떤 계기로 눈을 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단편이다. 여주인공 나쟈는 재산에 기대어 일하지 않고 사는 삶, 세속화된 종교, 고착된 세계관, 무위와 침체를 안락과 혼동하고 기성의 가치관을 맹신하는 것만이 교양인 줄 아는 집안에서 자랐다. 그리고 무심과 둔감으로 그 세계에 안주하며 역시 비슷한 부류의 남편감을 골라 약혼하고 현재와 동일한 미래를 반복하려다 갑작스러운 눈뜸으로 과감히 낡은 껍질을 깨고 새로운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

  나쟈가 박차고 나온 세계는 낡고 부패한 것이지만 또한 안정되고 확실한 세계이다. 반면 그녀가 새로 향하고 있는 세계는 기실 미지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점에서 나쟈의 눈뜸은 애처롭다. 인형의 집을 떠나는 노라처럼.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3169쪽에서 인용)

 

  

 

  체호프의 작품은 주로 유머를 기조로 한 콩트이며, 우습고 유쾌한 내용이 많으나 점차로 날카롭고 진지한 내용이 되어서 그대로 웃어넘길 수 없는 내용이 많아졌다. 주제는 주로 1880년대 침체시대에서 러시아 지식계급의 절망적 본질에 관한 해부이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퇴보하는 특정 계급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체호프는 지식계층이 무지한 대중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들이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변해가는 광경을 그렸다. 이러한 작품마다 밑바닥에는 애수를 띤, 따뜻하고 보드랍고 세련된, 익살이 깔려 있다.

  소설 속 나쟈의 과거는 다른 이의 희생에 근거한 착취적 삶재산에 기대어 무위도식하며 이어가는 생활세속화된 종교와 전통적인 관습을 신봉하는 맹목적 삶의 모습을 띠고 있다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안정적이고 확실한 삶이다그녀는 이런 익숙한 삶들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무모하리만큼 큰 기대를 안고 불확실한 세계로 떠난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 작품 약혼녀는 사회소설, 시대소설, 계몽소설로 칭할 수 있다. 또는 단순히 나쟈와 약혼녀, 길 떠남과 학업 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페미니즘 소설이 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녀의 방황과 깨달음, 그리고 그녀의 젊음과 약혼이라는 경계적 삶은 성장소설로 보기도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