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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잭 런던 단편소설 『불을 피우기 위하여(To build a fire)』

by 언덕에서 2020. 4. 20.

 

잭 런던 단편소설 불을 피우기 위하여(To build a fire)  

 

미국 소설가 잭 런던(Jack London, 1876~1916)의 단편소설로 1903년 발표된 소설집 <야성의 부름(Call of the Wild)>에 수록되어 있다. 잭 런던은 18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단편소설, 논픽션 등 수백 편에 이를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20세기 초 한 시대를 풍미하며 미국 대중들이 가장 즐겨 읽는 작가였으며,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8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런던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세계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이야기를 풀어내었으며 작품 속에는 생생한 삶의 긴장과 생동감이 전해진다.

 소설집 <야성의 부름>은 발표된 그해만도 1만 부 이상 팔렸고, 1909년에 이르러서는 무려 75만 부가 판매되어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르게 했다. 이 책에는 잭 런던이 알래스카 클론다이크에서 지낸 경험을 살려 쓴 <야성의 부름>, 불을 피우기 위하여,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20대 초반의 작가가 각양각색의 노다지 꾼들과 지내면서 소재를 얻어 지어낸 이 작품들에서 눈 덮인 광활한 얼음 땅 위의 죽음과도 같은 적막, 무서운 추위와 어둠, 지독한 굶주림이 느껴진다. 작가가 겪은 혹독한 자연, 그 안에서 마주친 야성에 대한 기록은 독자가 겪기 힘든, 설원 위 야성을 체험하게 만든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사나이가 영하 50도의 혹한 속에서 홀로 길을 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동반자는 주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한 마리의 늑대개뿐이다. 사나이는 단순한 성격으로 어떤 개념에 관해 구체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여러 가지 성격적 결함은 그의 비극적 종말을 예감케 하는 은유가 된다. 사나이는 실수로 눈 덮인 얼음을 밟아 다리를 적시게 되는데 이미 기온은 그의 상상 이상으로 내려가 불을 피워 발을 말려야만 했다.

 주인공은 시시각각으로 얼어오는 팔다리를 의식하며 가까스로 불을 피우는 데는 성공하지만, 전나무 아래에서 피운 불은 나무 위의 눈덩이가 쏟아지는 바람에 꺼지고 만다.

 생명을 상징하는 불이 꺼지자 사나이는 허겁지겁 다시 불을 피우려 하지만 이미 손과 발은 감각을 잃은 후였다. 그는 처절하게 몸부림치지만 이내 소용없음을 깨달은 후였다.

 그는  '모가지가 잘린 수탉(a chicken with its head cut off)'처럼 볼썽사납게 죽어가느니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눈밭에 주저앉고 만다. 사나이는 혹한의 날씨와 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남은 늑대개는 시체가 된 주인을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찾아 남은 여정을 떠난다.  

 

  (전략) 결국그는 더 견딜 수 없어 양손을 확 떼어냈다타오르던 성냥 다발은 눈밭에 떨어지며 피시식 꺼져버렸으나 자작나무 껍질에 불이 붙었다그는 이 불씨에다 마른풀과 잔가지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양 손목 사이에 낀 채 들어올려야 해서 땔감을 고를 수는 없었다썩은 나뭇조각이나 잔가지에 붙은 덜 마른 이끼들은 최선을 다해 입으로 떼어냈다그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불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불이 곧 생명인 만큼 절대 꺼뜨릴 수 없었다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고그의 동작은 더 우스꽝스러워졌다그러다 넓적한 푸른 이끼 한 덩이가 그 작은 불꽃 위로 떨어졌다그는 손가락으로 이끼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오한 때문에 손가락을 너무 깊이 찔러 넣고 말았다그 바람에 손가락이 작은 불꽃의 불씨를 건드렸고불붙은 풀과 잔가지들이 흩어져버렸다그것들을 그는 다시 모아보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떨려서 소용이 없었고잔가지들은 속절없이 흩어지고 말았다흩어진 잔가지들은 하나씩 연기를 내뿜으며 꺼져버렸다불 피우기는 실패로 돌아갔다그는 무심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개를 보게 되었다개는 잔해만 남은 불의 건너편 눈밭에 앉아 있었다웅크린 몸을 앞뒤로 움직이기도 하고앞발을 번갈아 가며 살짝 들기도 하면서 개는 몹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본문에서

 이 작품은 영하 45도의 혹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남자의 사투를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 공포를 줄 정도이다. 자만심으로 개 한 마리만을 데리고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설원으로 나간 남자가 몸이 얼어가는 상황에서 불을 피우려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사지가 하나씩 얼어가고, 몸의 감각마저 무뎌진다.

 성냥을 한 번 긋는 단순한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된 남자는 점점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고, 불을 지피는 게 힘들다면 자신과 함께 온 개의 배라도 찢어 그 안에 손을 녹일 결심을 한다. 하지만 개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인 곁에 가까이 오지 않는다. 남자는 캠프로 뛰어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일단 뛰기 시작하니 몸이 따뜻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모든 시도는 오만일 뿐이다.

 

 

 

불을 피우기 위하여」는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다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1897년과 1898년에 걸쳐 황량하고 얼어붙은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접경지역에 있는 유콘 테리토리로 금광을 찾아 여행하였던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전략) 우리는 그가 매우 추운 지방에 살고 있다는 것외에는 어떤 경력을 가졌고 당장도 무얼하는 사람인지 거의 알 길이 없다. 다소 조심성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성격조차 특화시키기 어렵다. '추위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충분하지 못한데다 조심성도 겁도 없는 사람' 정도가 주인공을 기명화할 수 있는 정보의 전부이다.

 하지만 그 '사나이'가 극지에서도 유별난 혹한 속에 홀로 길을 떠난 이후의 상황은 감탄할만한 세밀함으로 추적되고 묘사된다. 작가가 관심이 있는 것은 한 부주의한 인간이 영하 100도 이하의 추위에서 어떻게 죽어가는가이다. 한 별난 죽음 -동사(凍死)- 의 과정이다.

 그 과정의 추적과 묘사에서 배제된 것은 관념 뿐만 아니다. 일체의 주관적인 감정도 배제되어 있다. 작가는 주인공의 부주의나 실수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꼬지 않는 반면 동정이나 연민을 드러내는 법도 없다. 주인공 역시 그때 그때 상황에 대한 반응 뿐 격렬한 감정을 드러냄 없이 죽음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 403~4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