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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둘만 사랑하기는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by 언덕에서 2017. 9. 22.

 

 

 

'둘만 사랑하기는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2006년 변승욱이 감독한 영화로 한석규와 김지수가 주연을 맡았다. 결혼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적 조건 때문에 ‘만혼’이라든가 ‘혼밥, 혼술’이 일상화되어  ‘필요조건’이 아니라 ‘선택 사항’이 되어 버린 이 시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주인공들에게 결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제약은 다름아닌 가족이다. 가족은 무겁디 무거운 장애가 되어 이들의 결혼을 가로막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잘 안다. 그리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로 가족 탓을 한다. 남자는 정신지체 형 때문에, 여자는 아버지가 남긴 수억 원의 빚 때문에, 다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인구(한석규)는 형이 없어졌으면,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바란다. 혜란(김지수)은 아버지의 빚이 없으면 자신이 정상적인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슬픔이 지난 후 이들은 아픔 앞에 당당히 선다. 버리고 싶지만 결코 버리지 못하는 가족에서 그들은 희망을 다시 찾는다.

 개인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이 가족이라고 한다면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가족인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동네 약국의 친절한 약사 ‘인구(한석규)’는 노총각이다. 직업도 좋고 성격도 좋은 괜찮은 남자이지만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형 뒷바라지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홀몸인 어머니와 함께 형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인구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언젠가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버린 채 살고 있다. 형은 대학의 산악부 활동 중 일어난 사고로 정신지체의 병을 앓아 어린애처럼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인구가 사는 동네에 명품 옷을 카피하는 동대문 짝퉁 디자이너 ‘혜란(김지수)’이 이사 온다. 얼굴도 예쁘고 생활력도 강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5억 빚을 갚기 위해 억척스럽게 사는데 그탓에 성격이 까칠하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알게 된 유부남 변호사와의 불륜 행각을 마친 상태이기도 하다.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수억 원의 빚을 갚느라 사랑이라는 감정도 잊은 채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동생이 혼전 임신했다며 결혼을 선언했을 때 단호하게 애를 지우라고 하고, 짝퉁을 판다고 경찰에 신고한 옆집 옷 가게 주인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것은 그녀의 일상이기도 하다. 

 인구와 혜란, 이들에게는 살아가는 오늘과 내일은 고통일 뿐이다.

 그녀가 어느 날 수면제를 사러 간 약국에서 친절한 동네 약사 인구를 만난다. 늦은 밤, 약국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인구는 수면제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약 대신 맥주 한 캔을 내민다. 두 사람은 맥주를 나눠 마시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 호감은 점점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발전해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연애라는 것을 시작하게 된다.

 두 사람은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면서 함께 웃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이 커질수록 두 사람이 가진 현실의 짐도 커져만 간다. 형 때문에 결혼할 수 없는 인구와 빚 때문에 결혼할 수 없는 혜란의 처지가 그것이다.

 또다시 정신을 놓고 가출한 형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인구 어머니는 윤화를 당해 즉사한다.

 장례식장.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형을 혼자 책임지게 된 인구에게 혜란이 찾아온다.

 인구는 정신병원에 있던 형을 데리고 나와 형이 좋아하던 고산의 정상에 선다. 혜란은 인구와의 추억이 서린 초등학교의 운동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즐거운 우리집’ 음악을 듣는다. 혜란은 전화를 걸어 고산의 정상에 있는 인구에게 그 음악을 들려준다. 여기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착해서 사랑을 못하는 남자와 사랑이 사치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순탄치 않은 사랑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다. 열병 같은 첫사랑 뒤에 다시 찾아온 두 번째 사랑 앞에서 망설이는 두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는 따뜻한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던 사랑에 대한 아련함과 망설임, 아픔을 따뜻하고 사실적인 화면과 영상으로 그려낸다. 영화가 보는 이들에게 가슴 저리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감정에 빠지는 모습, 현실의 짐이 무거워 서로를 외면하려 하는 모습 뒤엔 항상 따뜻하고도 가슴 아픈 음조의 선율 때문인데 그로 인해 두 남녀의 사랑은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차분히 약사 가운을 입은 한석규가 우두커니 서있는 약국, 비디오테이프가 입구에 쌓여 있는 여관은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듯한 약국은 현실의 무거운 짐 때문에 아픈 혜란이 서슴없이 들어와 무턱대고 말을 걸고 인구와 조심스러운 사랑에 빠져드는 특별한 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현실때문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두 남녀의 연애 이야기다. 아버지의 '재산'이 아니라 '빚'을 상속받은 여자와 정신지체 '형'을 유산처럼 물려받은 남자. 이보다 더 부정적일 순 없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가까워지기엔 너무나 먼 두 사람이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어떻게 간신히 사랑하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물론, 결말도 열어두고 있다. 
 서울의 변두리처럼 보이는 동네에서 약국의 약사로 일하는 남자는 수면제를 달라는 여자에게 수면제 대신 맥주를 내민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때의 사랑은 '하는' 사랑이 아니라 '견디는' 사랑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것을 30대가 훌쩍 지난 이후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나면 그 순간 수긍이 된다.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였다. 영화의 주제가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영화는 5000만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노래를 통해 따뜻한 가정을 암시하고 있다.

‘상대방 삶의 무게마저 사랑해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우리는 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가 사랑이라고 무책임하게 떠들곤 한다. 그러나 사랑은 현실 앞에서 항상 초라하다.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데리고 가고 싶지만 넘어야 할 장애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장애물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타산적이지 않고 따뜻하다. 그런 점을 영화는 티내지 않으면서 두 사람의 일상을 담담하게 도려내고 있다. 두 사람만의 미묘한 감정 변화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쉽지 않은 감정을 담아야 하는데 어쨌든 영화는 그 공감대를 달성하고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