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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G.G. 마르케스 단편소설 『어떤 날(Un día)』

by 언덕에서 2016. 5. 3.

 

 

G. G. 마르케스 단편소설 『어떤 날(Un día)』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1928∼2014)의 단편소설로 1975년 발표되었다. 콜롬비아는 군사쿠데타로 인한 정변이 잦은 편이다. 이 작품은 게릴라 활동에 의한 군부의 정치개입으로 발생하는 폭력의 결과가 인간 삶의 양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피폐하게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인 콜롬비아의 작은 읍은 모든 행정을 군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그 군인들은 수많은 시민들을 살해한 권력자들인데, 작가는 그들 가운데 한 명인 읍장의 태도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권위적인가를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닷새 동안이나 방치해 둔 썩은 이를 통해 그 사회의 부패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치과의사가 고통스러워하는 읍장에게 스무 명의 사람을 죽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독재 권력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며, 가해자인 권력자를 은근히 비판하는 작가의 정신도 부각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짧은 시간에 일어난 사건을 포착하여 작가의 저항정신과 비판정신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우렐리오, 에스꼬바르가 운영하는 치과에 어느 날 읍장이 어금니의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온다. 주인공 에스꼬바르 씨는 비록 무면허 치과 의사이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아침, 현역 군인으로서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바 있는 읍장이 이를 치료하러 온다.

 읍장은 민간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그는 어금니를 빼기 위해 치과의사를 찾아 오지만 그 전에 이를 뽑아 주지 않으면 총으로 쏴 죽이겠다는 협박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치과 의사는 이를 뽑히느라 고생한 그에게 '여기는 사람 20명 죽인 죄값을 다 갚는 곳입니다.'라고 은근히 시장을 조롱한다. 읍장은 아픈 이를 제때 치료하지 않고 닷새 동안이나 방치해 둔 어리석은 자이다. 치과 의사는 읍장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마취를 하고 치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꼬바르 씨는 치아에 종양이 생겼다는 이유를 들어 마취 없이 시술하게 된다. 실제로는 읍장이 고문하고 죽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대가를 조금이나마 치르게 하려는 의도이다.

 병원에 들어올 때는 위세가 당당했던 읍장도 이를 빼는 동안에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다시 떠날 때는 어느 새 퉁명스러운 모습이 되어 병원을 나간다. 그리고 치료비 청구서는 자기에게나 읍사무소 가운데 아무데라도 보내라고 한다.

 

 콜롬비아 출신의 소설가 마르께스는 오랜 독재 권력의 폭정 실상을 다양한 문체를 사용하여 신화적인 우화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조국 콜롬비아는 오랜 기간 동안 자유 세력과 독재 권력과의 분쟁이 있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살해되는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그는 소설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비극적인 정치 상황을 심층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소설에서 시장은 민간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그는 어금니를 빼기 위해 치과의사를 찾아 오지만 그 전에 이를 뽑아 주지 않으면 총으로 쏴 죽이겠다는 협박을 한다. 이에 대해 치과 의사는 이를 뽑히느라 고생한 그에게 '여기는 사람 20명 죽인 죄값을 다 갚는 곳입니다.'라고 은근히 시장을 조롱한다.

 '사람을 20명 죽인 죄값'은 바로 작가의 조국 콜롬비아의 비극적인 정치 상황을 암시해 준다. 시장은 그러한 정치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존재로서 독재 권력과 폭정의 현실을 나타낸다. 독재 권력에 의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남미의 비극적인 현실의 가해자인 이러한 권력을 은근히 비판하는 작가 의식이 돋보인다. 이 소설은 짧은 시간에 일어난 사건을 포착하여 작가의 비판과 저항 정신을 압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치과 의사와 군인인 읍장 사이에 벌어지는 일화를 통해 탐욕스러운 자들의 무지를 경쾌하게 조롱하고 있다. 비슷한 내용의 작품으로 같은 콜롬비아 작가 에르난도 테예스(Hernando Téllez (1908-1966))의 단편소설 <단지 비누 거품일 뿐>을 들 수 있다. 1950년대 초반에 발표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작품에서 권력자는 장군으로 이발사에게 면도하라고 몸을 맡기는 내용인데 작품 구조가 놀랍도록 유사해서 마르케스가 1975년 발표한 「어떤 날」은 테예스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https://yoont3.tistory.com/11302715).

 작중 주인공 에스꼬바르 씨는 비록 무면허 치과 의사이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으로, 매우 부지런하고 강직하며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이다. 반면에 치과를 찾아온 읍장은 군인이며, 20여명의 사람들을 무고하게 죽인 권력자의 상징으로 나온다. 그는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는 일에 이력이 난 인물로 자신의 아픈 이를 제때 치료하지 않고 닷새 동안이나 방치해 온 어리석은 자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이빨을 빼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상징성을 띠고 있다. 이빨을 뺀 읍장은 고통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나 읍사무소 아무 곳으로나 계산서를 보내라고 말하고 여전히 군대식의 무뚝뚝한 인사를 남기고 떠난다. 여기서 치과 의사는 그 당대의 민중을 대변하는 인물로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인물이다. 반면에 읍장은 무지하며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로 자기 돈과 읍사무소의 재정에 대한 구별도 없는 부패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이처럼 사소한 일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중남미의 정치 사회 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재치 있고 경쾌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상징적인 인물 설정과 대화를 통해 단편 소설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마저 총칼을 들고 불의와 싸우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런 작품을 통해서 불의와 싸워야 한다. 작가의 일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