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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에르난도 테예스(Hernando Téllez) 단편소설 『단지 비누 거품일 뿐(Espumay nada más)』

by 언덕에서 2020. 3. 12.

 

 

에르난도 테예스(Hernando Téllez) 단편소설 『단지 비누 거품일 뿐(Espumay nada más)』 

 

콜롬비아 에세이스트 · 기자 ·  문학평론가 · 외교관 · 소설가 · 번역작가 에르난도 테예스(Hernando Téllez (1908-1966)의 단편소설로 소설집 <바람에 날리는 재>에 실린 작품으로 1950년대 초반에 발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 보고타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은 테예스는 콜롬비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문과 잡지사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저널리즘의 세계에 들어섰다.

 단편집인 <바람에 날리는 재(Ashes for the Wind)>의 출판으로 1950년이 되어서야 그는 이름이 문단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쓴 비극적인 이야기는 현대 생활, 특히 고국에 관한 고뇌와 현실을 반영하는 예리하고 민감한 관찰을 보여준다. 테예즈의 생애 동안 콜롬비아는 여러 차례의 내전과 군사 독재를 겪었다. 19세기 남미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큰 땅덩어리의 나라였던 '그랑 콜롬비아'는 세 차례 분쟁을 통해 하나의 국가가 1840년 즈음에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및 에콰도르 등 세 개의 개별 국가로 나뉘어 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테예즈는 콜롬비아 의회에서 일했는데 소개하는 작품은 테에즈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국가가 분할되는 와중의 혼란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한 듯하다. 이 이야기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미국 고등학생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위에 쓴 이 작품 해설은 국내에 번역된 저자의 작품이나 저자에 관한 자료가 없어서 구글에서 자료를 찾아 필자가 '그저 적당히' 번역했음을 밝혀둔다) .

  30여 년간 문화 및 소설을 연구한 그는 콜롬비아에서 현대문학이 태동하기 시작한 1960년대의 산 증인이다. 사실주의로 점철되어 있던 종전의 문학을 비판적으로 탈신비화시키면서 새로운 현대문학을 향한 선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그는 또한 전() 세대들이 과소평가했던 시인 아우렐리오 아르투리오와 레온데 그래이프를 열렬히 칭송하면서 그들의 시 세계를 알리는데 커다란 노력을 했다. 그의 문학비평서로는 <불안한 세상><숲속의 불빛><문학><문학과 사회> 등이 있으며 소설집으로는 <바람에 날리는 재>가 있다. 단편 단지 비누 거품일 뿐<바람에 날리는 재>에 수록된 작품으로 중남미의 대표적인 단편으로 평가받고 있다.<이문열 세계문학산책 7306쪽에서 인용>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중남미의 콜롬비아. 주인공인 나는 반란군을 지지하는 이발사이다. 정부군의 고위 비밀경찰인 토레스는 체포된 반란군의 팔다리를 시내에서 보란 듯이 자르거나 총살하는 등 마음대로 처형하는데, 강제로 사람들에게 그 장면을 관람하게 지시할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다. 누구라도 그를 죽이고 싶어하고 나도 기회만 온다면 그를 죽이고 싶다.

  어느 날 그가 면도해달라며 이발관을 찾아왔다. 날이 시퍼렇게 선 면도날을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토레스는 내가 그의 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러한 사실을 그는 몰랐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몰랐다. 토레스가 읍내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반란자들을 잡으러 다닐 때마다 그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는 내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았던 비밀이었다. 그러니까 내 손아귀에 들어온 그를, 면도를 한 다음 살아서 유유히 가버리게 놓아두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는 내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면도칼을 든 내게 농담까지 한다. 하지만 마음이 약한 나는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한다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면도가 끝나자 그는 돈을 치르면서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사람들 얘기로는 자네가 날 죽일 거라고 그러더구만. 그 말이 정말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왔어.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내 말을 새겨두라구."

  그러더니 그는 거리로 내려갔다. 

 

 

 

 반란군을 색출하는 악질 장교가 이발소에 들어온다. 주인공인 이발사는 반란군과 내통하면서 정보와 지원을 해주는 이였다. 이발사는 가장 좋은 면도칼을 꺼내서 가죽띠에 날을 세웠고, 정부군 장교인 그는 허리에 찬 권총집과 탄피가 들은 허리띠를 풀어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편안히 앉는다. 무장해제된 그는 의자에 앉아서 며칠 전부터 잡은 반란군과 동조자들을 처형할 이벤트를 열 거라며 이발사를 자극할 만한 내용의 말을 계속 지껄인다.

 이발사는 그가 준비한다는 이벤트가 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체포된 반란군들의 피부 껍질을 벗기는 방식으로 공개처형을 시켜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키는 일이다. 이발사는 비누 거품을 풀고 그의 뺨과 목, 코언저리에 바른다인간 백정으로 불리는, 살인마가 누워있고 곧 그의 동료를 죽일 그의 목에 이발사는 면도칼을 들이댄다. 

 

 

 

  (전략) 작품 속의 이발사는 아마도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심약은 안타깝다 못해 애처롭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논의의 여지 없이 명백하다. 운 좋게 손안에 들어온 사람 백정이나 다름없는 악당을 처형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온갖 새삼스러운 논의와 자제와 소심 때문에 결국 기회는 비누 거품처럼 날아가 버린다.

  거기 비해 악당은 어떤가. 온갖 끔찍한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하고 거침없다. 더구나 그 이발사가 이미 반란군과 내통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시퍼런 면도칼 아래 목을 맡기는 그의 배짱은 거의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한 마디를 잊지 않는 그의 여유는 비록 악당이라 할지라도 사내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건미의 한 특이한 결정이 될 것이다. (<이문열 세계문학산책 7권> 305쪽에서 인용)

  소설 속의 만용에 가까운 악()의 당당함은 현실에서도 흔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영화나 소설이라면 감독이나 작가가 권선징악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마무리를 짓곤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선이나 정의가 늘 승리하지는 않고 오히려 악의 당당함이 더 위세를 떨치는 때가 더 많다. 이 작품은 그런 부류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