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대하소설 『갑오농민전쟁』
월북작가 박태원(朴泰遠, 1909∼1986)의 장편소설로 한국전쟁 후 월북하여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태원은 193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소설가로 1930년대에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등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월북하여 익산민란을 형상화한 <계명산천은 밝았느냐> 를 1963년에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대표적인 대하소설은 이의 후속편인 「갑오농민전쟁」일 것이다.
방대하기 작이 없는 이 소설은 1977년에 제1부, 1980년에 제2부가 발표되었고, 작가 사후인 1986년에 제3부가 출간된 3부작 역사대하소설이다. 박태원의 신병(身病)으로 인해 후반부의 상당 부분은 구술(口述)에 의해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3년에 발표된 역사 소설 <계명산천은 밝아 오느냐>의 후속 작품으로, 이기영의 <두만강>과 함께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에 토대를 둔 이 작품은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을 그 혁명적 성격 및 계급투쟁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다.
제1부는 1892년부터 1893년 겨울까지 전라도 고부군 양교리를 배경으로 하여 고부민란이 발발하기 전까지 행해진 지배 계층의 폭정과 민중들의 참담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으며,
제2부는 1894년 7월부터 세 달 동안 고부민란이 농민전쟁으로 확대되기까지 전개되는 농민들의 투쟁을 서술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농민 세력의 해체와 영웅적 인물 전봉준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탐관오리의 수탈과 부패가 극에 달하자, 백성들의 고통은 커져만 간다. 이에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 지도자들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동학을 중심으로 농민들을 규합한다. 그들은 조정에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장 봉기를 결심하게 된다.
동학 농민군은 관군을 상대로 잇따른 승리를 거두며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전봉준의 지휘 아래 전주성 점령에 성공하며,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하는 개혁적인 움직임이 시작된다. 하지만 조정은 이를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고,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을 요청하게 된다.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개입하며 국제적인 분쟁으로 확산된다. 농민군은 외세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서 고전하게 되고, 내부적으로도 지도층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혼란이 커진다. 농민군의 초기 승리는 점점 무너지고,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자들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동학 농민군은 마지막 대규모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큰 패배를 당하고, 지도부는 체포된다. 농민군의 패배는 사실상 봉기의 종말을 알리게 되고, 전봉준은 결국 처형된다.
동학 농민군의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의 저항은 갑오개혁과 조선 사회 변혁의 밑바탕이 된다. 농민들의 절망과 희생은 이후의 개혁적 움직임에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은 권력자들에게 수탈 당하고 억압받던 백성들이 스스로 떨쳐 일어난 근대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다. 소설 『갑오농민전쟁』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을 예술적 화폭에 담아 생생하게 펼쳐 보이면서, 주인공 오상민과 전봉준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불꽃 같은 삶을 통해 값진 역사적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이 작품에서는 1894년의 농민전쟁이 봉건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근대사회를 극복하려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적인 변혁운동으로서,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에 대응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견지하려는 민족운동이었음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오수동, 오상민 부자(父子) 등 농민 계층의 전형적인 인물의 설정, 풍부하고 세밀한 묘사 등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몇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무력투쟁의 옹호, 인물의 영웅성, 편향된 역사의식 등의 소설적 한계 또한 노출하고 있다.
이것은 <갑오농민전쟁>이 혁명적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정될 수밖에 없는 한계라 할 것이다.
♣
제1부는 1892년 12월 초순 호남벌 고부읍 양교리 오수동의 외아들 오상민의 집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오상민이 전봉준의 영향으로 의식이 각성되고, 사회적인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다루는 한편으로, 농민전쟁 폭발 전야의 각박한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제2부는 농민전쟁의 발단이 된 고부에서의 농민봉기부터 전주성 진입까지의 3개월에 걸친 싸움을 다룬 것으로, 종교적 외피를 하고 있는 동학혁명의 본질을 계급의식의 시각으로 형상화했다.
제3부에서는 관군과 그에 결탁한 일본군에 대항하여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이 싸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문학]지에 따르면 박태원은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할 때까지 이태준의 비호로 평양문학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운과 함께 <조선창극집>을 출간했다. 1960년 작가로 복귀한 그는 1965년 망막염으로 실명했고 1975년께는 고혈압으로 전신불수의 불운이 겹쳤다. 그는 1963년∼1964년 ‘혁명적 대창작 그루빠’의 통제 아래 역사소설 <계명산천은 밝았느냐>를 집필했고 실명 후에 77년부터 대하소설 <갑오 농민 전쟁>(3부작)을 아내 권영희에게 구술해 1984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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