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李文烈.1948~)의 단편소설로 1987년 6월 [세계의 문학]에 발표되어 제11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소도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권력의 형성과 붕괴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1980년대의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준다. 불합리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비판적인 각도에서 성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권력의 본질과 붕괴를 보여주고 있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나’의 행동과 의식의 변화를 아주 뛰어난 내레이션 기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데 더욱더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은 한국적 정치현상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점이 높이 평가되어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92년 박종원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문으로도 번역되어 전세계에 알려졌는데 살만 루시디(인도 출신 영국 작가)는 "이 작품은 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지구의 다른 한 모퉁이에 커튼을 들어 올려서, 그곳에도 보편적인 인간의 약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보였다. 우리 시대 중요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 작품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라고 호평을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시골학교로 전학 온 한병태는 반장을 맡고 있던 엄석대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엄석대는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으며 갖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엄석대의 폭력과 잘못에 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빌붙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의 비행을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나, 선생님은 지나치리만치 엄석대를 신임하고 있던 터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소외감과 모함과 갖가지 불이익뿐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인 어린아이로서는 이런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결국 한병태는 그에게 복종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엄석대의 보호를 받게 되어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새 학년이 되고, 담임선생님이 바뀌게 되자, 새로 온 선생님의 철저한 교육방식에 따라 엄석대의 권위도 무너지게 된다.
엄석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반의 분위기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된 새로 온 선생님은 결국 엄석대의 온갖 잘못들, 예를 들면 엄석대가 자신의 시험지를 우등생들로 하여금 대신 작성하게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자, 엄석대는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만다. 엄석대는 그야말로 ‘일그러진 영웅’이었던 것이다.
3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한병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그럭저럭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사회의 온갖 쓴물을 마시면서 그는 가끔 엄석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실업자가 된 오늘, 아무 노력 없이 편안히 생활할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혼탁한 세상이면 엄석대도 어디선가 다시 자기 권위를 회복하여 출세했겠지…….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엄석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 반 아이들을 잘못된 권위와 폭력으로 휘어잡던 그가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병태는 그 모습에서, 어린 시절 영웅 같았던 석대의 모습이 아닌, 바로 그에게 복종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자신들 중의 어느 하나와 같은 비굴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날 밤, 병태는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누구를 위한 울음인지 모를 눈물을 하염없이 떨구고 있었다.
200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도미니카계 미국 작가 주노 디아스(42)는 "독재 정치와 전쟁을 경험한 한국 문학에는 트라우마가 내재돼 있다"며 "그러한 소재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다"고 언급하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고백했는데 "감동을 크게 받아 나 자신도 학창시절 경험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 했다.
혹시 학생 시절을 겪을 때 우리들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지 않는가? 주먹이 세든지, 머리가 뛰어나게 좋은 같은 반 친구가 있다. 그에게는 강력한 힘이 있어서 왠지 아이들이 쩔쩔맨다. 그를 싫어하는 친구들은 어느 틈엔지 따돌림을 받는다. 그의 비위를 맞추고 그의 마음에 들어야만 소외당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분명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 바로 그 친구가 그랬노라고…….
이 소설은 한 시골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 저항하던 인간이 어떻게 그 권력의 틀 속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 영국의 소설가 윌리엄 골딩(1911∼1993)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파리대왕>을 떠올리게 된다. 큰 틀은 동일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소설들로 보인다.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 상태로 돌아간 소년들의 원시적 모험담을 통해 인간내면에 잠재해 있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우화풍의 소설로 인간악의 일면을 교묘하게 묘사해 냈다.
♣
작품 자체로만 본다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매우 탁월하다. 국보급의 수려한 문체와 탄탄한 구성은 압권일 뿐더러 그의 소설의 구성력은 한국의 어느 작가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정점에 올라와 있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엄석대의 권력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과 그가 어떻게 일그러져갔는가에 대하여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이 소설은 온갖 부조리와 불의(不義)를 느끼면서도 복종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 현실과, 한 인간이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사회 고발 소설이다.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하여 어른이 된 후까지의 시간적인 배경은, 개인의 편안함만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를 고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병태의 외로운 저항과 끝내 저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야 하고, 석대를 향한 아이들의 서로 다른 태도를 비판해 보아야 한다. 자, 우리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진정한 영웅’과 ‘일그러진 영웅’의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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