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홍성원 대하소설 『남과 북』

by 언덕에서 2011. 2. 12.

 

홍성원 대하소설 『남과 북』

 

 

홍성원(洪盛原. 1937∼2008)의 대하소설로 1970년부터 5년간 [세대]지에 원고지 1만 매에 육박하는 내용을 「육이오」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다. 이 작품 이후 홍성원은 대형 작가로 거듭난다. 이후 1977년 전 6권이 출판되었다. 종래의 6ㆍ25 전쟁문학은 어떤 인물이나 가계가 겪는 전쟁의 형태로 묘사되고 있었으나, 홍성원의 「남과 북」은 우선 등장인물에서부터 개별적인 개인들이 겪는 전쟁의 경험 경로가 다양하다. 홍성원은 6ㆍ25가 강대국들이 만들어낸 한국인과는 상관없는 전쟁임을 설규헌이란 사학자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한국전 기간 동안을 시대적 배경으로 30여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그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갖가지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기자, 군인들, 지주, 의사, 브로커, 양공주, 전쟁고아, 건달 등이 각자 이 전쟁을 통해 벌인 지난한 투쟁 속에서 한국 전쟁은 영웅도 승자도 없고 오직 패자만이 있었던 비극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1977년에 전권이 출판되었던 작품인데, 그때 상황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문제를 다루고, 오래된 문장을 다듬어 다시 펴냈다.

 

소설가 홍성원(1937-2008 )

 

 

 이 방대한 대하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6ㆍ25 전쟁이 터진다.

 신문사가 비상근무에 들어가고, 경민은 트럭에 무장한 군인이 목 놓아 부르는 군가 소리에 비애를 느낀다. 박노익 하사는 사흘간의 행군에서 네 명의 전우를 잃고 증오를 느낀다.

 부상병들이 몰려드는 병원에서 신동렬은 쉴 틈 없이 바쁘다. 그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부상병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심한 분노를 느낀다.

 드디어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교는 시민에게 홍보 없이 폭파된다. 그대로 피난민의 행렬은 남쪽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인민군이 수도에 입성을 하게 되자, 몇몇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을 한다. 피난 도중 경민은 수원 근처에서 우연히 서태호를 만나 오영탁의 부인인 강윤정을 소개받는다.  

 7월에 접어든 아침나절, 효진은 박한익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 우동준을 한익의 동생 수익이 인민재판에 세웠고, 오빠 효중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서, 이를 말리기 위해서였다. 한익은 효진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학렬은 정치보위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동생 동렬과 함께 관옥을 사랑하고 있었다. 동렬은 형과 자신과 관옥의 관계를 분명히 하려고 관옥의 몸을 허락받는다. 이제는 이복형인 학렬이 두렵지 않았다.

 설규헌 박사는 딸 소영이 울부짖는 가운데 인민군에게 끌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효진이 작은오빠 효석의 소식을 궁금해할 무렵, 효석은 기둥에 몸이 묶인 채 여름 하늘을 바라보며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한익의 아버지 박 포수는 우동준의 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마을에 불을 질러 우동준을 구출한다.

 월남해서 술집을 경영하던 모희규는 소영의 약혼자 한상옥과 함께 군에 입대하게 되고, 전선은 평양을 탈환할 정도로 호전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한익은 쌀장사를 해서 크게 돈을 번다. 중공군이 개입할 즈음을 기해 우동준은 세상을 떠난다. 경민은 보조 간호원으로 징집되었다가 포로가 된 최선화를 구해내 정을 통한다. 그리고 동생 소영은 임신을 한 최선화와 어린 진숙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게 되는데, 최선화는 미군 병사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다.

 박수익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수용소 내에서는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들이 날마다 각목과 죽창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싸운다. 수익은 수용소 내부의 알력에 관계되어 인민재판에 회부되고 사형을 언도받는다. 한편, 연대장 오영탁이 실종되어 사단은 술렁거리기 시작하고, 헌병대장으로 근무 중인 최완식 대위는 강윤정의 살해 용의자로 오영탁을 지목하고 수사를 편다. 그리고 수사가 마무리되는 찰나에 박노익 상사에게 죽음을 당한다.

 선화를 찾아 나선 경민은 기지촌에서 그녀를 만나지만, 돌아가자는 제의에 그녀는 불응한다. 그것은 도의적이고, 인간적인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녀는 열흘간의 기간을 정하고 마지막 되던 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리 한쪽이 불편했던 경민은 남은 다리마저 총상을 입게 되자,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선화의 죽음에 이어 철저하게 파괴된다. 1953년 7월 27일, 역사적인 휴전협정이 조인된다. 3년 1개월 2일 4시간 만에 한반도에서는 모든 총성이 멎고, 가슴 아픈 상흔만 남긴 채 종전이 된다. 중위로 진급한 모희규는 휴전 20일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우효중은 불행한 난민을 돕고자 박한익의 금고를 털어 달아나지만, 폐인이 되어 자살하고 만다.

 신동렬은 대위로 진급되지만,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다. 그는 두 다리를 절단하게 되고, 화상으로 실명까지 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관옥의 짐을 덜어준다. 관옥은 충격으로 정신 이상이 되어 거리를 헤맨다. 수용소를 탈출한 박수익은 고향을 찾아가 한익의 일을 돕게 되고, 소영은 상혁을 그리워하며, 일선에까지 가서 만나 보지만, 박노익의 오발로 한상혁은 숨을 거둔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화되고 만다. 전쟁은 잊힐 것이며, 죽은 자와 상이용사와 전쟁미망인도 잊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재건되고, 또한 슬픔도 치유되고, 고통스럽던 기억은 두꺼운 흉터를 남긴 채 세월과 더불어 순식간에 사라져 갈 것이다.

 

 

 

 전쟁의 참상은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잔혹하게 널려 있다. 거적에 덮여 방치되어 있는 병자(病者)의 시체들과 살기 위해 구걸하는 어린이들, 몸을 팔기 위해 외국 병사와 흥정을 하는 여인들이 거리를 온통 메우고 있다. 소영은 고아원에서 일을 하며 전쟁의 고통을 몸소 깨닫고 있다.

 박노익은 이등중사로 진급되고, 모희규와 한상혁은 소위가 된다. 관옥이 생활고로 미군 부대 근처에서 미군의 조롱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 즈음,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전선과 협상 테이블의 양쪽에서 진행된다. 전선에서는 사기가 저하되고 휴전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진철을 데리고 사는 선화는 미군 부대 근처에서 몸을 팔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추행한 미국 병사를 결코 잊지 않는다. 경민은 자신의 자식과 선화를 날마다 찾아다닌다.

 강윤정은 남편 오영탁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전시에 어렵게 시간을 내 찾아간 그는 그의 부하였던 최완식 대위와 윤정이 불륜의 관계임을 알고 강윤정을 살해한다. 그리고 전선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내의 환영(幻影)에 시달린다. 전쟁이 직업인 그의 전투는 평범한 일과처럼 진행되고, 밤마다 찾아오는 공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로 진급한 박노익이 탈영을 한다. 그는 살아서 죽은 자를 슬퍼하기보다는 죽어서 산 자들에게 슬픔을 받는 쪽이 덜 괴롭다며, 죽은 자는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산 자는 살아있기 때문에 찢어질 듯이 슬프고 괴로운 것이라며 외친다.

 작가는 한국전 기간 동안을 시대적 배경으로 30여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그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갖가지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기자, 군인들, 지주, 의사, 브로커, 양공주, 전쟁고아, 건달 등이 각자 이 전쟁을 통해 벌인 지난한 투쟁 속에서 한국 전쟁은 영웅도 승자도 없고 오직 패자만이 있었던 비극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종래의 6 25 전쟁 문학은 어떤 인물이나 가계(家系)가 전쟁을 겪는 형태였다. 그러나 홍성원의 「남과 북」은 개별적인 개인들이 겪는 전쟁의 경험 경로가 다양하다. 그리고, 작가 홍성원은 설규헌이란 사학자를 통해서 6 25를 강대국들이 만들어낸, 한국인과는 아무 상관없는 전쟁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또, 다양한 인물 설정을 통해서 전쟁은 어떤 명목, 어떤 형태로든지 인간성을 상실시키는 죄악이라는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전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불공평한 예외적 일들과 전쟁에 직접 참가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전쟁과 무관한 여인들과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친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했다. 홍
성원은 이 소설에서 전쟁은 어떤 명목과 형태로든 죄악이며, 인간성 상실이라는 주류를 지니고 각 인물들을 설정하고 있다. 즉,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으며, 불공평한 예외적 조건이 전쟁에서는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음도 상기시킨다.

 그는 전쟁의 피해는 비단 전쟁에 직접 참가하는 당사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여인들과 아이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분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의미한 현실의 존재 가치로, 현존하는 사실은 전쟁이 만든 필연의 결과이며, 또한 치유가 되더라도 마음속에는 깊은 흉터를 만들고 있음도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