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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권여선 단편소설 『분홍 리본의 시절』

by 언덕에서 2010. 11. 15.

 

권여선 단편소설 『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1965~ )의 단편소설로 2007년 단편집 <분홍 리본의 시절> 표제작으로 발표되었다. 이 단편소설집은 권여선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2006년 [황순원 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던 <가을이 오면>과 2007 [이상문학상] 우수작인 <약콩이 끓는 동안>을 비롯한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세상 속에서 안정된 직업을 갖지도 못하고 사회 속에서 추구하도록 강요된 특별한 욕망을 지니지도 않은,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이다. 대개 이들은 사회적으로도 중심에서 벗어나 외면당한 여성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캐릭터는 소설집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스물일곱의 늦깎이 전문대생 ‘로라’(「가을이 오면」)나, 반신불수 노교수의 집으로 연락조교 노릇을 하러 다니는 대학원생 ‘윤양’(「약콩이 끓는 동안」) 등이다.

 단편소설 「분홍리본의 시절」에서 '분홍리본'은 주인공의 순수함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분홍 리본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과 감정의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하는데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작가는 이처럼 사회가 덧씌운 역할이라든가 욕망을 걷어내고 그 인간 자체의 선악과 미추를 고스란히 드러내려 한다.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이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냉소이지만 세상에 대해 냉소하는 자기 자신까지를 가차 없이 반성하고 해부하는 서늘함이 서려 있다. 허위를 거부하는 날선 이 소설은 독자에게 카타르시스와 냉정한 자기반성을 동시에 안겨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예전 대학 선배와 그의 아내를 우연히 만난 ‘나’는 그들과 음식을 해 먹으며 점점 친해진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지만 ‘나’는 서서히 선배와 그의 아내, 중산층인 그들의 삶에 대해 혐오와 불쾌와 동정을 느낀다. 육류를 즐기지 않는다던 선배 부부는 고기 요리를 만들 때마다 왕성한 식욕을 보이며 자신들의 말이 위선이었음을 드러낸다.

‘나’는 선배의 소개로 김수림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는데, 그녀는 선배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고, 아이를 떼내는 동안 ‘나’는 그녀를 돌보며 선배에게, 수림에게, 선배의 아내에게 환멸을 느낀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누가 하는 말인지 확실치 않은 폭발적인 비난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네가 진정 가슴을 치고 울어본 적이 있느냐. 남자나 실연 때문이 아니라 네 하찮음, 네 우열함, 네 교정되지 않는 악마성 때문에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삶을 저주해 본 적이 있느냐.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죽음밖에, 그 무서운 백지의 차원밖에 남지 않았음을 절감해 본 적이 있느냐. 하루하루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지옥인 시체의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느냐.”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세상 속에서 안정된 직업을 갖지도 못하고 사회 속에서 추구하도록 강요된 특별한 욕망을 지니지도 않은,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이다. 이 작품에서는 서른 문턱을 넘은 나이에 하는 일 없이 신도시 오피스텔에 이사와서 지내는 여자가 등장한다. 작중 주인공은 김수림에게 그 누구도 타인을 기만하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폭발과 같은, 펄떡이는 말로, 리본처럼 꼬인 붉은 혀로,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 분홍 리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주인공이 대학 시절에 착용했던 분홍 리본은 순수하고 밝은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리본은 주인공의 삶과 감정의 변화, 그리고 현실의 냉혹함을 반영하게 된다. 분홍 리본은 또한 주인공의 내면 갈등과 복잡한 감정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사용된다. 리본의 색깔과 형태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과거의 순수함과 현재의 복잡함을 대비시킨다.  

 소설집 속의 일곱 편 소설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씩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타자와의 관계와 고립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하나의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돈다. 타인을 조소하고 경멸하면서 그 자신도 기실 똑같은 조소와 경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예 자각을 못한 것일 수도 있고 , 애써 아닌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소설 속 인물들은 뒤늦게 깨닫고 비참해한다.

 

 

 이 소설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홍상수의 영화에 나올 법한, 부조리하고 이중적인 인간들의 상처 어린 초상이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낸다. 이후의 판단과 생각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세상 속에서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다. 사회 속에서 추구하도록 강요된 특별한 욕망을 지니지도 않은 이들은 소외되고 고립되어 있다. 대개 이들은 사회적으로도 중심에서 벗어나 외면당한 여성들이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캐릭터를 소설집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스물일곱의 늦깎이 대학생 '로라'나 서른 문턱을 넘은 나이에 하는 일 없이 신도시 오피스텔에 이사 와서 지내는 여자, 반신불수 노교수의 집으로 연락조교 노릇을 하러 다니는 대학원생 '윤양' 등의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냉소적으로 세상에 대응한다. 나아가 세상에 대해 냉소하는 자기 자신까지를 가차 없이 반성하고 해부하는 서늘함이 서려 있어, 카타르시스와 냉정한 자기반성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