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익 단편소설 『비오는 길』
최명익(崔明翊, 1903~?)의 단편소설로 1936년 [조광]지에(1936. 5∼6)에 발표된 작품으로, 병일이라는 한 인물의 눈에 비친 세계를 그렸다. 작가는 병일이라는 한 인물의 내면과 자의식을 천착하는데, 특히 주인공 병일의 심리 변화나 의식의 흐름을 성실하게 추적하는 심리소설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그는 문단과는 교섭이 없이 시종일관 실력으로 버틴 작가였다. 그가 소설을 통해 시도한 심리주의적 수법과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천착은 유항림ㆍ김이석ㆍ최정익 등 [단층(斷層)](1937)지의 동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단층]은 중앙문단과 관계없이 평양을 중심으로 활약한 구연묵ㆍ김화청ㆍ최명익ㆍ유항림 등의 창작 동인지를 뜻하며, 그 특징은 유항림의 <마권(馬券)>(단층 창간호)의 심리적 강박관념 및 고독 공포증으로 대표된다. 작품 <역설(逆說)> <무성격자(無性格者)>에 등장하는 염세적이고 무성격한 인물들은 만주사변 이후의 파시즘체제하에서 외부세계에의 적극적 참여를 단절당한 지식인들의 자의식을 암시적으로 대변하였다. 특히, <심문(心紋)>(1939)은 탁월한 심리묘사 속에 시대와 생활의 문제를 밀착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병일은 성 밖 빈민굴에 살면서 맞은편 성 밖에 있는 공장에 사환 겸 사서로 근무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집에서 공장에 이르는 길을 왕복한다. 그 왕복하는 길에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병일은 그들이 늘 노방의 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비 오는 어느 날 비를 피하려고 사진관 앞에 서 있다가 사진관 주인 이칠성과 사귀게 된다. 이칠성은 병일에게 술을 권하면서 큰 사진관을 열겠다는 그의 꿈, 사람 사는 재미를 추구하는 그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사진사의 소박한 꿈에 대해 조소하지만, 다음날 또 다시 사진관을 찾아가게 된다. 병일은 희망과 목표를 위해 분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만 지향 없이 고독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공장에서 오면 늘 책을 보던 버릇도 그만두고 병일은 신문사의 생활인으로서 면모를 생각한다.
그러나 평양에 장질부사가 돌 때 이칠성이 죽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병일은 노방의 타인은 언제까지나 노방의 타인이기를 원하게 되고, 이제부터는 더욱 독서에 강행군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소설은 병일이라는 한 인물의 눈에 비친 세계를 그린다. 그를 통해서 병일이라는 한 인물의 내면과 자의식을 천착한다. 특히 주인공 병일의 심리 변화나 의식의 흐름을 성실하게 추적하는 심리소설적인 면모를 보여주어서 주목된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심리소설적인 경향을 통해 이 작품은 1930년대 말 일제의 파시즘이라는 강대한 적 앞에서 내면으로만 파고들 수박에 없었던 지식인들의 고통, 허무, 그리고 고독을 절절히 보여준다.
병일은 매일 자신의 셋방이 있는 빈민굴과 출근지인 공장을 왕복한다. 그에게 빈민굴이나 공장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은 무의미하다. 다만 그가 매일 왕복해서 다녀야 할 길은 생활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병일의 내면, 혹은 자의식이 흐르는 길이라고 봄이 옳다. 공장에 다니면서도 병일은 매일 독서에 몰두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노방의 타인이라는 의식에 젖는다. 관념이 생활을 압도한다.
이러한 병일에 대비되고 있는 인물이 사진사 이칠성이다. 그는 남의 사진관에서 조수로 일하다가 독립하여 자신의 사진관을 경영하는 인물이며, 그가 소망하는 삶이란 사진관이 잘 되는 것, 돈을 모아서 처자와 단란한 생활을 꾸려감이다. 그에게는 관념의 유희란 존재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소시민적인 행복에 대한 추구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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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일은 이러한 이칠성의 삶의 방식을 거부하면서도 자신의 삶에는 고독만이 존재할 뿐 목표나 행복이 없다는 점에서 이칠성의 삶에 대한 경멸과 동경이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이칠성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사라지게 된다. 병일은 다시 자신의 원래대로의 방식으로 되돌아간다. 병일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즉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은 결국 절대화되어 있는 현실 앞에서는 어떠한 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병일이 독서에만 몰두하는 것은 불만족한 현실에 대해 그는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다 표현이며. 그럴 바에는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의 표현이다,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인정할 수 없음, 그것은 결국 허무주의라는 의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양 토박이인 최명익은 8ㆍ15광복 직후 평양예술문화협회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주로 역사물의 창작에 전념하면서 임진왜란을 그린 <서산대사>(1956)를 발표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는 평양문학대학에 재직하면서, 1957년에는 항일 무장투쟁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집필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의 몰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 정도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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