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대하소설 『혼불』
최명희(崔明姬,1947∼1998)가 지은 장편소설로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기념 장편소설공모’에 제1부가 당선되어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1988년 9월부터 제2부가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995년 10월까지 만 7년 2개월 동안 계속되어,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1990년 12월에 제1부와 제2부가 네 권 분량으로 [한길사]에서 출간하였다.
이후 [신동아] 연재 부분과 새로 집필한 부분이 더해지고 기존 출간 부분도 대폭 수정 보완되어, 최종적으로 1996년 12월에 전 5부 10권으로 [한길사]에서 출간하였다. 이후 작가는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투병하던 중에도 제5부 이후 부분을 구상하고 자료를 정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끝내 집필하지 못하고 타계하여, 1996년에 간행된 판이 최종본이 되었다.
「혼불」은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한 유서깊은 가문 ‘매안 이씨’ 문중에서 무너져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는 종부(宗婦)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나간 양반사회의 기품,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하였으며, 소설의 무대를 만주로 넓혀 그곳 조선 사람들의 비극적 삶과 강탈당한 민족혼의 회복을 염원하는 모습 등을 담았다. 또한 호남지방의 혼례와 상례의식, 정월대보름 등의 전래풍속을 세밀하게 그리고, 남원지역의 방언을 풍부하게 구사하여 민속학ㆍ국어학ㆍ역사학ㆍ판소리 분야 학자들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최명희는 1997년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사회 각계의 인사들이 모여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또한 최명희는 대하소설 「혼불」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의 중심 이야기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남원의 매안 마을과 거멍굴을 중심으로, 매안 이씨 가문의 삼대를 이루는 청암 부인과 그 아들 이기채 부부, 손자 이강모·허효원 부부, 그리고 거멍굴 천민인 춘복이 등이 주요 인물이 되어 펼쳐진다. 이야기는 강모와 효원의 혼례 장면을 기술한 것으로 시작된다.
둘의 결혼생활이 순탄치는 않으리라는, 예사롭지 않은 전조가 드러나는데, 실로 신부는 초야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수모를 당한다. 그도 그럴 것은 신랑 강모가 사촌누이 강실이와 상피(相避)를 범하며 비극적 사랑을 하던 터이다.
급기야 강모는 방황 끝에 만주행을 결행하고, 효원은 외로이 공규(空閨)를 지키며 매안 이씨 가문을 이끌어 가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시할머니 청암 부인으로부터 이어받는다.
청암 부인은 청상과부로서, 쓰러져 가는 가문을 일으키며 대단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로서, 매안 뿐만 아니라 민촌 거멍굴 사람들에게도 신임이 두텁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전기로, 그간 잠재되었던 반상(班常)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격동기에 힘을 잃어 가는 가문을 되살릴 책무가 효원에게 부여되기에 이른다.
한편 거멍굴 천민들을 대표하는 인물인 춘복이는 ‘변동천하’를 꿈꾸며, 양반가 처자 강실이를 사모하여 자신의 아이를 수태시키는 상징적인 행위를 행동에 옮긴다. 결국 이 때문에 강실이는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효원의 도움으로 이를 모면하는 듯 사건이 진행된다.
소설이 미완인 상황이라 사건의 전모를 이 이상 가늠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소설의 이야기가 이런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닌 터라 그 줄거리를 단언할 수는 없다. 그 줄기에서 확산된 이야기의 분량과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혼불」은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의 대하소설로,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힘겨웠던 삶의 모습과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특히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으로,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명희는 <몌별(袂別)> <만종(晩鐘)> <정옥이> <주소> 등의 단편도 썼지만, 「혼불」에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른 작품을 쓰지 않았다. 1998년 서울대병원에서 난소암으로 사망하였다. 「혼불」로 제11회 [단재문학상](1997), [세종문화상](1997), 제15회 [여성동아대상](1998), [호암상] 예술상(1998)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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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열규는 ‘전통적인 소재, 유교적인 이데올로기, 지역민속지적 기록, 그리고 가문사 등이 어울린 민족학적 서사물 또는 자연서사물’로, 소설가 이청준은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로,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등 1990년대 한국문학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작가 최명희는 이 「혼불」 완간 4개월을 앞두고 난소암에 걸렸으나 주변에 알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린 끝에 1996년 12월 완간, 2년 뒤인 1998년 12월에 죽었다. 1997년 7월, 각계 인사들이 모여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 결성되었고, 1999년에는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에 작가를 기리는 문학마을인 ‘혼불마을’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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