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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훈 장편소설 『칼의 노래』

by 언덕에서 2009. 9. 15.

 

김훈 장편소설 『칼의 노래』 

 

 

김훈(金薰.1948~ )의 장편소설로 2001년 간행되었다. 같은 해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역사적 인물인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로 하여 전개되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민족 영웅 이순신을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해 내었다. 이순신의 전기적 사실을 꼼꼼하게 복원한 것 이상으로 전투에 임하는 심정이나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장군으로서의 고뇌는 물론이고 혈육의 죽음을 대하는 심정, 여인과의 통정 등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까지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이 작품을 통해 묘사된 이순신은 무엇보다도 ‘칼’로 상징되는 무(武)의 단순성이 최고도로 집적되어 있는 인물이다.

 한 국가의 운명을 단신의 몸으로 보전한 당대의 영웅이자, 정치 모략에 희생되어 장렬히 전사한 명장 '이순신'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당대의 사건들 속에서 '이순신'을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 표현해 내며, 사회 안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공동체와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선 자들이 지녀야 할 윤리, 문(文)의 복잡함에 대별되는 무(武)의 단순미, 4백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달라진 바 없는 한국 문화의 혼미한 정체성을 미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명량 Roaring Currents> , 2014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원균이 이순신을 밀어내고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도원수 권율은 원균에게 곤장을 쳐서 부산을 공격하라고 명한다. 결국 원균이 칠천량으로 진군한 왜선들에 의해 대부분의 함선과 병력을 잃고 전사하게 된다. 명ㆍ일 간의 강화 회담이 깨어지자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 정유재란 때 원균은 참패한 것이다. 다급해진 선조와 권율은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여 전쟁에 복귀시킨다.

 이순신은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부수어 승리로 이끈다. 이순신은 적들과 싸움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모친상을 당하게 되고 내륙의 적들 중 일부가 아산으로 들어가 장군의 둘째 아들 '면'을 죽이는 등 개인적인 수난과 고통은 끊임이 없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선조는 곽재우, 김덕령 등 전쟁영웅들이 향후 그의 위상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사약을 내리거나 옥사시킨다. 그리고 선조는 가장 혁혁한 전쟁영웅인 이순신에게는 전공을 인정하여 향후 사형을 면제한다는 '면사[免死]' 첩을 내리나 이순신은 무관심할 뿐이다. 다음해 고금도로 진을 옮겨 철수하는 적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적군을 기습하여 혼전 중 유탄에 맞아 이순신은 전사한다.

 북으로는 난을 피해 쫓겨 간 조정이 있고, 동으로는 히데요시의 정치적인 칼이 있으며, 서로는 명나라가 있다. 유일하게 열려 있는 남쪽 바다에서 이순신은 죽을 자리를 찾는다. 북의 조정과 동의 히데요시 그리고 서의 명이 모두 그곳에서 명분을 찾고 있음을 알기에 그 허깨비 같은 명분들의 소실점으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세웠다.

영화 <명량 Roaring Currents> , 2014 제작

 

 그 모든 명분들을 죽이는 죽음으로, 이순신의 그런 실존적 고뇌의 중심에는 칼이 있다. 그의 칼은 적의 목을 베기 위한 것이지만 적을 규정하는 것은 칼이 아니다. 자신이 겨누어야 할 대상과 명분을 칼은 스스로 얻지 못한다. 그것을 정해주는 것은 정치다. 북의 조정으로부터 교시에 담겨 끊임없이 들려오는 선조의 선병질적인 칭얼거림, 명의 장수 진린의 거들먹거림, 히데요시의 정치적 야욕과 죽음 등이다. 칼을 다스려 그 방향을 정하고 명분을 실어주기 위해 그들은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작가는 삶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삶의 긍정을 내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 김훈은 삶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삶의 긍정을 내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소설은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시작할 무렵부터 임진왜란 중 장렬하게 전사하기까지의 삶을 당대의 국내외적 사건 속에서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자신의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과 무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16세기 동아시아의 한복판에서 이순신과 그의 칼은 고립무원이다. 왕은 자신을 버렸고 백성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다. 결국 이순신은 칼의 논리를 따른다. 자신의 칼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기면서. 한번 들어 쓸어버리니, 강산은 피로 물들이게 된다. 그가 쓸어버리고자 했던 것은 바다 가득 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남김없이 쓸어버림으로써 칼의 논리가 비로소 칼의 노래가 되는 그 모든 헛것과 그 헛것들의 무의미라고 작가는 표현하고 있다. 신화 속에서 건져진 이순신이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작가의 독특한 문체 덕이다.

 묘사와 설명의 경계를 없앤 쐐기 같은 문장으로 그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 그리고 그 안에 어려 있는 심리적인 무늬의 색까지 빈틈없이 짜낸다. 그리하여 영웅담과 그에 어울리는 드라마를 거부하고 그가 얻은 것은 풍경과 내면을 한 문장에 담아 전하는 새로운 서술자다. 그 새로운 서술자가 전하는 이순신의 모습이 새로운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