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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상우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

by 언덕에서 2009. 9. 3.

 

박상우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

 

박상우(1958~ )의 중편소설로 1998년 [문학사상]지에 발표된 작품이다. 인간의 내면에 담긴 세속적인 욕망을 섬세하게 그린 짧은 풍속도이다. 이 작품으로 박상우는 1999년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은 철학이 빈곤한 우리 문단에 새로운 충격을 주는 작품으로 주인공인 나의 모습은 삶의 무의미성과 현대인의 방향 상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반복적인 모티프로 나타나는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제는 힘겹게 오늘을 살아가는 작중인물들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래에 도전하는 실존적인 삶이다. 1980년대의 정치적 부채의식에서 출발한 작가의 소설 세계는 한 단계 성숙하여 일상적 삶의 가치발견에 이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민수)는 레포츠 용품 수입업체의 영업사원이다. 자신을 벌레처럼 취급하는 형의 17층 아파트에 얹혀 살며 매일 백화점의 5, 6층에 있는 매장에 가서 영업실적을 확인해야 하고, 그 결과를 11층에 있는 회사에 올라가 보고해야 한다.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에게는 지상의 공간이 인간의 온갖 속물스러움이 판치는 죽음의 장소로 여겨진다. 나는 지상에 편입되지 못하기에 지상 위로 올라가고자 한다. 나에게는 신화 속의 시지프스처럼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나 용기가 없다.

 모든 행위의 궁극적 좌표를 잃은 채 방황하다가 백화점 안내사원인 주희를 만난다. 그녀는 화려한 직업과는 달리 초라한 옥탑방에서 산다. 그러면서도 욕망의 끈을 줄기차게 간직한다. 엄마는 갑자기 돌아가셨고, 소아마비인 여동생은 이모집에 맡겨져 있다. 집다운 집과 가족다운 가족이 없는 그녀는 비록 그것이 인간적인 타락일지라도 지상의 주민이 되고픈 꿈(희망)을 가지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간다. 나는 진정한 시지프스를 닮은 그녀를 만나 '운명을 멸시하고 그것에 저항하고 싶은 용기'가 일시적으로나마 생겨난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체념과 비관에 빠진 '거세당한' 시지프스인 나와 지상으로 끊임없이 내려가려는 '꿈꾸는' 시지프스인 그녀는 서로의 어긋난 꿈 때문에 결국 헤어진다. 그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고통을 자각하기보다 그것에 길들여지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결혼을 하고 대기업의 홍보실로 직장을 옮겼어도 나는 여전히 거세당한 시지프스들의 세계에 안주하고 있다.

 

 


 사람들은 남들과는 다른 고고함으로 살고픈 마음, 그리고 남들 사는 대로 허위와 가식이 판 치는 세상에서 나도 함께 판 치면서 행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모순스럽게 안고 산다.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은 형네 집에서 온갖 눈치를 먹으며 얹혀살고 거기에 더 얹혀서 백화점에 취직해 근근히 사는 주인공과 그 백화점에서 안내데스크를 맡아보고 있는 3층 양옥집 옥상 위의 방에서 살고 있는 한 여자의 마주침과 엇갈림을 그리고 있다.

 

 

 의미없고 비루한 것인지 알지만 매일같이 백화점 끝 층으로 올라가야하는 남자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이 아닌 줄 알면서 끝없이 지상의 삶으로 내려가려고 애쓰는 여자가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 옥탑방이다.

 이 소설은 삶의 숭고함와 삶의 현실 사이의 괴리처럼 우리는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여자는 끝내 가건물인 옥탑방을 떠나 더러운 지상의 집에 들어간다.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의 축소판을 설명하고 있다.남자와 여자가 끝내 엇갈리고만 옥탑방처럼 사랑이라는 것 낭만이라는 것은 이렇게 안타깝고 아름다운 가건물임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