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 장편소설 『임꺽정(林巨正)』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 1888∼1968)의 장편소설로 「임꺽정전」이란 제목으로 1928년 11월 21일∼1939년 3월 11일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1940년 [조광] 10월호에 마지막으로 발표되었으나 미완성으로 끝났다. 현재 유일하게 결정본으로 구할 수 있는 사계절판 「임꺽정」(전9권)은 지난 1948년 전6권으로 출간된 을유문화사판을 현대표 기법으로 고쳤고, 벽초가 지난 1940년 [조광]지 10월호에 발표한 부분(200자 약 85장)을 마지막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벽초 홍명희가 광복 직후 월북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겼고, 북한에서도 완성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조선시대 최대의 화적패였던 임꺽정 부대의 활동상을 그린 역사소설이다.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가장 방대한 규모의 대하장편역사소설로 봉단편ㆍ피장편ㆍ양반편ㆍ의형제편ㆍ화적편 등 5편으로 구성되었다.
봉단편ㆍ피장편ㆍ양반편에서는 화적패가 출몰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시의 혼란상을 폭넓게 그려나가면서, 임꺽정의 일생을 중심으로 하여 그와 연관된 이봉학ㆍ박유복ㆍ배돌석ㆍ황천왕동이ㆍ곽오주ㆍ길막동이ㆍ서림 등 여러 인물들의 이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의형제편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특정한 계기를 통해 마침내 의형제가 되어 청석골에서 조직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화적편은 그 후 이 집단이 벌이는 일련의 활동상이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최고의 우리말사전’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토속어 구사가 뛰어나며, 근대 서구소설적 문체가 아닌 이야기식 문체를 통해 박람강기의 재사인 작가가 구연하는 한 판의 길고긴 이야기이다. 당시 홍명희는 조선의 3대 재사로 칭송받아 왔다. 18∼19세기에 융성했던 야담과 민간풍속ㆍ전래설화ㆍ민간속담 등을 풍부하게 살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골 백정인 임돌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놈’인데 부모를 걱정시킨다고 하여 ‘걱정’이라고 하던 것이 ‘꺽정’으로 되었다. 꺽정은 열 살 때 갖바치(가죽신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아들과 결혼한 누이를 따라 서울로 와서 갖바치와 같이 살면서 그에게 글을 배웠다.
양주팔은 본래 학식이 높은 데다 묘향산에 가서 도인 이천년에게 천문 지리, 음양 술수를 배우고 와서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학문에 두루 통달하여 당대의 명망 높은 조광조 등과 교유했다.
꺽정이는 글공부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검술을 익혔다. 이때 박유복과 이봉학은 임꺽정과 의형제가 되었다.
갖바치는 기묘사화를 보고 나서 혼란스러운 정국을 예견하며 임꺽정을 데리고 전국을 유랑했다. 꺽정은 곳곳에서 백성들의 고난에 찬 삶의 모습들을 접하게 되며, 백두산에 가서 황천왕동이 남매를 만나고 황천왕동이의 누이 운총과 결혼하여 양주로 돌아와 아들 백손을 낳고 평범하게 살았다.
임꺽정은 서른다섯 살이 되어 여러 도적과 합세하여 봉산 황주 도적이 되며, 38세 때 6명의 산적 두령과 함께 의형제 결의를 맺었다. 그들은 황해도 산적들의 소굴인 청석골을 차지해서 도적질을 했다. 평산에서 관군과 접전해서 승리하고 그러는 가운데 한양 나들이를 갔다가 여러 첩을 맞이하여 방탕하게 지냈다.
그러다 다시 청석골로 돌아와서 위기에 처했다. 부하와 부인이 잡히자 전옥을 파괴하고 위험을 느끼자 소굴을 여러 군데로 나눠만들었다. 그 해 관군과의 접전을 벌인 평산 싸움에서 관군이 패하고 임꺽정이 승리했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마지막으로, 임꺽정이 잡혀서 처형되는 생애의 마지막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임꺽정(林巨正)>은 전설적 소설이다. 일제 시대에 나온 우리 근대 문학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민족문학적 가치가 뛰어나며, 최초의 본격적 역사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이 일반에게 존재조차 소개되지 못한 것은 이 소설의 작가인 홍명희가 월북작가(越北作家)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월북작가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이 소설도 1991년에 와서야 비로소 한 출판사에 의해 열 권짜리로 간행, 소개되었다.
홍명희는 일제 시대에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라 불렸던 사람이다. 1888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인 금산 군수 홍범식이 1910년 한일합방에 항거하여 자결해 버리자, 이에 충격을 받고 중국, 남양 등지를 7년 동안 방랑하며 지내다가 고국에 돌아와 연희 전문(현, 연세대학), 중앙 불교 전문(현, 동국대)의 교수를 역임하다 해방이 되면서 [조선문학가동맹]의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가, 영원한 남북의 분단을 막고자 협상을 위해 북으로 간 이후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그가 장장 12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쓴 소설 <임꺽정>도 묻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임꺽정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경기도 양주골 백정인 ‘임돌’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름도 원래는 ‘놈’이었는데 부모를 걱정시킨다 하여 ‘걱정’이 되었고, 음이 변하여 ‘꺽정’이 되었다. 그가 살았던 조선조 명종대(明宗代)는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하면서 고달픈 삶을 사는 백성들이 많았다. 이들 중 일부는 집단을 이루어 도적질 등을 하면서 목숨을 이어가기도 했는데, 특히 황해도 구월산 근처에는 산적의 무리들이 많았다. 엄격한 신분 사회였던 당시, 임꺽정은 최하층 계급인 백정으로 태어났으나, 타고난 장사(壯士)인데다 사람됨이 녹록치 않았기에 서른다섯 살에 여러 도적과 합세하여 봉산 황주의 도적이 되고, 38 세 때 6 명의 산적 두령과 의형제를 맺고 황해도 산적들의 소굴인 청석골을 차지해서 활동하다가 드디어 구월산 산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도적질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썩은 관리와 못된 부자들을 혼내 주고 그들로부터 빼앗은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의적(義賊)’이라고 불렸다. 임꺽정의 세력이 너무 커지고 지방 관리가 습격을 당해 피해를 보는 일이 잦아지자, 조정에서는 몇 차례 군사를 파견한 끝에 이들을 진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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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사회 변동의 전모를 그린다는 역사소설의 독특한 성격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둘째, <임꺽정>은 방대한 분량의 장편 역사소설로서 인물 설정, 세부 묘사가 1930년대 다른 역사소설과는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셋째, 조선 시대의 민중들의 삶 의식과 정조를 일관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넷째, 상층 사회의 타락에 대한 반성과 하층 사회의 변혁 의지를 통한 사회 개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작가의 민중 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다.
이러한 사실은 1930년대에 성행한 한국 역사소설을 현실 도피나 비유적 장치, 복고주의로만 특징지을 수 없는 작품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의 사실주의 정신은 1970년대에 들어서 <장길산>이나 <객주> 등의 장편 역사소설로 계승되었다.
이 소설은 여러 번 집필이 중단되기도 했고, 1940년 [조광] 10월호에 마지막으로 게재되기까지 약 12년이 걸렸지만, 유감스럽게도 작가는 이 작품을 다 완성하지 못했다. 실제로 쓰여진 것은 관군이, 체포된 임꺽정의 모사 ‘서림’을 앞세워 꺽정의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출동하는 부분에서 미완성인 채로 끝나 있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타계해 버렸기 때문에 이 소설은 영원한 미완성품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이 소설의 규모가 워낙 크고, 구성이 웅장하며, 옛날 이야기풍의 구수한 전래 민담을 풍성하게 담고 있는 점, 순수한 우리말 어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는 점 등이 오늘날의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문학적 성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가치는, 역사 속에서 푸대접받고 있던 서민 백성들의 삶을 다시 새롭게 묘사하고, 그들을 우리들 눈 앞에 생생히 부활시킨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족문학’이란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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