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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천승세 단편소설 『황구의 비명(黃狗의悲鳴)』

by 언덕에서 2009. 8. 20.

 

천승세 단편소설 『황구의 비명(黃狗의悲鳴)』 

 

 천승세(千勝世,1939∼ )의 단편 소설로 1974년 [창작과 비평]지에 발표되었고 1975년 제2회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천승세는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신태양사 기자, 문화방송 전속작가, 한국일보 기자를 지내고 제일문화흥업 상임작가, 독서신문사 근무, 문인협회 소설분과 이사를 역임했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점례와 소>가 당선, 또한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물꼬>와 국립극장 현상문예에 희곡 <만선>이 각각 당선되었다.
 한국일보사 제정 제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창작과 비평사에서 주관하는 제2회 만해문학상, 성옥문화상 예술부문 대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인간이 인간을 찾는 정(精)의 세계를 표현한다. 한결같이 인정에 바탕을 둔 인간 사회의 비정한 세계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족애, 인간애에 바탕을 둔 천승세의 문학적 자세나 역사의 그늘에서 상처가 남아있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끌어내어 뚜렷이 드러내 보이고 있는 현실 인식은 오늘날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지 못하며 헤매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가 천승세(千勝世, 1939-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아내의 돈을 떼어먹고 도주한 ‘은주’라는 여인에게 돈을 받으러 간다. 은주는 내가 의정부에서 살 때 세를 들어 살던 여자였는데, 돈놀이를 했던 아내와는 무척 친한 사이였으나, 어느 날 밤 원금과 밀린 이자를 합쳐 15만 원을 떼어먹고 달아난 여자이다. 아내가 그런 은주를 찾아내어 돈 받는 일을 나에게 맡겼다.

 은주는 지금은 ‘담비 킴’이 된 양색시이다. 아내가 그려준 약도를 보며 걷다가 들른 구멍가게 주인은 용주골을 안면 몰수, 예의 사절, 악발 교육 등 세 단어로 빗대어 표현하였다.

 개울을 건너고 솔밭 길을 벗어나 마을 어귀로 접어들면서 한 노파를 만나게 되었다. 노파는 ‘무더위보다도 더 답답하고 처량한 천을 못에서부터 엉덩이까지 길게 휘감고’ 있었다. 그것은 ‘내 손주년을 찾는다’는 광고였다.

 그 애절한 노파의 사연도 뒤로 한 채, 나는 은주를 찾아 나섰다. 은주는 나를 보자 기겁을 하고 만다. 날이 저물어 은주의 방에 묵게 된 나는 은주로부터  만만찮은 도전을 받게 된다. 별일 없이 밤을 보내고 은주를 고향으로 보내려 하나, 거부하는 은주는 비 오는 새벽 길을 뛰쳐나갔다.

 이에 뒤따르며 같이 걷다가 아제 만났던 노파의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 나는 그 노파를 묻으며 은주에게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을 계약할 돈 중 오만 원쯤은 보태어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때 덩치 큰 수캐와 조그만 체구의 암캐(황구)가 있었다. 조그만 체구의 황구는 수캐의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죽어갔다. 이에 은주는 이곳을 떠나겠다고 외쳤다.

 

 작가의 시선은 1970년대 산업화, 대화의 그늘인 도시 변두리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하류 인생으로 옮겨와 개인과 사회의 갈등과 현실의 모순을 좀 더 일상적인 차원에서 그려낸다. 소시민의 시선을 통해 양공주의 삶을 묘사한〈황구의 비명〉은 외세의 제국주의적인 자본의 위세에 대한 비판과 함께 속물적인 소시민의 욕망을 묘사하는 가운데 당대의 현실을 서글프게 비유하고 있다.

 

 

 소설은 구조적인 면의 끝 부분에서 황구를 등장시킨 것은 다소 허위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과, 원색적인 표현이 매끄럽지 못한 면으로 지적되기도 하나, 황구의 비명을 듣고, 노파의 죽음을 보면서까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고자 은주를 모질게 대할 수 없는 주인공의 심경에 대하여 수긍이 간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 중 ‘은주의 젖은 등허리로부터 보리밀 익는 듯한 비린 체취가 풍겨오는 것’은 은주가 찾아가야 할 단순한 고향이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들 모두 가슴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어야 할 건강한 고향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작가 천승세가 추구하는 조국의 상징적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