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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전상국 중편소설 『아베의 가족』

by 언덕에서 2009. 8. 28.

 

전상국 중편소설 『아베의 가족』  

 

전상국(全商國, 1940∼ )의 중편소설로 1979년 [한국문학]지에 발표되었다. 1979년 한국문학작가상과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작으로 1980년 간행된 작품집 <아베의 가족>의 표제작이다. 이 작품은 전상국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구성은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와 3부는 4년 전 미국으로 이민간 아베의 가족 중 6ㆍ25전쟁의 비체험 세대로서의 작중화자인 ‘나’(김진호)가 미군(美軍)이 되어 고국 땅을 밟은 뒤 이복형 아베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2부는 김진호 어머니의 수기 형식으로 6ㆍ25전쟁 직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전쟁의 폭력성과 분단의 비극, 그리고 비극 해결의 문제 등 분단소설의 여러 주제들을 함께 다룬 우리 국문학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1970년대 춘천 풍경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온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4년만에 한국 파견 지원병이 되어 돌아온 나(진호)는 들뜬 마음으로 첫 외출을 한다.

 이민을 간 후 가족들은 황량한 벌판에 뿌리 없이 버려져 시든 나무처럼 변해 버렸다. 어머니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심한 우울증 환자가 되어 멍청한 얼굴의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의 그런 변화는 이민을 가면서 버리고 간 아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가족들은 그 누구도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를 꺼려한다.

 나는 어느 날 어머니의 트렁크에서 어머니가 쓴 수기를 발견해내고 여동생 정희와 함께 그것을 읽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는 춘천에서 강 하나를 건너 삼사십 리를 들어간 샘골 마을의 최 부면장네로 시집을 갔다. 서울에 유학가는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도 잉태하고 시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행복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뜻밖에 6ㆍ25가 터져 그 와중에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죽게 되고 남편도 인민군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인민군들이 퇴각하고 진주한 흑인 병사들에게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던 나와 시어머니는 강간을 당했다. 노린내가 가는 짐승들에게 욕을 당한 나는 결굴 8달만에 아이를 낳았으나 그 아이는 정상이 아니었다. 4살이 넘어서 겨우 걷기 시작했지만 사지가 뒤틀려 아주 어렵게 걸었고 입을 열어 내는 소리는 더듬거리는 '아...아...아베'라는 소리뿐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은 소식이 없고, 병신자식을 바라보며 나는 그 시커먼 짐승들(흑인 병사)을 칼로 퍽퍽 찔러 검고 끈적끈적한 피를 받아 이웃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충동과 분노를 느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내가 대문 밖에서 놀던 아베를 안고 집으로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사내는 몇 달 동안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사내는 다른 사람들이 병신이라고 꺼리는 아베를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 사내와 나의 관계를 의심하며 함께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집을 쫓겨난 나는 서울에서 그 사내(나의 아버지 김상만)과 결혼을 했다. '

 아버지는 아베를 자기 자식처럼 사랑했다. 아베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전쟁 중의 그의 경험- 사람들을 죽인-에 대한 일종의 속죄 심리였고 구원 의식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는 우리 형제 4남매가 태어났으나 집안은 아베로 인하여 항상 음습하였고, 나는 그러한 환경을 핑계로 친구들과 함께 처녀를 윤간하는 등 점점 비뚤어졌다. 그러던 중 6ㆍ25 때 헤어졌던 고모를 만나게 되고 미군 병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고모로부터 이민 초청장을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아베에게 멀어지고 어머니는 아베를 버리고 가야만 하는 고민에 싸이게 되었다.

 어머니의 수기에는 아베의 행방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나는 옛 친구와 어울려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뿌리 없이 사는 미국 생활과 아베의 탄생의 비밀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민을 떠나기 전날, 아베를 데리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가 비행기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야 돌아왔다. 아베를 버린 곳은 어디일까?

 다음번 외출하는 날 나는 미국인 친구 토미와 함께 샘골을 찾았다. 그러나 그 마을은 댐 공사로 인하여 이미 수몰지구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언덕에 몇 채 남은 집 가운데 구멍가게에 앉아 그 가게 노파에게서 최 부면장네 사정 이야기를 듣는다. 최씨네 할머니는 이미 4년 전쯤 돌아가셨다는 것과 며느리를 내좇은 것은 그 젊은 며느리의 앞날을 생각해서 일부러 그러했다는 것, 그리고 손자까지 내보낸 것을 무척 후회하다가 죽었으며, 그 후 며느리가 병신 자식을 데리고 나타나 시어머니의 무덤에서 애통해하고 떠나갔다는 사실 등을 알려준다. 나는 아베의 행방을 찾는 일은 그 할머니의 무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소설가 전상국(全商國, 1940&sim; )

 

 작중 화자인 김진호는, 이민 생활 중 어머니가 겪었던 것과 같은 난행을 당하는 누이를 보며 자신도 역사적 과거로부터 스스로의 삶이 무관할 수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누이가 당한 폭행은 전란 중에 어머니가 당한 폭행의 변주(變奏)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버리고 온 의붓형 '아베'를 찾아 한국에 나온다. 그는 '아베'를 '황량한 들판에 던져진, 그 시든 나무들의 꿋꿋한 뿌리'로 인식하고, '가난'과 '범죄'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가 있는 곳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즉, 이러한 '나'의 형상을 통해서 개인의 삶이 그 개인 이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개인을 포용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최창배라는 독자의 집에 시집가서 6ㆍ25를 겪게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6ㆍ25는 '폭행'으로 상징되며, 그 일에서 태어난 '아베' 때문에 그녀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다. 그 때는 '아베'란 존재로 인해 운명과 싸우는 것만이 그녀의 삶의 의미였었다. 그리고 그러한 싸움의 부재 속에는 자신의 삶도 부재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아베'는 미군에게 강간당한 '나'의 어머니의 아들이며 '나'의 의붓형이다. 말하자면 '아베'는 비극적 운명의 상징적 존재이며, 어머니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하게 하는 족쇄와 같은 6ㆍ25의 잔재이다. 즉, '천형(天刑)'이나 다름없는 '아베'의 존재로 인해서 어머니는 그 역사적 비극과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간 가족들에게도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걸머지웠다. 즉, '나'의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세계 일등 국가의 시민이 되었어도 여전히 '나'와 가족들은 '아베'를 떠날 수 없었다. '아베의 가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