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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권정생 장편동화 『몽실 언니』

by 언덕에서 2009. 8. 21.

 

 

권정생 장편동화 몽실 언니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 ~ 2007)의 장편동화로 1981년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시골교회 청년회지에 처음 연재되어 3회까지 연재되다가 [새가정] 잡지로 옮겨 연재되었다. 1984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고 1990년, 2000년에 개정판을 나왔으며 2001년 양장본으로도 출간되었다. 8ㆍ15광복의 혼란과 6ㆍ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지만 모진 세파를 꿋꿋이 헤쳐나가는 '몽실'이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권정생의 대표작이다.

 [새가정]에 연재할 당시 9회, 10회에 인민군 이야기가 실린 것이 문제가 되어 일부 내용이 삭제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본 작품이다. 2000년에는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하였다. TV 드라마로도 방영된 바 있고, 1984년 처음 간행된 이래 어린이책으로는 이례적으로 50만 부 이상이 팔렸다.

 

 

MBC TV 드라마 [몽실 언니], 199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본에 살던 몽실네는 해방이 되자 고향인 살강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나 해방 뒤의 우리 농촌은 가난과 굶주림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돈벌러 나가고, 가난에 견디지 못한 어머니 밀양댁은 마을을 도망쳐 새로 시집을 가는 바람에 몽실에게는 새아버지가 생겼다.

 처음에 새아버지는 몽실이를 귀여워하지만, 동생이 태어나자 찬밥 신세가 된다. 게다가 친아버지가 새아버지집을 찾아오던 날, 새아버지와 엄마가 싸우다가 몽실이를 밀어 다리병신이 되고 만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다시 친아버지집으로 온 몽실이는 아버지가 새장가를 가 북촌댁이라는 새어머니를 얻게 된다. 몸이 약해 보이는 새어머니는 몽실이에게 따스하게 대해 주고, 몽실이도 점점 새어머니에게 정이 든다. 야학에 다니면서 “자기의 길은 자기가 알아서 걸어가라.”는 선생님의 말을 가슴에 새긴다.

 새어머니는 임신을 하게 되고, 전쟁이 일어난 뒤인 7월에 동생 ‘난남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인이 되었고, 새어머니는 난남이와 몽실이를 남기고 죽고 만다. 그 후 몽실은 동생 난남이를 데리고 친어머니를 찾아가 살다 다시 헤어져 식모살이를 하면서 난남이를 키운다.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만 다리를 다쳤다. 친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말았다. 몽실이의 슬픔과 고생은 그치질 않았다.

 병으로 신음하던 아버지도 끝내 몽실의 곁을 떠난다. 그러나 몽실이는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간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면서....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등에 업혀 자랐던 난남이는 요양원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난남이도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엄마가 날 낳아준 게 고마워. 난 언니가 좋으니까.”

 

 

MBC TV 드라마 [몽실 언니], 1990

 

 

 

 이 동화는 이 책을 지은 권정생의 체험적 수기와 같은 글이다. 1984년 발표. 권정생은 책의 주인공 몽실이가 겪어온 것과 같은 불행을 몸소 겪어온 사람이며, 몽실이처럼 세상을 아름답고 맑게 보는 사람이다.

 전쟁으로 가정과 사회가 파괴되는 가운데 절망보다는 희망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몽실이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는 동화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남의 불행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그 불행 뒤에는 아주 큰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포용적인 인간을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광복 이후의 혼란과 전쟁의 아픔을 알게 하는 데 좋은 책으로 평가받아 초등학생과 청소년들의 권장도서가 되고 있다.

 

 

 지은이 권정생의 삶이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의 삶이 불행의 연속이었지만, 그들은 절대로 절망하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이 있고, 그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 글을 통하여 우리는 고난에 찬 인생을 본다. 그러나 결코 좌절하지 않는 인간의 용기를 본다.

 이 책의 지은이 권정생의 소망은 갈라진 이 땅이 하나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예배당 종지기로 있던 그 마을에서, 지금은 차임벨이 있어 종을 칠 일은 없지만, 몸 하나 누일 작은 방에서 따스한 인간의 마음을 동화 속에 담아 내는 그는 작품을 통해 지금도 우리 마음의 종을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