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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by 언덕에서 2007. 2. 21.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조정래(趙廷來. 1943~ )의 대하소설로 전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판사가 밝힌 판매 부수만도 2백만 부, 집필기간 6년 2개월이며 원고 장수 1만7천여 장으로 등장인물은 160여 명이다. 쓰는 동안 역사학자들과 토론회가 열린 소설로 완간된 지 1년 5개월만에 작품론이 따로 책으로 나온 작품이다.

 분단 문학의 최고봉으로 1983년 월간 [현대문학]에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1986년 한길사에서 제 1부 한의 모닥불이 3권의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문단 및 독서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원고지 1만 6천장으로 완결된 이 작품은 "지금까지 쌓아온 분단 주제의 특수한 소재 추구 작품 가운데 단연 역사적인 한 획을 긋는 작품"(문학평론가 임헌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은 여순 반란 사건에서부터 6ㆍ25 전쟁까지 몇 년 동안에 벌어졌던 좌우익의 이념적 갈등과 투쟁을 전남 벌교를 중심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현대문학]지에 1983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하여 1989년 10월 완간되기까지 거의 7년여에 걸쳐 쓰여졌다.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한의 모닥불, 2부는 민중의 불꽃, 3부는 분단과 전쟁, 4부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이 작품은 우리의 분단 상황을 거시적 시각으로 집요하게 그려낸 대하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분단 현실을 다루어 온 조정래의 중ㆍ단편들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진 문학적 사실들이 종합화되고 거시화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분단 문제에 대한 작가 의식이 이 작품에 이르러 총체적인 안목으로 엮어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분단 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

  이 소설이 지닌 의의를 간추려 보면, 우리 근대사의 큰 흐름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과 민족 분단의 배경을 좌우 정치 세력의 대립 및 관념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설명하지 않고 우리 삶의 근원적인 한과 넋의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민족의 분단과 상잔의 역사적 현실이 아직도 우리 삶의 내부에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영화 [태백산맥], 199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1부 한의 모닥불 [1권~3권]
  여순반란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1948년 12월 빨치산 부대가 율어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하는 데에까지의 과정이 그려져있다. 소석의 첫 장면은 1948년 10월 24일 밤이다. 여순 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세력인 군경의 수중에 들어가자, 좌익 반란군들은 산 속으로 퇴각한다. 이때 정하섭이 상부의 밀명을 받고 벌교로 잠입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현씨네 제각에서 살고 있는 무당딸 소화를 이용한다.
  소화는 정하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며 감시를 피해 정하섭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불과 나흘 전만 해도 벌교는 좌익의 수중에 들어 있었지만 여수에서 국군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거점으로 하여 좌익 반군들이 순천까지 그 세력이 확대하개 된다.
  남로당 조직에 연결되어 있던 벌교 지역 좌익 세력들이 반군에 합세하여 벌교를 장악한 것은 1948년 10월 20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흘을 견디지 못하고 군경 진압군에 의해 밀려서
  벌교를 포기하고 산 속으로 퇴각하게 된 것이다. 벌교를 장악했던 군당 위원장 염상진은 하대치, 안창민등고 함께 조계산으로 쫓겨 가게 되었지만 진압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궁벽한 율어면을 점거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한후 그곳을 해방구로 선포하고 조직과 세력을 정비하게 된다.  군경 진압군은 벌교를 장악했던 좌익 반국 세력을 몰아낸 후, 청년단의 도움으로 마을에 남아 있는 좌익 세력과 부역자들을 찾아 내기 위해 힘쓴다. 그 바람에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도 좌익과 우익으로 서로 갈라지고 원한이 겹쳐서, 반란군과 함께 산 속으로 가 버린 입산자 가족들은 온갖 곤욕울 치르게 된다.
  벌교의 유지로서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김범우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처단되고 고문을 당하는 등 고통을 받게 되자 희생을 줄여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김범우의 개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총살을 당한다.
  벌교 지역에서는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고 혼란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수습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 친일파였고 해방 직후 제헌국회의원이 된 최익승을 수숩위원회 대표로 선임하게 된다.  김범우는 최익승을 찾아가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좌익을 두둔하는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구속 되었다가 순천으로 송치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루는 여러 가지 삽화 가운데 청년단 감찰부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양효석, 송성일,등 우익 희생자 아들들을 모아 이른바 멸공단을 조직, 밤이면 입산자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부녀자, 노인을 가리지 아니하고 잔인한 보복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하대치의 아버지 판석 염감은 목숨을 잃는다. 정하섭이 좌익에 가담했기 때문에 좌익 세력이 벌교를 장악했을 때, 악덕 지주로  처단되지 않고 살아남았던 양조장 주인 정현동은 다시 군경찰이 들어오자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갇힌다.  최익승은 정현동을 빼내주는 조건으로 양조장 지분 절반을 차지하고ㅡ 정현동은 벌교에 진주한 토벌대의 후원회 회장을 맡는다. 

 아들 김범우가 순천 경찰서로 송치되자 그의 부친 김사용은 김씨 문중의 힘을 빌려 아들을 석방시키고 경찰서장 남인태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킨다.  벌교가 수복되자 좌익 잔당이 처단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벌교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이다.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된 간척 사업으로 일찍부터 일제 자본이 침식한 이 지역은 토지를 둘러싸고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쌓였던 곳이다.  이런한 사회적 모순이 해방 직후 좌우익의 이념적 대립으로 치닫고 결국은 계급의 대립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사회의 한 단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벌교를 당악했던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의 존재와 그 사회적인 실체가 드러나며, 이에 대응하는 토착지주와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 세력이 군경의 힘을 업고 벌이는 여러 형태가 잘 그려져 있다. 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비참한 입산자 가족들의 삶과 함께 중도적인 입장의 지식인 김범우 등의 활동은 대립과 갈등의 사태 해결을 위한 입장의 지식인 김범우 등의 활동은 대립과 갈등의 사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제2부 민중의 불꽃(4권~5권)
  제 2부는 <민중의 불꽃>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여순 사건이후 약10개월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이 1949년 1월의 소작농 봉기를 전후로 하여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제2부의 내용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토지의 소유와 연관된 농민들의 좌절과 분노이다.  벌교 지방은 농민이 젠체 주민의 8할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부분이 지주에게 목을 매달고 있는 소작농이다. 농민들은 해방된 후 토지개혁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농지개혁을 하지 못하자 불만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
  북에서는 이미 농지개혁이 실시되엇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주들은 오히려 농지개혁 이전에 소유 농지를 처분하고자 한다. 소작인 모르게 논을 처분한 고흥 지주 서운상은 불만을 품은 소작인 강동기가 삽으로 내리찍은 바람에 중상을 입었고, 강동기는 그 길로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반면에 서민영은 지주로서 자기 소유의 논을 모두 소작인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하여 협동농장을 운영하기도 하였고, 농지문제의 심각성 및 농민들의 참상을 국군 벌교 지구 사령관 심재모에게 들려주어 심재모로 하여금 농민들의 농지개혁 요구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한다. 염상진 등 좌익 반란군은 율어 해방구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의 환영을 얻고, 그들의 지원으로 자신들이 내세운 혁명 과업을 수행한다. 벌교의 농민들에게는 이러한 율어 지역의 변화가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염상진 빨치산 부대는 벌교읍을 습격하여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고루 나눠 먹도록 하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령관 심재모는 용공 혐의로 서울로 압송되고 그 후임으로 백남식이라는 관동군 출신의 친일 경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벌교 지역 주둔군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백남식은 하숙집 주인 과부 송씨와 그녀의 딸을 농락하고 토벌군이 철수하게 되자 송씨의 딸을 속여 끝내 결혼을 한다. 그는 송씨 재산 절반을 차지하고 그 돈으로 자신의 병과를 헌병으로 바꾸어 후방 근무를 택한다. 그의 행태는 당시 부패한 군의 실상과 그 비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때 벌교의 유지 김범우는 벌교를 떠나 서울에서 반민 특위 사건이나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을 맞는다. 그리고 백범과 몽양이 이승만과 한민당을 위시한 친일 세력에 의해 암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벌교 지역에서 지주들이 소작인 모르게 자기 땅을 팔아 먹거나 빼돌리는 일이 더룩 늘어나자, 농민들은 이에 분노하여 대규모 항의 시위를 일으킨다. 
  지주 졍현동은 멀쩡한 논에 바닷물을 끌여들여 염전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이에 분개한 소작인의 낫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오히려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농지개혁법이 발표된다.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아니라 유상몰수 유상분배란 것을 알고는 더욱 분노하기 시작한다.
  벌교에 주둔한 군경과 지역 청년단은 사태가 악화되자 농민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제3부 분단과 전쟁 (6권~7권)
  제3부는 1949년 10월부터 1950년 12월까지의 6.25전쟁의 현장과 합께 이 전쟁의 성격을 소상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무대가 벌교 지역ㅇ르 벗어나 전쟁의 현장을 따라 확대되고 있으며, 남과 북의 상황 변화와 미국의 개입 등이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에 의해 장악되고, 좌익 세력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한다.
  그러나 경찰이 철수하기 직전에 미리 좌익 전향자들을 사살하였기 때문에 또다시 살육의 참상이 겪는다. 당시 군부의 모습은 벌교 지역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심재모를 통해 실감있게 묘사되고 있다.
  심재모는 용공혐의로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벌교 지역 주민들의 진정으로 풀려나서 군에 복귀하여 태백산 지구 공비 토벌 작전에 참가하고 있던 중 6.25전쟁을 맞는다.
  그는 여러 부대를 옮겨다니며 6.25전쟁 당시 무방비 상태로 부패와 무능에 빠져 있던 군대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피난 수도 부산의 모습도 이 부분에서 그려진다.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살상하는 특무대원들의 횡포는 맹목적인 이념 전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벌교의 최익승이 부산으로 피난와서도 군대와 짜고 군수품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장면은 반민족적인 자본가들이 행태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3부의 내용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벌교 지역의 지식인 김범우와 손승호 등의 사상적인 선회이다. 김범우는 인민군 치하에서 전북도당에 근무한다. 그러나 인민군이 패퇴하자 미군에게 붙들려 강제로 통역관이 된다. 그는 미군들이 자행한 강간, 살인, 방화 등 비인간적이고도 부도덕한 행태를 보면서 한국전쟁이 미군과 우리 민족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김범우는 결국 미군 부대에서 탈출한 후에 공산주의 노선을 택하게 되며 인민군에 자진 입대한다. 손승호도 6.25전쟁 후 공산주의자의 길을 택한 후에 빨치산으로 입산한다. 이에 따라 벌교에서도 염상진 등은 다시 입산하게 된다.
 이때 많은 농민, 곧 소작인들이 염상진을 따라 입산하고 있다.

 제4부 전쟁과 분단 (8권~10권)
 제4부는 1950년 12월부터 1953년 7월 휴전 협정 직후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이 소설의 대미에 해당하는 지리산의 빨치산 투쟁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소설적 공간이 다시 벌교와 지리산 지역으로 고정된다. 6.25전쟁은 유엔군의 참전과 중국의 개입으로 교착 상태에 빠지고,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대치 상태가 지속된다.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이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 투쟁을 게속한다. 그러나 군겨의 진압 작정에 따라 이들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진다. 특히 박현영 등 남로당 계열이 전쟁의 실패와 함께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패배감과 남패에 빠져들지만, 역사 선택의 기로에서 항전의 결의를 가다듬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쟁과 죽음이 역사 투쟁으로의 전환임을 인식하고 대부분 강렬한 최후를 맞는다.  한편 인민군에 입대했던 김범우는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갇힌다. 그는 뜻밖에도 거기서 제자 정하섭을 만난다.
  두 사람은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의 눈을 통해 거제포로수용소의 실상이 속속들이 파헤져진다.
  포로 석방 때에 정하섭은 북으로 가고 김범우는 반공 포로로 위장, 석방되어 고행에 돌아온다. 그는 정하섭으로부터 남에 남아 거점을 구축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지리산에 근거했던 빨치산 세력은 군경의 터벌 작전으로 모두 와해된다.
  이름없는 숱한 빨치산 전사들과 함께 손승호도, 독립투사요 인민군 소장인 김범준도 토벌군의 총탄에 스러진다. 염상진이 이끄는 빨치산 부대는 군경과 수많은 전투를 하였으나 패퇴를 거듭한다.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그리고 그의 목이 벌교 읍내에 내걸린다. 염상진이 염원했던 <인민해방>은 실패로 끝나지만, 염상진을 추종했던 하대치 등이 살아남아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투쟁에의결의를 다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영화 [태백산맥], 1994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눈에 띄는 몇 가지 두드러진 점이 있다.

 첫째, 등장인물들이다. 크고 작은 인물들이 수도 없이 나와서 그들의 이름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가장 중심에 놓여있는 군당위원장인 염상진과 배운 것은 없으나 정력적인 사내 하대치, 낭만적인 민족주의자 김범우, 전형적인 지식인 염창민, 그의 애인 이지숙, 입산한 양조장 집 아들 정하섭과 그를 사랑하는 무당 소화, 염상진 부대와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에 있는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 양심적이고 중립적인 토벌대장 심재모, 입산한 농민 강동기와 그의 아내 외서댁, 그리고 죽산댁, 들몰댁, 샘골댁, 천점바구, 솥뚜껑 등이 저마다의 옷을 입고 독특한 개성을 발휘해 나간다.

  둘째, 이념적 대립, 갈등을 다룬 이전의 소설들이 지식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못 배운 농사꾼, 부인네들을 앞에 내세워 소설을 이끌어 나가도록 하고 있다. 염상진의 분신처럼 활동하며 끝까지 살아남은 하대치를 비롯하여 이름 없는 수많은 농민들이 <태백산맥>의 주인공인 셈이다. 해방 직후 대부분의 농민은 소작농이었다. 그들은 목마르게 자기 땅을 원했다. 그러나 농지 개혁이 유상 몰수, 유상 분배로 결정됨으로써 농민들의 실낱 같은 희망은 끊어지고 말았다. 농민들은 좌익이 좋아서 그들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땅을 약속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그냥 좌우익의 이념 싸움으로만 생각하던 여순반란사건을, 조정래는 땅을 둘러싼 소작 쟁의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셋째, 80년대 군사정권의 등장이라는 어두운 시대적 분위기 아래에서 이념의 사슬을 끊고 해방 공간과 사회주의운동, 빨치산, 지주, 친일파를 등장시킨 작품이라는 점이다. 조정래는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일부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그 지방의 감칠맛 나는 사투리의 시용과 원고지 1만오천 매 분량의 방대한 내용, 국내 출판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총 2백만 부가 넘는 판매 부수를 기록한 것 등이 모두 태백산맥」이 1980년대를 대표할 수 있는 소설이 되게 했다.

 

 

 전남 벌교를 주무대로 빨치산과 정부군경의 대립, 주민들의 참상 등 해방 공간의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걸쭉한 입담으로 써 내려간 이 작품은 작가 자신에게도 여러모로 뜻 깊은 소설이다.  전남 승주 선암사의 진보적인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나 벌교 등지에서 실제로 좌우익의 숱한 주검을 목격한 작가가 쓴 소설 현대사이자 그를 인기작가 반열에 들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도 좌익을 너무 편든 게 아니냐는 점에 대해 논난이 있는 이 소설이 시작된 것은 5공 때인 1983년 9월, [현대문학] 연재를 통해서였다. 이 소설 때문에 그에게 자료를 주고 싶어한 사람도 많았지만 위협과 협박 전화 또한 끊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내용에서 시종일관 이이제이(以夷制夷) 원칙을 지켰다. 당시 미 군정과 군경에 대한 비판은 바로 그 세력 내 양심 세력의 입을 통해서 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작가를 혼내주고 싶어하던 사람들은 작품 안에서 꼬투리를 잡지 못해 고심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소설이 관심을 끌자 2부부터는 작가의 처남이 주간으로 있던 [한국문학]으로 옮겨 연재되었다. 책으로 나온 때는 1986년 10월. 당초 2∼3개 사가 눈독을 들였으나 작품 성격과 어울리게 사회과학 책을 많이 내 온 [한길사]를 골랐다. 이 책은 당시의 통일 열기와 해방 공간에 대한 관심이 어우러진데다 대하소설을 찾는 문화 조류까지 합쳐져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9년 10월까지 차례로 10권이 나왔는데 제1권은 45판을, 제10권은 12판을 찍어 [한길사] 창사 이래 최대의 히트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한길사]는 이 책으로 생긴 소득을 재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과 부동산 투자가 과다하다는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효자’치고는 애물덩이인 셈이다. 종전의 세무조사와 달리 이번 조사는 순전히 업체 경영상의 문제여서 당연하다는 의견과 중소기업에도 못 끼는 출판사가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심하다는 동정론이 출판계엔 엇갈린다.